“식량 주권 지키는데 농업 확대 시급먹고 사는 문제·경쟁적 사고 벗어나더 큰 시야로 생산



독일의 화학ㆍ제약 회사인 바이엘 사가 9월14일, 세계 최대의 종자개발회사인 미국의 몬산토(monsanto)를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철학과 공학을 주도해왔던 독일이 이제 세계의 식량을 독과점할 준비를 하고 있는 듯하다. 바이엘은 몬산토를 인수함으로써 세계최대의 농업회사 중 하나가 될 전망이다. 몬산토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회사다. 1997년 국내 최대 종자회사인 흥농종묘ㆍ중앙종묘를 그들이 인수했다. 한국의 토종 고추ㆍ무ㆍ배추 등 수십 가지 종자 특허가 그들에게 넘어갔다. 우리는 밥상에 일상으로 오르는 무, 배추에 한 뿌리 한 포기마다 특허료를 내고 있는 것이다. 그 회사를 바이엘이 인수하여 공룡 종자회사가 되었다는 것은 글로벌 기업들이 식량 지배력을 강화해 나가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농업은 곧 식량이다. 식량 재배권을 빼앗기는 것은 생존권을 박탈당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남미의 대표적 농업국가인 아르헨티나는 곡창지대 팜파스에 몬산토가 공급한 GMO(유전자변형식품) 대두를 심었다가 농토를 망치고 몬산토 등 다국적 기업에 농지가 넘어가면서 식량 주권을 잃고 말았다. 인도에도 몬산토의 GMO면화 여파로 농민 20만여 명이 목숨을 끊은 일이 뉴스를 장식했었다.
한국의 곡물 자급률은 23%에 불과하다고 한다. 옥수수와 밀은 1%를 밑돌고 대두도 10% 안쪽이다. 그나마 쌀 자급률(89%)로 지탱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수십 년 후에 가장 절박한 물자는 자동차나 스마트 기기가 아닌 식량과 물일 것이다.
전쟁을 치르고 재건 시기를 거쳐 온 우리는 그동안 제조업에 몰두해 왔다. 농촌의 젊은 인력을 값싸게 빼내서 제조업에 투입했고, 정부의 쌀 수매가는 해마다 절하되었다. 곡식이 남아돈다고 농지를 줄여나가고 있고(절대농지로 분류하여 최소한의 유지책은 쓰고 있지만), 농촌인구는 급격히 노령화했다. 당연히 농업은 황폐해졌다. 전자, 자동차 등의 분야에서 기술을 개발하고 산업을 일으킨 것은 큰 성과가 맞다. 후발주자로서 모방으로 시작한 것은 부인할 수 없으나 누구나 모방을 통해 한국과 같은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제조업의 육성을 위해 너무 많은 것을 포기했다. 과거의 산업구조는 자본과 노동력을 기반으로 삼았으나 21세기는 가치창출의 원동력이 지식기반구조로 변화하고 있다.
과학 기술 분야로 좁혀서 보더라도 불균형이 심하다. 우리는 자동차와 전자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선진국들은 지금 바이오, 나노기술, 유비쿼터스 등에 뛰어들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이들 산업은 첨단 신기술의 하부구조를 지탱하는 특성상 선점하지 않으면 영원히 2등이거나 산업지배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 전부터 귀농운동이 일고는 있다. 그러나 이 움직임은 도시생활에 지친 사람들이 휴식을 겸해 이동하는 정도여서 대규모 농업사업으로 이어지는 데 한계를 보인다. 농업에서도 몇몇 스타트 업이 나타나고 있기는 하다. 유능한 젊은이들이 참신한 아이디어로 기업농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에서도 이들에게 벤처자금을 지원하며 돕고 있지만 그 정도의 아이디어로는 미국과 유럽의 산업화된 농업을 상대하기는 역부족일 것이다.
문제를 하나 더 짚고 넘어가자. 서울시에서 제시한 농업창업지원 대상자 조건이다. 창업지원 신청자의 나이가 65세를 넘으면 안 되는 것이다. 나이제한 규정은 개인의 능력과 무관한 한계다. 미국에 와서 1,2년만 살아보면 나이는 정말로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취업지원서를 낼 때 어디에도 나이를 적으라는 요구가 없고, 실제로 일반직 전문직 할 것 없이 머리가 하얗게 변해 버린 나이 많은 사람이 현장에서 일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계산원이나 백화점에서 쇼핑을 도와주는 직종같은 단순한 일뿐 아니라 은행 창구, 카메라를 매고 뛰어다니는 취재기자, 간호사들. 미국에서 직업을 선택하고 직원을 뽑는 기준은 나이가 아니라 그들이 그 일에 적합한 능력을 가졌는가 이다. 내 주변에는 여든이 다 된 노익장 기자들이 현장에서 뛰고 있다. 전근대적 기준의 행정은 나라의 발전을 방해하는 요소가 된다. 65세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가 아니다. 그들에게 창업지원을 못할 이유가 없다.
우리의 식량 주권을 지키고 미래 산업을 주도하기 위해서도 농업의 확대는 시급한 문제로 다가왔다. 이제 과거에 가졌던 ‘먹고 사는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춘 근시안적이고 경쟁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보다 큰 시야로 나라의 생산 구조를 재정의할 필요가 있다.

이성숙

미국 크리스천헤럴드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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