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7 남북정상회담의 의미

발행일 2018-04-26 19:57:09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이정태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오늘 개최되는 남북 정상회담이 한반도를 가로지른 냉전의 마지막 가시장막을 완전히 제거하였으면 좋겠다. 반추해 보면 남북한이 위치한 한반도는 난세에는 지정학적으로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는 곳에 위치해 있다. 식민지전쟁, 태평양전쟁 그리고 6ㆍ25전쟁으로 이어지는 약육강식 쟁탈전, 강대국들의 이전투구와 인장력이 집결되는 접점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결국은 남북으로 찢기는 비운을 맞게 되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 동안 결빙되어 움직일 수 없었다. 한반도를 제외한 나머지 세계는 진작 해빙되어 냉전의 장막을 걷었는데도 불구하고 한반도만 꽁꽁 언 빙하 속에 갇혀 있었다. 그 이유는 자명하다. 스스로 얼음을 깨고 탈출할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중국은 핑퐁외교를 기회로 ‘시장’을 내주는 대신 죽의 장막을 걷었고, 독일도 막대한 경제력을 가진 서독이 철의 장막을 매입해 통일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2018남북정상회담은 ‘대한민국의 힘’이 세졌다는 것을 국제사회로부터 공인받을 기회이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남북의 대표가 한반도에서 자유롭게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은 드디어 남북한 정부가 외부적 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자기결정권’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2018남북정상회담이 가지는 또 다른 의미는 ‘정상회담’ 자체가 최종적인 결실이라는 점이다. 한국이 처음으로 냉전의 장막을 뚫고 사회주의권과 접촉하게 된 것은 1983년 5월5일 승객 96명과 승무원 9명을 태운 중국민항소속 여객기 한 대가 춘천 캠프페이지에 불시착한 사건에서 비롯된다.

중국 본토를 출발한 비행기가 건국 후 처음 대한민국에 착륙한 사건인데 당시 중국과는 미수교 상태였기 때문에 외교적, 정치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이 사건 해결을 위한 교섭과정에서 한중 양국은 정식 외교 각서에 ‘대한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정식 국호를 사용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건 이후 양국의 교역은 1년 만에 4배, 6년 후에 120배 늘어났고, 중국이 아시아의 공산국가로서는 유일하게 86서울아시안게임에 참가함으로써 86서울아시안게임의 흥행 성공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 후 한중 양국은 활발한 인적, 물적 교류를 진행하였고, 냉전이 공식 종결된 1992년 8월 24일 국교정상화에 합의했다. 이로써 냉전의 방벽을 뚫고 북방외교의 관문을 공식적으로 시작하게 된 것이다.

중국민항기의 불시착사건이 한중간 교류의 물꼬를 틔운 것처럼 남북한의 관계도 1998년 고 정주영 회장의 ‘소떼 몰이 방북’으로 해빙의 계기를 마련했다. 당시 강원도 통천군 통천읍 아산리가 고향인 고 정주영 회장은 가출할 때 훔쳤던 아버지의 소 판 돈을 갚는다는 명분으로 소 501마리를 몰고 판문점을 통해 방북했다. 그 일을 계기로 현대가 금강산관광사업을 유치하면서 남북교류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민간인 정주영 회장의 방북은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의 1차 남북정상회담(2000년)을 유인했고 남북은 자주적인 통일노력, 금강산관광사업, 개성공단 설립, 이산가족 상봉 등의 의안들을 논의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의 2차 남북정상회담(2007)에서는 북핵문제가 중심의제였지만 서해평화협력지대 설치, 북핵관련 9.19성명, 2.13합의 이행 등이 심도 있게 논의되었다. 개성공단 활성화에 필요한 개성-신의주 철도 및 개성-평양도로의 보수문제 등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방안들도 논의되었다.

돌이켜 보면 2018남북정상회담은 남북 모두의 피와 땀으로 만든 긴 인고의 시간축적물이다. 그래서 2018남북정상회담은 신뢰가 만든 ‘평화의 성’이라는 점에서 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봄의 대미를 장식하고 있는 화려한 철쭉의 향연은 추운 겨울부터 매화와 목련, 개나리, 벚꽃, 진달래가 번갈아 핀 덕분이다.

한반도의 봄도 마찬가지이다. 지난 65년의 세월동안 피고 지고 또 피는 것을 되풀이하면서 한 걸음씩 전진했다. 그래서 이제는 제대로 된 봄을 열 시기가 된 것이다. 오늘 개최되는 2018남북정상회담에서 양 정상들은 담판이 아니라 그냥 일상의 만남처럼 편안하게 웃으며 담소하면 된다. 나란히 앉아서 세상이야기, 우리 이야기를 나누고, 어떤 사람이 오가고 어떤 물건을 주고받을지를 이야기하면 된다. 좋은 음악이나 영화이야기를 하고, 맛난 음식을 서로 권하는 것으로 족하다. 그러면 남북한 정상을 바라보는 세상 사람들도 함께 편안하고 즐거울 것이고, 자연스럽게 우리와 함께하게 될 것이다. 가시장막이 걷힌다는 기대만으로도 한반도는 남과 우리의 구분이 없는 하나의 생활공동체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그러면 핵, 미사일, 생화학무기나 위험한 재래식 무기에 대한 걱정도 필요 없게 된다.

서로를 적과 우리 편으로 구분하여 적대하지 않으면 무서운 총검도 장식품이나 상품의 일종에 불과하다. 따라서 2018남북정상회담을 지켜보는 우리도 참석하는 상대가 적장 김정은이 아니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대표라고 인식하고 믿어야 한다. 하나가 둘이 되든, 둘이 하나가 되든 함께하는 운명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인식과 믿음만 있으면 만사형통이다. 봄바람이 심하게 부는 것은 겨울잠을 자는 나무를 깨우기 위함이라는 믿음만 있으면 흔들림도 즐거운 것, 좋은 만남이 되길 소원한다.이정태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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