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하회마을 삼신당

풍산 류씨가 600여 년간 대대로 살아온 한국의 대표적 동성마을인 하회마을 중앙에는 수령이 600년 된 느티나무(높이 15mㆍ둘레 5.4m)가 자리하고 있다.
마을사람들은 이곳을 삼신당이라 부른다.
삼신은 예로부터 며느리들이 아이를 낳으려 할 때 빌었던 대상으로 아이의 출산과 건강을 관장한다.
김진홍 기자 solmin@idaegu.com

▲ 부용대에서 바라본 하회마을
▲ 부용대에서 바라본 하회마을

하회마을을 조감하면 마치 한 조각의 감나무 잎 같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감나무 잎은 잎몸이 타원형이고 둘레가 부드럽다. 잎자루가 단단하고 잎맥이 고루 대칭을 이루면서 잘 발달되어 있다. 감나무 잎자루를 손거울 잡듯 바로 잡고 잎 속을 들여다보면 실핏줄 같은 잎맥이 중심선을 기준으로 좌우, 가로ㆍ세로로 살아서 움직인다.
감잎 형태의 하회마을 가운데 잎맥을 따라 시선을 옮기면 오른쪽 끝단에 충효당이 그리고 왼쪽 끝단에 양진당이 자리하고 그 중심에 삼신당(三神堂)이 위치한다.
여름 햇살이 따갑게 지나갔다. 일행 3명이 하회마을을 찾았다. 공교롭게도 하회를 처음 찾는 이들이었다. 일행들은 물병 하나를 든 채 마을을 샅샅이 살피듯이 천천히 걸었다. 그러다 깊은 수렁에 빠진 듯 한 걸음 한 걸음 작은 골목길로 숨어들어 마침내 출구를 찾지 못한다. 미로를 헤매듯 했다.
땀이 젖은 얼굴을 서로 마주 쳐다보면서 고개를 갸우뚱 그린다. 130여 호 남짓한 집들과 흙담, 그리고 담 사이사이 실개천 같은 골목길에서 일행은 모두 방향 감각을 잃어버린 것이다.
등줄기와 가슴팍에는 이미 땀으로 강물이 되어 흠뻑 젖어 있었다.
일행들은 어느 막다른 골목길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것이다. 그때 지도를 손에 쥐고 있던 여행작가 김청운 선생이 마을 지도를 펼치면서 “마을을 구성하고 있는 공간구조가 절묘하네요. 모두들 마을 당나무를 찾아갑시다.”
그는 지도에 표시된 삼신당을 가리키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삼신당에는 반드시 크고 오래된 나무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은 마을의 중심 터일 것이니 빠져나가는 길 표시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일행은 하회의 남촌댁 북쪽으로 난 흙담 길을 따라 삼신당이 있는 골목길로 들어선다. 정오의 햇살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마른 흙담조차 녹아내릴 것만 같다. 담을 덮어 놓은 숫기와 위로 하얗게 마른 석화가 피어났다.
붉은 모래흙으로 된 길바닥에서 작은 먼지가 일었지만 싫지 않았다. 도회에서 좀처럼 체감할 수 없는 황토가루, 일행 중 한 사람이 신발을 벗어들고 맨발로 걷기 시작하자 모두 따라했다. 발바닥 찜질이다.
마침내 일행들은 자신들의 키보다 높은 북촌댁(중요민속자료 제84호)의 담과 솟을대문 앞을 돌아 마을 한가운데 있는 삼신당에 이르렀다. 당집이 아니라 느티나무다. 높이가 15m, 몸 둘레가 5.4m가 되는 당나무는 노목인데 새끼 금줄로 자신의 허리둘레를 동여매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물론 찾아드는 모든 사람들이 영험이 있는 신목으로 믿고 있다. 당나무는 600여 년 전 이 마을의 입향조 류종혜가 심었다는 전설을 안고 성장한 건강한 나무다. 하회마을의 유산으로 전승되고 있는 이 당나무는 그 자체가 삼신당이요 성황당(서낭당)이다.
그래서 하회마을 사람들은 정월 대보름날이면 이곳에서 마을의 안녕과 무병 그리고 풍년을 비는 동신제를 모신다. 하회별신굿 탈놀이(국가무형문화재 제69호)에서 탈춤판이 가장 먼저 시작된 곳도 바로 이곳, 당나무 아래에서다.

◆기원(祈願)의 신목, 하회 삼신당

삼신당에는 빈손으로 가도 소원을 적고 매달 수 있는 한지와 펜이 준비돼 있다.

나무 밑동을 둘러맨 금줄 마디마디에는 갖가지 기원의 문구를 깨알같이 써놓은 소원지로 가득 둘러쳐져 있다.
하얀 수술로 치장한 듯 바람에 나풀거린다.
동신을 드릴 때 매둔 금줄이 소원지를 꽂은 띠로 변신해 버렸다.

합격, 사랑, 건강, 취업 등 다양한 어귀의 소원지는 국적도 다양하다.
일본어, 중국어뿐만 아니라 영어로까지 섞여 있다.

