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역량에 맞는 업종·품목 성공시켜 차근차근 나아가는 스케일업 경제체계 필요하다”



수년 전부터 지역경제 발전 전략의 관심이 대기업 유치, 산업 클러스터 형성 및 외국인 직접투자 촉진에서 고성장기업 지원으로 옮겨지고 있다. 이는 적은 수의 고성장기업들이 많 은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낼 뿐만 아니라 지역 내 경쟁을 촉발하면서 다른 기업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중요한 파급효과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고성장기업(스케일업)이란 수년간 종업원 수 또는 매출액의 대폭 증가를 실현한 기업을 말한다.
현재 영국을 필두로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네덜란드, 핀란드, 덴마크, 이스라엘 등 영미계 중심의 선진국뿐만 아니라 일부 신흥국들은 지역의 기업정책 중심점을 창업 및 자영업의 일자리 수를 늘리는 양적 측면에서 성장력 또는 혁신력이 높아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 가능한 기업 수를 늘리는 질적 측면을 강조하는 쪽으로 옮기고 있다. 우리나라 중소기업청도 벤처창업기업 스케일업을 금년도 주요 정책과제로 채택한 바 있다.
고성장기업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고성장기업은 여타 기업에 비해 신규 고용창출 비중이 훨씬 높다. 고성장기업은 업력이 짧지만 반드시 소기업인 것도 아니다. 또한, 전 산업에 고루 분포하며 첨단산업에만 몰려 있지 않다. 많은 기업이 성장을 꿈꾸지만 모든 기업들이 이를 실현하지는 않는다. 성장 의지는 기업가를 동기화시킨다는 점에서 꼭 필요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성장 의지가 있지만 이를 실현한 기업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고성장기업은 생산성ㆍ혁신력이 평균을 웃돌며, 수출 지향적이다.
각국 정부가 고성장기업에 대해 정책 개입하는 이유는 거시경제 성과에 중요하다는 점 외에 다음 때문이다. 첫째, 창업은 투자규모와 중요도에 비해 성장기여도가 낮다. 따라서 창업에만 몰입된 산업지원정책은 여러 부작용을 낳는다. 창업기업의 수익 감소와 부도로 지원 효과가 신통치 않고, 실업자 양산으로 재정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또한 창업기업들은 중장기적 성장보다는 혁신적 기술개발로 대기업에 매각을 목표로 삼고 있다.
둘째, 모든 기업에 똑같이 적용되는 정책은 실효성이 떨어진다. 1990년대의 기업정책은 창업률 제고에 초점을 더 두었다. 그러나 창업 위주의 지원 정책은 한계기업을 창업하도록 부추기고 고용 효과가 미미해 비판을 받게 되었다. 이에 성장, 역량 및 생존 전망이 낮은 신생 창업기업보다 소수의 성장잠재력이 높은 기업을 집중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창업기업들은 초기부터 대기업과 무한 경쟁을 해야 하는 환경 때문에 개도국이 경제개방 초기에 유치산업을 보호하는 것과 같이 성장잠재력이 높은 젊은 기업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
셋째, 전시 효과이다. 창업처럼 스케일업이 기업들에 도움이 되고 성장을 위한 시간ㆍ노력ㆍ자원 투자를 자발적으로 유도한다는 점을 지역 이해관계자들에게 보여주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지역 생태계의 자생력 보장을 위해 일정 수준까지 성장하면 정책 개입을 줄인다.
고성장기업 지원정책에 대한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기업의 고성장이 지속하기 어렵고, 성장성이 높은 기업을 선별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점에 불구하고 고성장기업 지원 정책의 설계를 잘하면 기존 중소기업 지원(예, 대출보증) 또는 창업 지원(예, 인큐베이터) 정책과 연계될 수 있다. 창업기업의 저변이 넓어야 고성장기업의 출현 기회도 많아진다. 고성장기업이 많아야 창업기업도 늘어난다.
기업은 창업에서 성장 단계로 이어지는 성장 사다리에서 적절한 지원을 받으면 더 성장할 수 있다. 고성장기업들이 많을수록 지역경제도 긍정적 영향을 받는 점을 인식하여 고성장기업을 위한 지역 생태계 구축을 촉진할 필요가 있다. 미국과 같이 창업이 자유로운 경제에서는 창업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 중요하지만 상대적으로 규제가 많을 수밖에 없는 후발 선진국이나 개도국은 다르다. 지역 역량에 맞는 업종이나 품목을 성공시키며 차근차근 나아가는 스케일업 경제체계 구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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