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용담정

용담정은 경주시 현곡면 가정리 구미산 기슭에 있다. 조선시대 말기 도탄에 빠진 농민들이 대거 봉기한 농민운동의 정신이 된 동학의 발상지이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천도교로 발전한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가 태어나고 공부해 깨우친 곳이다. 동학의 중심 사상인 인내천과 후천개벽 사상을 설파한 최제우는 백성을 어지럽힌다는 죄목으로 41세의 나이로 처형돼 용담정 일원 경주 구미산에 묻혔다.
용담정 일대는 1975년 천도교중앙총부에서 용담정 정자, 포덕문, 용담정사, 성화문 등을 건립해 천도교 성역지로 조성해 관리하고 있다. 용담정은 또 인근지역 백률사 터와 굴불사 터가 있는 소금강산 지역, 나원리 오층석탑 등과 함께 국립공원지역으로 지정돼 관리되면서 중요 문화관광자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경주시는 동학 발상지 일대를 한국 정신문화의 중심지로서 위상을 정립한다는 목적으로 2009년부터 2017년까지 사업비 133억원을 들여 최제우 생가를 복원하고 유허비 이설, 수운기념관과 교육수련관 건립, 탐방로 조성 등의 성역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용담정은 동학, 천도교에 대한 종교인의 목적이 아니더라도 동학을 알고자하거나 용담정의 아름다운 경관을 보기위해 찾는 발길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조선말기 쇄국정책을 비웃듯이 청나라, 러시아, 영국, 일본 등 열강의 침략이 밀려들면서 정부는 무능력한 상태가 되었다. 농민에 대한 탐관오리들의 수탈이 심해지자 농민층은 자신들과 뜻을 같이한 몰락한 양반계급과 함께 사회변화의 물꼬를 열어 나갔다. 결국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 농민들이 관아를 습격해 탐관오리를 쫓아내고 점령하기에 이르렀다. 동학농민운동은 반봉건적이며 반침략적인 성격을 띤 사회 변혁 운동이었다. 동학농민운동은 농민층이 중심이 되어 신분 차별을 비롯한 전근대적 질서를 바꾸려 한 개혁 운동이었으며, 일본을 비롯한 외세의 침략에 무장투쟁으로 맞선 민족운동이었다. 이후 동학 농민군의 개혁안은 갑오개혁에서 일부 실현되었으며, 반침략 투쟁의 의지와 경험은 항일 의병 투쟁으로 계승되었다. 최제우의 동학은 후에 천도교로 발전되었고, 동학농민운동의 기본정신으로 항일 의병운동, 갑오개혁 등의 전통질서를 붕괴하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는 노력들의 기초가 됐다. 한때 어지러운 나라를 바로세우는 기초가 되고, 백성들이 살아가는 삶의 목표를 제시한 동학의 발상지 용담정은 역사기행의 필수적인 코스로 선택할 만 하다.

◆천도교 성지 용담정

▲ 최제우 생가가 건너 보이는 거북의 꼬리라는 뜻의 구미산 중턱에 대구에서 처형당한 최제우의 시신을 제자들이 수습해 조성한 최제우 태묘.
▲ 최제우 생가가 건너 보이는 거북의 꼬리라는 뜻의 구미산 중턱에 대구에서 처형당한 최제우의 시신을 제자들이 수습해 조성한 최제우 태묘.

경주시는 동학발상지 성역화 사업을 현곡면 가정리 일원에 용담정과 ‘수운 최제우 생가’를 복원하는 이원화 사업으로 전개한다. 먼저 현곡 가정리 315번지 최제우가 태어난 곳에 1천871m² 부지에 안채와 사랑채, 방앗간채, 화장실, 사주문 등의 구조로 생가를 복원했다. 최제우의 태묘가 마주보이는 구미산 동남쪽이다. 생가는 2012년부터 공사를 시작해 2014년 완공하여 오전 9시~오후 6시 관람할 수 있다.
2009년부터 2017년 완공을 목적으로 133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유허비를 이설하고 수운기념관, 교육수련관 건립, 탐방로 조성 등의 성역화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천도교로 발전한 동학은 백성과 나라를 바로 세우려 했던 우리민족의 정신운동으로 재조명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신라 천년의 유구한 문화가 살아 있는 경주에서 조선시대를 거쳐 현대로 이어지는 전통문화로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용담정을 역사문화를 찾아가는 경주 역사기행의 백미로 강추한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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