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산수 품어…예로부터 ‘살기 좋은 곳’ 소문 자자

발행일 2018-02-25 20:13:37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27> 수성구 파동

예로부터 살기 좋은 고장으로 통해 ‘일파이무(一巴二無)’로 불렸던 수성구 파동. 사진은 하늘에서 본 파동 전경.


파동은 대구부 상수서면의 지역으로 파잠ㆍ파잠리라고 했는데 1914년 파남동과 파북동을 병합해 파잠동이라고 했다.

높고 낮은 산이 많다는 의미에서 ‘파잠(巴岑)’, ‘파집’으로 불리기도. 수성못 부근에서 달성군 가창면 초입까지 신천을 따라 길이 곧게 이어진다고 해서 ‘니리미’라고 했다.

달성군 가창면으로 편입된 후 1957년 대구시에 편입됐다. 1980년 수성구가 신설되면서 수성구의 행정구역이 됐다.

수성구의 남동단에 위치하고 동쪽으로 법이산과 서당골이 있고, 서쪽으로 장암산과 용두골이 있으며 그 가운데를 신천이 관통해 흐른다.

예로부터 살기 좋은 고장으로 통해 ‘일파이무(一巴二無)’로 불렸는데 첫째로 살기 좋은 곳은 파동이고, 둘째가 무태라는 말이 나올 정도. 수려한 산수를 가진 마을로 중화 양씨와 김해 허씨가 개척했다고 전해진다.

◆조상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

이곳에는 서당골과 용두골이 있는데 조선시대 서원이 많았다고 해서 서당골이라고 했다. 현재는 중화 양씨의 재실과 2개의 서원이 남아 있다.

앞산에서 동쪽의 파동쪽으로 내려오는 골의 형상이 용의 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용두골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1744년 조선 성종 때 대사헌을 지낸 대봉(大峰) 양희지(陽熙止)를 추모하고자 세운 오천서원(梧川書院)은 서당골 안쪽에 자리 잡고 있다.

서원 앞은 암반이 하상을 이룬 계곡이 흐르고 100년을 훌쩍 넘은 수령인 듯한 둘레가 2m가 넘는 고목이 자리 잡고 있으며 서원 뒤 산기슭은 대나무밭으로 둘러 있다.

또 오천서원 초입에는 대구 유학의 큰 맥을 이룬 계동(溪東) 전경창(全慶昌) 선생의 공을 기리는 무동재(武洞齋)가 세워져 있다.

산성산에서 북쪽으로 뻗어내린 지맥의 말단부이자 신천이 만나는 파동 산 112번지에는 강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곳에 입지한 바위그늘(岩陰) 유적이 2000년 국립대구박물관에 의거 발굴 조사됐다.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바위는 위쪽이 아래보다 200㎝ 정도 돌출됐는데 전체 4개 층으로 이뤄졌다. 일부 층에서는 민무니토기편을 비롯해 갈돌과 갈판, 홈자귀편, 긁개 등이 출토돼 신천을 따라 형성된 주변의 고인돌, 집터 등과의 관련성을 보여준다.

◆대도시 속의 골짜기 마을

앞산과 법이산이 양쪽에 자리 잡은 골짜기 마을인 파동의 기후는 사뭇 다른 지역과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파동오거리에서 가창방면으로 진입하면 이전 지역과는 다른 기온을 느낄 수 있다.

여름철과 겨울철 온도가 수성못 오거리 이전보다는 항상 2∼3℃ 정도가 낮다. 산속 골짜기에 들어온 것과 같이 기온의 변화가 다른 지역보다 크다.

현재 앞산 터널이 지나가는 파동 고가도로 아래는 불과 몇 해 전만 하더라도 겨울철 자연 얼음썰매장으로 지역에서 유일한 곳. 수백 명의 어린이와 부모가 얼음을 제치며 추억을 만들었던 장소이다.

파동의 끝자락 가창교 아래는 여름철 물놀이 장소로 안성맞춤이다. 아직까지는 오염되지 않은 자연과 개발의 바람이 적은 파동은 대도시 속의 시골과 같은 동네이지만 마을 구성원이 함께하는 공동체 사업은 타지역보다 앞서 시행할 수 있었다.

수성구청 관계자는 “다양한 유적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고 쭉 뻗은 신천을 따라 산책할 수 있으며 흥이 넘치는 파동에서 힐링하는 기회를 가져보자”고 말했다.

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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