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일이란 게 그렇다. 불미스러운 일, 일어나지 말아야 할 사고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노력해도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학교폭력도 그렇다. 노력한다고 학교폭력이 발생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학교폭력의 발생이 당연한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학교폭력이 발생했을 때의 대처방식이다. 교사들이 어떻게 대처하고 지도했느냐에 따라 사건의 후유증이 최소화될 수도, 극대화될 수도 있다.
예컨대 이런 경우다. 학교에서 우발적으로 경미한 폭력이 발생했다. 담임교사는 아무런 중재노력도 없이 기계적으로 학교폭력대책위원회에 넘겨버리고 만다. 사건에 휘말려 좋을 것이 없다는 심리적 기제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제대로 된 교육적 대처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실 학교폭력은 우발적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교사가 적극적으로 역할을 한다면 의외로 쉽게 해결되기도 한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두 동문수학하는 관계라는 점에서 조금씩 양보할 수 있는 여지가 존재한다. 이런 여지를 화해와 해결의 기회로 삼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교사의 역량이다. 기계적으로 대처하면 교사는 빠져나가서 좋지만 관련 부서로 넘어가면서 상황은 복잡해진다.
교사들은 학생들을 선도해야 할 책무가 있다. 처벌보다 선도가 교육의 본질이고 교사의 본분이다. 경미한 욕설이나 단순 충돌마저, 학생이나 학부모간 대화와 중재노력 없이 모두 학교폭력대책위원회에 회부하게 되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게 만든다.
더 정확히 말하면, 단순히 기계적인 처리에 따라 발생하는 후유증이 더 커진다.
실제로 담임의 중재에 의해 합의된 경미한 사안조차도 학교폭력대책위원회에 회부할 경우, 교육적 차원의 해결은 오간데 없고 끝없는 갈등 속으로 빠져드는 경우가 많다.
학교폭력을 연구하는 서비니 만벨(Cervini Manvell)에 의하면, 학교는 ‘공동의 이익을 위해 작용하는 각 부분의 독특한 결합체’다.
이런 속에서 “자신이 싫어하는 행동을 다른 사람에게 행해서는 안 된다”는 가장 기본적인 황금률이 지켜지지 않으면 학교폭력이 발생한다고 말한다. 특히 학교에서 폭력이 발생했을 때 무관용 원칙으로 대응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고 지적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의 책 ‘학교폭력의 연속체(The Violence Continuum)’에 의하면, 교사들의 성의 없는 대처는 학생들이 처한 개별적인 환경과 맥락에 대한 고려를 어렵게 한다는 점, 문제 학생들의 지도를 포기하게 한다는 점, 가해자와 피해자간의 중재를 어렵게 한다는 점, 무리한 처벌이 될 수 있다는 점, 예컨대 위험한 물건을 휘두른 초등학생이나 애정표현을 한 유치원생에게 정학처분과 같은 어리석은 지도가 이루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우려한다.
학교폭력예방과 대책 및 처리는 처벌보다 선도가 더 바람직하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앞서 지적했듯이, 중요한 것은 이에 대처하는 교사들의 태도다. 부동이거나 기계적인 대처로는 학교폭력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서비니 만벨 역시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에게 교육력이 발휘되어야 하는 교사의 역량을 학교폭력 해결의 중요한 열쇠로 본다.
교사의 적극적인 중재노력 없이 기계적으로 해결하려는 요즘의 학교분위기와 교사들의 태도는 문제다. 경찰이나 변호사 등 외부 전문가들에게 학교폭력 문제를 완전히 넘겨야 한다는 일부의 주장도 마찬가지다.
학교폭력의 1차적인 해결자는 교사들이 주역이 되어야 한다.

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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