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상정 장군 고택

▲ 이상정 장군은 대구가 낳은 독립지사지만 그에 대한 예우는 찾아볼 수 없다. 사진은 대구 중구 서성로 1가에 있는 장군의 고택. 현재 음식점으로 이용되고 있는 이곳에는 관련 콘텐츠가 전무해 근대문화골목을 방문한 사람들이 무심코 지나치기 일쑤다. 오른쪽 끝부분 입간판 1개와 낡은 철제 안내판 1개가 설명의 전부다.
▲ 이상정 장군은 대구가 낳은 독립지사지만 그에 대한 예우는 찾아볼 수 없다. 사진은 대구 중구 서성로 1가에 있는 장군의 고택. 현재 음식점으로 이용되고 있는 이곳에는 관련 콘텐츠가 전무해 근대문화골목을 방문한 사람들이 무심코 지나치기 일쑤다. 오른쪽 끝부분 입간판 1개와 낡은 철제 안내판 1개가 설명의 전부다.

광복 73주년이다. 1910년 나라를 일제에 빼앗기고 1945년 광복하기까지 수많은 독립 운동가들이 일제와 싸우다 목숨을 잃었다.
그로부터 73년이 지난 2018년 8월15일. 나라의 독립을 위해 희생한 독립지사와 독립운동 관련 유적의 관리 실태는 참담하기만 하다. 독립운동정신 계승사업회가 발표한 ‘대구 독립운동 유적 90곳 집대성’에 따르면 90곳 중 30곳 정도가 ‘매우 부실한 상태’라고 조사됐다.
유적에 안내판이 없는 것은 기본이며, 흔적조차 온데간데 없고 잊혀진 채 새로운 건물이 들어선 곳도 있다.
14일 오전 11시 대구 중구 서성로 1가. 계산성당에서 계산오거리 방향으로 20m 정도 가니 우리나라를 대표하고 대구가 낳은 근대인물과 관련된 벽화가 나왔다. 벽화를 따라가니 곧이어 대구 대표 관광지인 근대골목 제2코스 근대문화골목이 전개된다.
근대문화골목에서는 민족시인 이상화 관련 벽화와 시인의 고택을 볼 수 있다. 또 이상화 고택 맞은편에는 국채보상운동을 이끈 서상돈 고택이 자리하고 있다.
이상화 고택과 서상돈 고택 사이로 조금 걷자 또 다른 고택이 나타났다. 흔히 볼 수 있는 기와집이고 평범한 음식점이었다. 근대문화골목을 찾는 사람들이 지나치기 쉬운 유적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이상정 고택’. 이상화 고택과 서상돈 고택 사이에 있는 음식점이 이상정 고택이다.
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에 따르면 이상정 장군은 이상화 시인의 맏형으로 1896년 6월 대구에서 출생했다. 일본국학원대학을 졸업한 이상정은 대구 계성학교, 신명여학교, 서울 경신학교 등에서 교사 생활을 하면서 지하 조직을 결성해 항일운동을 했다.
이후 1923년 만주로 망명해 장개석(장제스) 부대의 중국 국민당정부 정규군 소장으로 활동하게 된다.
이상정 장군은 윤봉길 의사에게 폭약을 구해주는 등 김구, 김규식과 같은 독립지사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1940년에는 임시정부의 광복군 창설을 적극 돕기도 했다. 이상정 장군의 부인은 한국인 최초 여자 비행사로 알려진 권기옥 지사다.
지난해 4월 국가보훈처는 이상정 장군을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근대문화골목에서 이상정 장군에 대한 예우는 찾아볼 수 없었다. 나라를 되찾고자 혼신을 다바쳐 독립운동을 펼쳤음에도 ‘푸대접’이 역력했다.
근대문화골목 약도에 ‘이상정 장군 고택’이라는 안내 한 구절만 있을 뿐 관련 콘텐츠는 하나도 없었다.
이상정 장군에 대한 설명은 고택 한쪽에 설치된 안내판 2개가 전부다. 그마저도 자세히 들여다봐야 알 수 있으며 음식물 쓰레기통이 앞에 있어 눈길을 끌기엔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이상정 장군 고택과 가까이 있는 두사충(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였다가 귀화한 무장)에 관한 벽화가 더 눈길을 끌었다.
그렇다 보니 이 길을 걷는 방문객 대부분은 이상정 장군보다 두사충을 더 많이 아는 듯했다. 음식점을 자주 찾는 손님들도 이곳이 이상정 장군의 고택인 것을 모르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대영 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 사무처장은 “대구의 독립운동가와 관련 유적은 대구의 정신이자 상징이지만 알려지지 않고 방치된 곳이 많다. 이런 데 만약 나라가 어려워진다면 누가 목숨바쳐 나라를 구하겠느냐”며 “늦었지만 이제라도 잊혀진 지역의 독립운동가를 재조명하고 유적도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헌호 기자 shh24@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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