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가정 양립’을 위한 특별기고<7>



오늘날 가정의 경제적 사정이나 여성의 자아실현과 관련하여 맞벌이 가정이 늘어나서 부모가 자녀를 전적으로 돌보지 못하고 육아지원을 받아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또한 자녀를 혼자서 키우는 독박육아에 따른 다양한 육아 부담을 완화해 줄 수 있는 육아지원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게 되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이 문제를 다 해결하기는 어려우며, 또한 육아도우미의 도움을 받는 것도 경제적인 면이나 마음 놓고 맡길 수 없다는 점에서 선뜻 내키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결국 우리 전통사회의 확대가족에서 조부모가 손자 손녀의 양육과 교육을 자연스럽게 일부 담당하였던 역할을 되돌아보고 자녀와 사회가 함께 조부모의 양육지원을 간절하게 바라게 되었다.
이러한 가족과 사회의 요구에 부응하여 시간적 여유가 있는 조부모들이 젊은 부모를 대신해 손주 양육에 나서게 된 것이다. 2015년 기준으로 510만 맞벌이 가구 중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자손녀 육아를 맡은 가구가 절반인 250만 가구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맞벌이 가정의 아이 두 명 중 한 명은 할아버지 할머니 손에 자라고 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들 조부모 육아지원 가정 중에서 할아버지 육아는 과연 얼마나 될까? 할머니 없이 할아버지가 단독 육아지원을 하는 경우는 사실 아직 그리 흔하지 않아서 손으로 꼽을 정도이고, 대부분의 경우 할머니가 육아지원을 전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할머니들이 손자 손녀 양육지원을 주로 맡는 것은 젊은 시절 여성에게 부여되었던 돌봄의 역할 정체성을 노년기에도 그대로 유지하여 스스로 자신이 좀 불편하더라도 손자 손녀의 주된 양육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자녀들이나 다른 가족들도 할머니가 손자 손녀를 돌보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생각은 시간적 여유가 있고 건강상의 문제와 같은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서 손자 손녀를 돌보아 주지 않는 할머니를 알게 모르게 이기적이라고 비난하는 논리와 맞닿아있다. 할아버지들이 은퇴를 하였음에도 여전히 할머니가 손자 손녀를 주로 돌보고 있고 할아버지는 육아지원을 보조하는 수준이거나 아예 손을 대지 않는 경우가 많다. 현시점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아내를 위해 남편도 가사와 육아를 분담해야 한다는 생각이 일반적인 데 비해, 손자 손녀의 육아지원에 할아버지가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생각은 아직 그리 보편적이지 않은 것 같다.
경상북도에서 할매할배의 날을 정하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손자 손녀를 맡아 함께 생활하면서 부모 대신 교육하는 격대교육(隔代敎育)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다. 이러한 격대교육을 통해 손자 손녀의 인성을 함양하고 지식뿐만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지혜까지 가르칠 수 있다. 할아버지는 손자 손녀 양육에서 한 발 떨어져 있는 사람이 아니라 할머니와 함께 주체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 여성호르몬의 급격한 감소로 인해 골다공증, 관절염, 고혈압 등의 건강문제가 발생하기 쉬운 아내를 도우면서 함께 손자 손녀 육아지원을 해나간다면 노부부의 사이도 좋아지고, 부모-자녀 세대 간 관계도 좋아지며, 무엇보다도 사랑스러운 손자 손녀들에게 할아버지의 끈끈한 사랑을 전해주어 대를 잇는 가족애를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
대구는 보수적인 도시이다. 시민원탁회의에 참여한 한 시민은 젊은 층은 점차 의식 개선이 되는 것 같은데, 고령계층은 여전히 가부장적인 측면이 강하다고 말했다. 이제 우리 대구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나서서 변화를 한 번 주도해보자. 젊은이들에게 결혼해라, 애 낳아라, 애 잘 키워라만 할 것이 아니라 나이 든 우리가 해줄 것은 없는지 한 번 살펴보자. 내 자식이 내 손주를 낳아 키우기에 힘이 든다고 어깨 처져 있을 때, 내 사랑하는 딸이, 내 사랑하는 며느리가 자기 일을 계속 하면서 아이도 잘 키우고 싶다고 도움을 요청할 때 사정만 된다면 우리의 어깨 한 편을 내줘보자, 이제 조금 구부정한 듯도 하지만 어린 내 새끼 업어 키운 내 등 아직은 탄탄하니 후세대가 일과 가정을 양립하면서 자식도 잘 키울 수 있도록 서로 머리를 맞대어 보자. 우리 대구에서 할아버지들이 나서서 손자 손녀를 키워주자고 하고, 손자 손녀를 키우는데 할머니와 함께 역할분담을 하는 좋은 모범을 만들어 나가기를 기원해본다.

박정숙

대구저출산극복사회연대회의

의장·계명대 간호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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