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사무실의 집기를 집으로 옮길 일이 생겼다. 물건이 몇 개 되지 않아서 포장이사를 하려니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 수 있겠다 싶어서 개인 용달업체 몇 군데를 알아보게 되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 중 유독 내 귀를 끄는 목소리가 있어서 덜컥 예약을 했다. 다른 업체의 직원보다 나이도 조금 더 많아 보이는 분이 전화를 받는 곳이었다. 비용도 조금 더 싼 것이 나로서는 좋은 일이지만, 혹시 싼 게 비지떡이라고, 일하는 것이 실망스러우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도 들었다. 마음이 이끌려서 예약을 한 것이니 일단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예약한 날을 기다렸다.
당일, 옮기는 집기의 모서리가 다치지 않도록 에어캡으로 감싸고 포장 테이프로 둘러싼 다음 사람이 오기를 기다렸다. 전화벨이 다시 울리고, 일흔 정도 되어 보이는 용달업체 사장님이 트럭을 몰고 홀로 오셨다. 반갑게 인사하고는 얼른 사무실로 안내했다.
이동식 수레를 같이 들고 올라가서 옮길 물건을 함께 확인했다. TV와 스탠드, 커다란 서랍장, 콘솔과 의자 하나, 옮길 물건이 많지는 않았지만, 혼자서는 무리다. 내가 함께 도와드리기로 했다. 유쾌한 성격의 사장님은 세상사는 이야기며, 용달업을 하면서 겪었던 재미있었던 이야기를 하며 일을 하셨다. 하지만 물건이 부딪쳐서 흠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모습이 오랜시간 이 일을 했다는 것을 짐작케 했다. 숙달된 사장님 덕분에 물건들을 쉬엄쉬엄 옮기고도 금세 일을 마쳤다.
시원한 쥬스 한 잔으로 목을 축이고, 약속했던 수고비를 드리는 것으로 일을 마무리했다. 유쾌한 모습의 사장님은 수고비를 받으시고는 내 귀에 쏙 들어오는 말씀을 하시고 가셨다.
“젊었을 때는 일도 많았고, 바쁘게 지냈는데, 이제는 나이가 많다고 손님들이 일을 맡기기 꺼려서 일이 많이 줄었습니다. 이런 일들은 힘만으로는 안 되고 요령과 경험이 중요한데…. 그래도 믿고 일을 맡겨줘 감사합니다.”
나이가 많이 들어 보인다고 일을 잘 못할 것으로 지레짐작하고 꺼려했다면 분명 후회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런 일은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나이가 들어 보인다고 학생들에게 할아버지ㆍ할머니라는 이야기를 듣는 선생님들, 나이가 많은데 퇴사하지 않는다고 무언의 압력을 받는 장년층, 사회의 여러 현장에서 젊은 사람들의 눈치를 봐야하는 노년층들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단지 나이가 들었을 뿐, 일을 잘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능력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우리 사회가 그동안 관심을 두지 못했던 부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과학 기술의 발달로 인해 인간의 수명은 길어졌지만, 중년의 나이에 은퇴를 해야 하는 우리의 사회적 현실이 장년, 노년층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이들은 단지 능력이 부족해서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고,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경우도 있을 것이라 짐작된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젊어보이기 위해 주름성형수술을 하고자 나를 찾아오는 이들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사실 나 자신도 앞으로 10년 혹은 그 남짓 나이가 더 들고 나면 주름진 노인이 된 내 모습에 환자들이 찾아오지 않아서 병원 운영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날이 올 수 있다. 고령화를 향해 세계에서 가장 빨리 치닫고 있는 우리는 앞으로 10년, 혹은 20년 이상 지나고 나면 노인 국가가 될 가능성이 가장 큰 나라 중 하나다.
사회 전체가 이에 맞는 시스템의 변화, 직업, 일자리, 혹은 산업구조의 변화를 이루어야 할 시기가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 그런 변화도 중요하지만 사회 구성원 모두의 마음속에 있는 노인들에 대한 생각을 변화시켜야 할 때가 된 것이 아닌가 한다. 노인들도 충분히 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충분히 생산적인 사회의 구성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내 나이가 어때서? 일하기 딱 좋은 나인데!’ 우리 모두의 생각 속에 이런 마음이 함께 할 때 우리의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길 수 있을 것이다.

이동은

리즈성형외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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