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제한과 서민금융

발행일 2017-06-20 20:05:37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이자는 돈을 이용한 대가이다. 이자를 주고받는 근거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돈을 빌려주는 기간 그 돈을 사용할 수 없어 발생하는 기회비용을 보상하는 것이고 나머지는 돈을 빌려간 사람이 빌려간 돈을 상환하지 못할 위험에 대한 보상이다. 이자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되었다. 수메르 문명의 쐐기 판에도 이미 이자의 개념이 드러나 있었으며 그 후에 작성된 함무라비 법전에도 ‘상인이 곡물을 빌려줄 때 곡물 1구르에 대해 100실라의 이자를 받는다. 은을 빌려줄 때에는 은 1세켈에 대해 1/6세켈 6그레인의 이자를 받는다’라는 조항이 새겨져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빌린 돈에 대해 이자를 부과하는 것이 지금처럼 당연시되기 시작한 것은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부터이다. 중세 기독교가 지배하던 시대에는 신의 것인 시간에 돈을 매기려 한다는 이유로 이자를 부과하는 것을 죄악으로 여겼다. 유대인들이 고리대금업으로 돈을 벌 수 있었던 것도 기독교인들이 이자를 죄악시하였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의 최고이자율은 이자제한법과 대부업등록 및 금융이용자보호에 관한 법률에 의해 규율되고 있다. 이자제한법이 도입된 것은 1962년으로 당시 최고이율은 연 40%였다. 그러나 외환위기 뒤 고금리 시대를 맞아 이자율 상한이 자금의 흐름을 왜곡한다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에 따라 1998년 이자제한법이 폐지되었다.

그러다 2007년 이자제한법이 부활하였으며 2017년 6월 현재 법정 최고이자율은 25%이다. 한편, 대부업 등의 법정 최고이자율은 2002년 66%에서 몇 차례 인하를 거쳐 2017년 6월 현재 27.9%로 낮아진 상태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대부업체 등 금융회사의 최고이자율을 현행 27.9%에서 임기 중 20%까지 내리겠다고 공약하였다. 그동안 대부업체 등의 법정 최고이자율이 낮아지면서 대부업체 내에서도 양극화가 심화하였다. 조달금리 경쟁력, 대손 관리능력 등을 갖춘 대형업체는 꾸준히 수익을 냈다. 2012년 말 대비 2016년 6월 말 기준 자산 100억 원 이상인 대형 대부업체의 당기순이익은 업체당 75억 원에서 54억 원으로 감소하였으나 업체 수는 오히려 129개에서 182개로 늘어났다. 반면에 영세한 개인 대부업자는 9,188명에서 7,010명으로 감소하였다. 법정 최고이자율 인하는 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카드사 등 제2금융권과 대부업체의 금리를 낮춰 서민의 부담을 줄여주려는 것이 목적이다.

2014년 기준 대손비용, 자금조달비용, 인건비, 모집비용, 판매관리비 등을 더한 대부업체의 평균 원가는 대출금액의 약 28% 수준이라고 한다. 이는 빌려준 돈의 28%를 이자로 받아야 본전이라는 뜻이다. 원가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대손비용으로 전체 원가의 13%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대손비용을 줄이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부도 확률이 높은 저신용자 대신에 부실 확률이 낮은 고신용자 위주로 대출을 취급하는 것이다. 그러나 부실을 줄이려고 고신용자에게 대출을 집중하게 되면 저신용자는 대부업체를 이용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 사채시장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한국대부업금융협회가 2016년 9월 개최한 ‘2016년 소비자금융 콘퍼런스’ 발표에 따르면 대부업체 이용자들 대부분은 생계목적으로 대출을 받고 있으며 대출 경로 및 대출이자율은 대부업체 이용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정 최고이자율을 낮추면 대부업체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서민들의 금융 부담은 완화할 수 있지만 대부업체에서 대출을 받을 수 없는 서민들의 부담은 오히려 늘어날 수 있다. 대부업체의 평균금리가 상한선(27.9%)과 다를 바 없는 수준이지만 금감원이 조사한 사채업자의 평균금리가 52.7%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최고금리 인하가 모든 서민들의 금융 편의를 도모한다고 말할 수 없다. 따라서 정부가 최고금리를 조정할 때는 서민들의 금리부담뿐만 아니라 금융접근성도 아울러 고려해야 서민의 금융 부담을 실질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다.조태진한국은행 대구경북본부기획경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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