우리의 삶 주변에 기원의 공간이 함께 하는 현대판 서낭당은 동서양이 다르지 않다.
우리의 당나무는 말할 것도 없고 유럽 등지의 관광지에도 멋들어진 다리의 난간 난간마다 소원지와 자물쇠가 조롱조롱 매달린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다.
하얀 종이에 자신이 희망하는 것을 기록해 붙이는 소원지, 교각의 난간에 꼭 붙들어 매듯 잠궈 채우는 사랑의 자물쇠 등 자신의 미래를 간구하고 상대와 사랑을 언약하는 주술이다.

일행 중의 이 화백이 백지로 접어 만든 작은 소원지 한 장을 삼신당 금줄에 꽂았다.
그 순간, 평소의 유머스럽던 그와 달리 진지한 모습이었다.

“삼신 할매, 셋째 딸을 시집보냈습니다.
때맞게 건강한 외손자를 안겨 주소서.” 그는 삼신 할매의 영험을 믿었다.
나이가 꽉 차 시집을 보낸 딸아이를 위한 자신의 소원을 삼신 할매가 귀담아들어 줄 것으로 믿었다.
삼신당 단위에 백발을 곱게 빚어 올림머리를 한 삼신 할매가 벙긋이 웃고 있는 것만 같았다.

단이랬자 별것이 아니다.
허물어진 주춧돌 혹은 석탑의 기단석 같이 다듬어지되 특별한 문양을 새겨 넣지 않은 밋밋한 돌 서너 개를 포개듯이 쌓아 올려놓은 단석이다.
당나무 주변은 그것 이외는 달리 꾸밈이 없다.
당나무 앞에서 제각각 자신의 소원을 간절하게 비는 모습이 그리 생경하다거나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하회마을은 이 삼신당을 중심으로 방사선형으로 뻗어나 있다.
마을을 조감하면 삼신당은 곧 양진당과 충효당 그리고 남촌댁과 북촌댁 그리고 원지정사에 둘러싸여 있다 할 수 있다.

삼신당 좁은 골목길을 벗어나와 일행은 다시 길 남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비슷비슷한 고택들이 운집하여 마을을 이루고 있지만 그 하나하나는 모두 유서 깊은 내력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기반 위에 선 하회마을은 풍산 류씨가 반세기 이상 대대로 살아온 한국의 대표적인 동성마을로 정위된다.

◆감나무 잎맥 같은 하회마을

서애 류성룡 선생의 종택 충효당

풍산 류씨 대종가 양진당

너댓 시간 하회마을을 심방하고 나온 일행들은 저마다 견문록이 없지 않았다.
화회마을의 전통과 권위를 상징하는 충효당과 양진당을 말하는가 하면 북촌댁의 건축규모와 미에 감탄을 쏟아내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골목길과 담길에 매혹됐다면서 계절을 달리하여 한 번 더 여행 오고 싶다고도 하였다.
그때 50대의 이 화백이 꺼내놓는 말에 모두 귀를 기울였다.

“하회마을은 내 눈에 마치 하나의 큰 감나무 잎을 밟고 걷는다는 착각을 하게 했습니다.
” “아니 왜요?” “우리가 헤맸던 그곳은 감잎의 왼쪽 중간쯤 되었을 것이고 삼신당은 북쪽 방향인데 마을의 거의 가운데쯤 되었을 것입니다.

감나무 잎을 모를리 없는 일행은 하나같이 공감을 표했다.
그러고 보니 하회마을은 한 조각의 감나무 잎에 비유될 만했다.
동에서 서쪽으로 난 가운데 큰길이 감잎의 중심이 되는 잎맥과 같다면 그 잎맥 좌우로 뻗어난 작은 실선들은 마을의 북쪽과 남쪽으로 난 좁은 골목길들이 될 테니까.

전통사회에서 우리의 초민들이 믿던 신앙은 결코 현실세계와 이격되지 않는다.
현실과 신의 세계는 어떤 경계가 지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 삼투작용을 하면서 존재해 왔다고 믿었다.
마을신은 다름 아닌 마을 사람과 같이 살고 있으며 그 모습 또한 마을 사람을 닮았다는 것이다.
마을신은 달리 별천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을 속에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신을 즐겁게 하면서 신이 늘 깨어 있도록 밤낮으로 모신다.
그러다 보면 신은 사람에게, 사람은 신에게 서로 일깨움을 준다.
이 양자관계 즉 신과 사람을 서로 만나게 하고 이어주는 마당이 서낭당이고 삼신당이 아닌가.

서낭당은 전통사회의 믿음 체계의 하나다.
성황당처럼 오래된 당집일수록 마을 안에 있었으나 조선 중후기로 접어들면서 마을 밖으로 벗어나기도 했다.

그 당집이 어디에 위치하든 여전히 민간 신앙은 우리의 삶 속에 하나의 실핏줄처럼 숨 쉬고 맥박이 되어 돌고 있다.
성황당으로부터 보다 구체화 된 삼신당 역시 읍성안을 지키는 마을신이다.
삼신당은 삼신 할매를 매개로 하여 자손을 번창하게 해 주는 신성한 곳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하회 사람들은 예부터 삼신당과 자신이 하나 되어 있음을 믿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제는 하회마을을 찾는 많은 사람들도 하나같이 삼신당에 들려 좋은 기운을 얻고자 소원지를 꽂고 간절하게 기도한다.
지금까지 삼신당신이 지켜 준 것을 감사하며 앞날도 지켜줄 것을 믿고 의지하고픈 마음으로….

김정식

대마문화콘텐츠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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