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발명특허 받은 강소농, 안동 ‘재기네농원’

안동의 강소농 이재기(58)씨의 ‘재기네농원’은 와룡산(461m) 중턱에 있다. 해발 300m로 주변의 산들이 아담하다. 농장을 가는 길은 황룡이 용트림했다는 와룡산을 닮은 것인지, 꼬불꼬불 이어지는 좁은 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어느 순간 산중에 확 트인 들판이 나타나고, 그 끝에 ‘재기네농원’이 있다. 붉게 익어가는 사과는 탐스러웠고, 파란 가을 하늘과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자신의 손길이 스민 사과를 바라보는 이 대표의 얼굴에 흡족한 미소가 머문다. “4월 초순 저온현상으로 사과도 초기 피해를 입었으나, 다행히 이후에 날씨가 회복돼 우리 농장의 사과는 괜찮은 편이다. 농사는 하늘이 짓는다는 옛말이 맞는 것 같다”며 연신 사과를 어루만진다. 이 대표가 올해로 10년째 사과와 자두농사를 짓는 안동시 와룡면 일대는 사과재배에 적당한 기후와 토질을 갖추고 있어 와룡 사과단지가 조성돼 있다.

◆몸속에 숨어 있던 ‘농사DNA’

이 대표는 안동 토박이다. 조상 대대로 농사를 대물림해왔다. 하지만, 이 대표의 아버지는 아들이 힘든 농사일을 하는 것 보다, 편안한 생활을 하라며 대구로 유학을 보냈다. 대학에서는 정보통신과를 다녔다. 졸업 후에는 유명 전자회사에 취업해 직장생활을 하다가 고향인 안동에서 24년간 정보통신망 설치 등 정보통신업을 운영했다.
사업은 순탄했다. 성공했다는 소리도 들었다. 이 대표는 지금도 자신이 한때는 잘나가던 ‘통신맨’이었다는 자부심이 있다. 하지만, 핏줄 속에 흐르는 농사DNA를 지울 수가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고향산천이 그립고, 아버지가 하시는 농사일이 좋아 보이기 시작했다. 2008년부터 주말마다 아버지의 농사일을 조금씩 도왔다. 5년 뒤 농사꾼으로 완전히 변신했다.
그는 자신에게 흐르는 ‘농사DNA’를 가만히 추적해 보았다. 그 시작은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88년 전자회사에 근무할 당시, 일본 오사카에 3개월간 연수를 간 적이 있었다. 호기심 많고 학구적인 성격 탓에 일본의 구석구석을 다녔다. 그때 일본의 모내기 현장을 봤다. 일본농부는 흰색 운동화를 신고, 4조 식 승용이앙기를 타고 모내기를 하고 있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 ‘줄모’를 심고, ‘보행 이앙기’가 막 보급되기 시작하던 때였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한 일본의 농업기술과 장비가 이 대표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았다.

◆소득은 줄어도 삶의 질은 높아져

이 대표는 10년 전부터 정보통신업을 하면서 사과농사를 돕다가 5년 전에 농업으로 완전히 전직했다. 현재 사과(1만6천500㎡)와 자두(4천600㎡), 벼농사(4천㎡)를 해 연간 8천여만 원의 소득을 올린다. 사업할 때보다 소득은 많이 떨어지지만, 삶의 질은 훨씬 높아졌다. 농촌생활은 자유롭고 날마다 달라지는 자연현상을 보면 행복함을 느낀다. 농장을 둘러보면서 하루를 시작하고, 외출하고 돌아와도 농장을 거쳐서 들어온다. 농장을 가꾸는 것이 삶의 활력소가 됐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라 농사일에 푹 빠졌다. 농장 이름을 지으면서도 행복한 고민을 했다. 십여 가지의 이름을 늘어놓고 저울질하다가 결국 ‘재기네농원’으로 정했다. 자신의 이름을 걸 만큼 품질을 보증하는 맛있고 신선한 과일을 생산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기 위해서다. 이 대표는 언제나 농장에 들어서면서 ‘재기네농원’이라는 이름을 맘 속에 되새긴다. 농장 이름값을 하기 위해서다.

◆버릴 줄 알아야 진짜 농부

▲ 이재기 대표와 부인 김나은(56)씨.
▲ 이재기 대표와 부인 김나은(56)씨.

