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 기계문명이 발달하고세상이 편리하게 변한다고 해도인문정신이 없다면 ‘사상누각’”



21세기의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하자. 인문정신이다. 인문정신만이 가공할 미래사회를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잘 알듯, 인문정신은 인간의 삶을 인간답게 만드는 정신이다.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 문명은 어떻게 진화될 것인지, 그것이 인간의 삶에 어떻게 이용이 되어야 하는지를 포괄하는 것이다.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하는 알파고(Alfa Go)가 나왔고 인간의 감정을 그대로 재현할 수 있는 로봇이 등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어떻게 통제하고 인간의 이기로 활용할 것이냐의 문제는 모두 인문정신의 문제로 귀결된다.
인문하면 문ㆍ사ㆍ철, 즉 문학, 사학, 철학 정도로 국한 시키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인문은 이런 범위를 훨씬 뛰어넘는다. 삶 전체를 광범위하게 포괄하는 것이 인문의 범위다.
인문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전반을 넘나든다. 경우에 따라서는 인간의 의지에 의해 규정되거나 만들어지는 모든 유형, 무형의 산물을 칭하기도 한다.
인문은 영성까지도 포함한다. 영성은 가장 엄격한 정통 기독교 이론에서부터 가장 괴기한 뉴에이지 이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교육에서도 인문적 범위는 인성교육으로까지 확대된다. 인문을 단순히 문ㆍ사ㆍ철에 국한하여 생각하는 것은 오히려 인문정신을 훼손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런 사고는 실용적인 측면에서 취업이 잘되느냐, 혹은 당장 현실적으로 생산적인 소득과 관련지은 편의적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알렉 로스의 『미래산업보고서』에 의하면, 21세기는 급변의 시대다. 앞서 지적했듯이, 가장 큰 변화 중의 하나는 로봇이 온다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노령화에 따른 노동력 부족을 메우기 위해 로봇이 일상화되기 시작했다. 1970년대 자동차와 1980년대의 전자제품을 만들어냈듯 사람과 로봇이 한가족이 되는 가족로봇을 만들어내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추세로 간다면 1960년대~1970년대에 만화에나 등장했던 로봇은 2020년대에는 현실화될 것이다. 도요타는 만화 <젯슨 가족>에 등장하는 로봇 유모인 ‘로지’를 본떠 간호로봇 로비나(Robina)를 제작하고 있다.
로비나는 가족의 일원으로 세계적으로 점점 늘어나는 노인인구를 돌보게 될 것이다. 로비나의 남자 형제인 ‘휴머노이드’는 다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가사 로봇으로 주방 일을 하고 악기를 연주하기까지 한다.
혼다가 제작한 ‘아시모’ 역시 신장 120센티미터 정도로 우주 비행사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인간의 감정, 동작, 대화를 모두 소화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을 정도로 정교한 로봇이다. 음성명령에 따라 행동하고 악수하며 질문을 받고 사람을 보면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할 정도다.
이렇듯 디지털 화폐, 경제의 코드화, 이에 따른 코드의 무기화 등 미래의 삶은 예측을 불허할 정도로 빠르게 변화할 것이다.
우리는 이런 문제를 단순히 편리함이라는 분위기 속에서 지내는 것이 옳은 일일까. 아무리 기계문명이 발달하고 세상이 편리하게 변한다고 해도 그것을 이용하는 것은 인간이다. 이런 급격한 변화 속에서 인간본위의 인문정신이 바탕에 깔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상누각과 다름없다.
기계문명이 발달한 만큼 사람 냄새가 풍기지 않는 쪽으로만 간다면 미래학자들이 지적하듯 그것은 재앙을 불러올 뿐이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시간은 과거의 그 어느 시간보다 빠르게 우리의 삶을 지배할 것이다. 알렉 로스의 말처럼 미래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고도화될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이런 상황 속에서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나게 될지 정확하게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인간에 의해 통제되지 않는 고도화는 재앙이 될 수 있음을 함의한다.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인문정신이 필요한 이유다.

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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