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단지로 변해버린 ‘학생 항일운동 본거지’

발행일 2018-08-16 19:27:11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3> 대구상업학교·대구고보 터



“이 일대가 일본강점기 당시 학생들이 항일운동을 벌였던 장소라는 사실을 아세요.”

16일 오전 대구 중구 대봉동 센트로팰리스 앞. 이 아파트 입주민에게 질문을 하자 “아니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혹시 태극단(太極團)은 알고 있나요” 그는 “처음 듣는데요”라고 답했다.

이 일대를 돌아보니 이해가 됐다. 이곳 어디에도 당시의 항일운동을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었다. 흔한 표지석 하나 없다.

센트로팰리스와 대구문화재단이 위치한 이곳은 1923년 건립된 대구공립상업학교 부지였다.

대구시 유형문화재 48호로 지정된 대구문화재단 건물은 당시 학교 본관으로 사용됐다.

대구상업학교는 항일운동을 벌인 구국투쟁의 역사적인 장소다. 광복 3년 전 1942년 일제의 압제 속에서 당시 학교 학생들은 태극단을 결성했다. 조국 광복이라는 원대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비밀결사를 조직, 매우 치밀한 행동강령으로 조직적 항일투쟁을 벌였다.

1943년 5월 태극단장(이상호)외 단원 25명 전원이 체포됐다. 이 중 6명은 법정 최고형을 선고받고 희생됐다. 태극단 학생독립운동은 3ㆍ1운동과 정신과 맥을 같이하는 대구의 위대한 학생운동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이 일대는 아무런 흔적도 남아있지 않아 이를 알고 있는 시민은 많지 않다.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경북고교) 부지였던 청운맨션(중구 대봉동)도 마찬가지다.

대구고등보통학교도 일제에 맞서 학생들이 동맹휴학 투쟁을 벌였던 역사적 장소다. 하지만 아파트가 들어선 청운맨션 어디에도 이런 역사적 사실을 알리는 안내판이나 표식은 없다.

1926년 대구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은 ‘조선인은 야만인’ 발언을 한 일본인 교사의 사직을 요구하며 등교를 거부했다. 하지만 15명의 학생이 퇴학을 당하면서 동맹휴교는 실패로 끝났다.

이후 1927년 11월 일부 학생들이 식민지 노예교육을 반대하고 사회과학을 연구해 독립운동에 매진하려는 목적으로 비밀결사 ‘신우동맹’을 조직하며 활동하기도 했다.

1928년 10월에는 ‘식민지 노예 교육 철폐, 민족 차별 철폐’ 등을 요구하며 또 한 번 동맹휴교를 하다 182명 무기정학, 18명 퇴학, 105명 검거, 24명 실형 등의 처분받았다.

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 관계자는 “순국선열의 숨결과 피땀이 서린 항일 독립운동 유적지들이 지자체의 관리부실 속에 쓸쓸히 잊혀져 가고 있는 사실이 안타깝다”며 “이제라도 역사적 사실을 알리는 표석, 기본적인 내용을 담은 안내판 등을 갖춰 항일 유적을 되살리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혜림 기자

lhl@idaegu.com
<저작권자ⓒ 대구·경북 대표지역언론 대구일보 .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댓글 (0)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댓글 환경에 동참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