과수농사에서 가장 힘든 것은 적과작업(열매솎기)이다. 수확할 때도 힘들지만, 적과작업이 훨씬 어렵다. 사과는 통상 3회의 적과작업을 한다. 수확시기는 조금 늦출 수 있어도 적과작업은 늦출 수 없다. 제때 열매를 솎아야, 남은 열매들이 충실하게 자란다. 시간도 촉박하고 일손 구하기도 어렵다. 특히 5월 초 1차 적과작업이 가장 어렵다. 초보 일꾼은 아까워서 열매를 솎아내지 못한다. 적과작업은 마음을 비워야 한다. 과수 전문가들은 ‘버린다’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수확작업은 그 반대다. 수확하는 즐거움 때문에 도와주는 사람도 많다. 일손이 필요할 때 친척이나 친구들에게 부탁하면, 가족들까지 데리고 와서 도와준다.
적과작업은 미래를 위한 준비작업이지만, 수확은 현재의 작업이다. 그래서 5∼6월이 되면 과수농가들은 모든 일을 젖혀두고 적과작업에 매달린다. 이 대표는 “적과를 잘하는 농부가 진짜농부”라고 주장한다.

◆농사의 성패는 노동력 절감과 확보

▲ 이재기 대표가 개발해 특허를 받은 ‘과수나무 반사필름 피복장치’ 특허증을 들고 있다.
▲ 이재기 대표가 개발해 특허를 받은 ‘과수나무 반사필름 피복장치’ 특허증을 들고 있다.

농사는 자연과 사람이 함께 만들어내는 작품이다. 자연의 영향이 절대적이지만, 노동력이 없어 적기에 작업을 하지 못하면 한해 농사를 망칠 수 있다. 그래서 농사의 성패는 ‘노동력 절감과 확보’에 달렸다.
이 대표는 처음 농사를 시작했을 때, 성실하게 일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자연과 사람의 노력이 합쳐질 때에만 명품이 나온다는 것을 체득했다. 이것이 이 대표의 농사철학이다.
이 대표는 노동력 절감을 위해 끈질긴 연구끝에 ‘과수나무용 반사필름 피복장치’를 개발했다. 과수원 바닥에 깔아서 햇볕을 과일에 반사시켜 골고루 착색이 되게 하는 것이다. 반사필름 피복장치는 노약자용으로 나온 전동스쿠터와 스테플러의 원리를 적용했다. 지난 4월25일 특허를 받았다. 종전까지는 두 사람이 필름을 깔고, 일일이 흙으로 테두리를 눌러주어야 하는 힘든 작업이었지만, 이 피복장치를 이용하면, 혼자 하루에 3천 평 정도를 덮어씌울 수 있다.
요즘은 고정핀 수거공구도 개발 중이다. 이러한 노동력 절감장치를 활용할 경우, 농가별 재배면적을 확대해 농가 소득을 높일 수 있다. 농업도 ‘규모의 경제’를 도입해야 성공할 수 있다.

◆친환경 과수영농

‘재기네농원’의 기본 방향은 친환경 재배다. 화학비료와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는다. 풀과 사과를 함께 키우는 초생재배는 장단점이 있다. 가뭄 때는 물기를 보존하고 장마철에는 수분 과다를 막아준다. 또한 질소질의 과다를 막아 가을철 착색효과도 높인다. 그러나 풀과의 전쟁은 각오해야 한다. 과수원의 풀들은 하루가 다르게 자란다. 며칠 만 돌보지 않으면 과수원이 밀림처럼 변한다. 아무리 베내어도 끝이 없다. 그래서 “장마철 풀은, 베고 돌아서면 그대로 있다”는 말이 있다. 초생재배를 하지만, 적당한 간격으로 제초작업을 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풀이 너무 무성하면 각종 해충이 풀 속에 은폐하여 병충해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재기네농원’에서는 한 해에 평균 6∼7회 풀베기를 한다. 한여름 풀베기는 고된 작업이다. 주변에서는 제초제를 뿌려서 쉽게 하라고 권하지만, 이 대표는 그냥 미소로 대답을 대신한다.

◆반건조 사과 가공이 목표

재기네농원은 아직 1차 산업형태로 대부분 생과로 판매한다. 앞으로 가공과 관광을 겸한 6차산업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올해 농민사관학교 6차산업과정에서 공부하고 있다. 사과소비 감소에 대응한 전략이다. 맛과 영양이 보존되고 먹기 쉬운 ‘반건조’ 사과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젊은이들이 커피 대신에 반건조 사과를 들고 거리를 활보하도록 하는 것이 이 대표가 그리는 미래 그림이다. 귀농과 창농을 희망하는 사람들에는 “충분한 사전교육을 통하여 기술을 습득하고, 귀농 후에는 지역주민과 밀착하는 생활스타일을 유지해야 한다”고 귀띔한다.

▲농장명: 재기네농원
▲농장주: 이재기(2016강소농)
▲구입문의: 010-9747-8100
▲블로그: https://blog.naver.com/leejk2016
▲소재지: 안동시 와룡면 중가구못골길 75-12
글ㆍ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
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 민간전문위원
팜라이터, ilsok@korea.kr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