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6기·방폐장 안고 사는 시민에게정부 슬로건은 다른 나라 얘기일 뿐대책없는 에너지정책으


에너지정책은 한 국가의 근간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해마다 바꿀 수 있는 정책이 아니다. 100년 앞을 내다보고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문제다. 오랜 시간에 걸쳐 관련 전문가의 심도 깊은 연구는 물론이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다양한 의견을 듣고 토론해가며 결정해야 하는 중대한 일이다.
국가의 중대한 결정에서 가장 세심하게 따져봐야 할 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새로운 정책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국민이 없는가를 먼저 살피는 것이다. 국가의 정책 전환으로 생기는 국민의 피해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최소화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행정이란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원을 합리적으로 배분하는 기술이다. 여기에는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마음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행정은 기계적으로 법령을 집행하여 국민 위에 군림하는 거대한 폭력이 될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탈원전을 선언했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탈원전 정책으로 경주가 직격탄을 맞고 있다. 아무런 대책 없는 정부의 에너지 정책 전환으로 지역 경제가 입고 있는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한 마디로 지역 경제가 망가져 가고 있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인한 피해를 경주가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는 말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먼저, 월성 1호기가 조기 폐쇄되면 경주는 세수 440여억 원이 감소하고, 지역상생합의금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하게 된다. 원전종사자의 실직, 협력업체 등 연관 산업의 침체, 소비감소 등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나다. 여기에 나머지 원전의 설계수명까지 예상되는 지원금과 지역자원시설세를 포함하면 그 피해액은 상상을 초월한다. 한 도시의 존립마저 위태롭게 한다.
정부는 당장 탈원전에 따른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원전 지역 주민이 수긍할 수 있는 성의있는 설명과 실질적인 보상대책을 제시해야 한다. 지역경제가 탈원전 정책으로 더 이상 망가지지 않도록 살 방법을 내놓으라는 얘기다. 그렇다고 단지 금전적 보상만이 전부가 아니다. 원전을 대체하고 지역경제를 새롭게 이끌 신성장동력 마련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탈원전 대안으로 신재생대체에너지개발사업을 약속했다. 정부는 신재생에너지융복합타운 건설과 함께 원전해체연구센터, 제2원자력연구원, 원자력기술표준원, 방사선융합기술원 등 원자력에너지 클러스터 사업도 경주에 하루빨리 둥지를 틀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지금까지 경주는 정부의 에너지정책에 적극 협조해 왔다. 안전은 물론이고 환경에 있어서도 큰 리스크를 안고 천년고도에 원전 6기와 방폐장을 들였다. 하지만 현재 경주는 국가의 에너지정책으로 인해 오히려 더 큰 피해를 입고 있다. 타 시군에서 꺼리는 원전과 방폐장까지 수용하고도 주민의 삶은 더욱 어려워지는 비상식적인 상황에 내몰렸다.
문재인 정부의 슬로건은 ‘나라를 나라답게’다. 나라다운 나라는 무엇인가.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소외받지 않고 제대로 대접받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뜻이다. 같은 뜻으로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 상식이 통하는 공정한 사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지역과 계층은 물론 이념과 세대 갈등을 뛰어넘어 통합의 새 시대를 열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상하다. 이곳 경주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슬로건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원전 6기와 방폐장을 동시에 안고 사는 경주 시민에게 ‘나라다운 나라’는 다른 나라 얘기로 들린다. 탈원전 정책으로 고통받는 경주시민이 제대로 된 대접받을 때, 그것이 바로 ‘나라다운 나라’다.
큰 특혜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더 이상 피해를 떠넘기지 말라는 얘기다. 더 이상 정부의 대책 없는 에너지정책으로 고통받게 하지 말라는 얘기다. 여기에는 어떤 당파적 색깔도 지역색도 끼어들 수 없다. 국민의 생존권에 대한 당연한 요구다.
경주시민은 정부의 ‘공정한 과정’과 ‘정의로운 결과’ 속에 살아가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민이고 싶다.

주낙영

경주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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