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하회마을 삼신당
하회마을을 조감하면 마치 한 조각의 감나무 잎 같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감나무 잎은 잎몸이 타원형이고 둘레가 부드럽다. 잎자루가 단단하고 잎맥이 고루 대칭을 이루면서 잘 발달되어 있다. 감나무 잎자루를 손거울 잡듯 바로 잡고 잎 속을 들여다보면 실핏줄 같은 잎맥이 중심선을 기준으로 좌우, 가로ㆍ세로로 살아서 움직인다.
감잎 형태의 하회마을 가운데 잎맥을 따라 시선을 옮기면 오른쪽 끝단에 충효당이 그리고 왼쪽 끝단에 양진당이 자리하고 그 중심에 삼신당(三神堂)이 위치한다.
여름 햇살이 따갑게 지나갔다. 일행 3명이 하회마을을 찾았다. 공교롭게도 하회를 처음 찾는 이들이었다. 일행들은 물병 하나를 든 채 마을을 샅샅이 살피듯이 천천히 걸었다. 그러다 깊은 수렁에 빠진 듯 한 걸음 한 걸음 작은 골목길로 숨어들어 마침내 출구를 찾지 못한다. 미로를 헤매듯 했다.
땀이 젖은 얼굴을 서로 마주 쳐다보면서 고개를 갸우뚱 그린다. 130여 호 남짓한 집들과 흙담, 그리고 담 사이사이 실개천 같은 골목길에서 일행은 모두 방향 감각을 잃어버린 것이다.
등줄기와 가슴팍에는 이미 땀으로 강물이 되어 흠뻑 젖어 있었다.
일행들은 어느 막다른 골목길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것이다. 그때 지도를 손에 쥐고 있던 여행작가 김청운 선생이 마을 지도를 펼치면서 “마을을 구성하고 있는 공간구조가 절묘하네요. 모두들 마을 당나무를 찾아갑시다.”
그는 지도에 표시된 삼신당을 가리키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삼신당에는 반드시 크고 오래된 나무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은 마을의 중심 터일 것이니 빠져나가는 길 표시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일행은 하회의 남촌댁 북쪽으로 난 흙담 길을 따라 삼신당이 있는 골목길로 들어선다. 정오의 햇살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마른 흙담조차 녹아내릴 것만 같다. 담을 덮어 놓은 숫기와 위로 하얗게 마른 석화가 피어났다.
붉은 모래흙으로 된 길바닥에서 작은 먼지가 일었지만 싫지 않았다. 도회에서 좀처럼 체감할 수 없는 황토가루, 일행 중 한 사람이 신발을 벗어들고 맨발로 걷기 시작하자 모두 따라했다. 발바닥 찜질이다.
마침내 일행들은 자신들의 키보다 높은 북촌댁(중요민속자료 제84호)의 담과 솟을대문 앞을 돌아 마을 한가운데 있는 삼신당에 이르렀다. 당집이 아니라 느티나무다. 높이가 15m, 몸 둘레가 5.4m가 되는 당나무는 노목인데 새끼 금줄로 자신의 허리둘레를 동여매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물론 찾아드는 모든 사람들이 영험이 있는 신목으로 믿고 있다. 당나무는 600여 년 전 이 마을의 입향조 류종혜가 심었다는 전설을 안고 성장한 건강한 나무다. 하회마을의 유산으로 전승되고 있는 이 당나무는 그 자체가 삼신당이요 성황당(서낭당)이다.
그래서 하회마을 사람들은 정월 대보름날이면 이곳에서 마을의 안녕과 무병 그리고 풍년을 비는 동신제를 모신다. 하회별신굿 탈놀이(국가무형문화재 제69호)에서 탈춤판이 가장 먼저 시작된 곳도 바로 이곳, 당나무 아래에서다.
◆기원(祈願)의 신목, 하회 삼신당
나무 밑동을 둘러맨 금줄 마디마디에는 갖가지 기원의 문구를 깨알같이 써놓은 소원지로 가득 둘러쳐져 있다.
하얀 수술로 치장한 듯 바람에 나풀거린다.
동신을 드릴 때 매둔 금줄이 소원지를 꽂은 띠로 변신해 버렸다.
합격, 사랑, 건강, 취업 등 다양한 어귀의 소원지는 국적도 다양하다.
일본어, 중국어뿐만 아니라 영어로까지 섞여 있다.
우리의 삶 주변에 기원의 공간이 함께 하는 현대판 서낭당은 동서양이 다르지 않다.
우리의 당나무는 말할 것도 없고 유럽 등지의 관광지에도 멋들어진 다리의 난간 난간마다 소원지와 자물쇠가 조롱조롱 매달린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다.
하얀 종이에 자신이 희망하는 것을 기록해 붙이는 소원지, 교각의 난간에 꼭 붙들어 매듯 잠궈 채우는 사랑의 자물쇠 등 자신의 미래를 간구하고 상대와 사랑을 언약하는 주술이다.
일행 중의 이 화백이 백지로 접어 만든 작은 소원지 한 장을 삼신당 금줄에 꽂았다.
그 순간, 평소의 유머스럽던 그와 달리 진지한 모습이었다.
“삼신 할매, 셋째 딸을 시집보냈습니다.
때맞게 건강한 외손자를 안겨 주소서.” 그는 삼신 할매의 영험을 믿었다.
나이가 꽉 차 시집을 보낸 딸아이를 위한 자신의 소원을 삼신 할매가 귀담아들어 줄 것으로 믿었다.
삼신당 단위에 백발을 곱게 빚어 올림머리를 한 삼신 할매가 벙긋이 웃고 있는 것만 같았다.
단이랬자 별것이 아니다.
허물어진 주춧돌 혹은 석탑의 기단석 같이 다듬어지되 특별한 문양을 새겨 넣지 않은 밋밋한 돌 서너 개를 포개듯이 쌓아 올려놓은 단석이다.
당나무 주변은 그것 이외는 달리 꾸밈이 없다.
당나무 앞에서 제각각 자신의 소원을 간절하게 비는 모습이 그리 생경하다거나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하회마을은 이 삼신당을 중심으로 방사선형으로 뻗어나 있다.
마을을 조감하면 삼신당은 곧 양진당과 충효당 그리고 남촌댁과 북촌댁 그리고 원지정사에 둘러싸여 있다 할 수 있다.
삼신당 좁은 골목길을 벗어나와 일행은 다시 길 남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비슷비슷한 고택들이 운집하여 마을을 이루고 있지만 그 하나하나는 모두 유서 깊은 내력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기반 위에 선 하회마을은 풍산 류씨가 반세기 이상 대대로 살아온 한국의 대표적인 동성마을로 정위된다.
◆감나무 잎맥 같은 하회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