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 2만1년 10월의 어느 날. 훗날 울산으로 불릴 아늑한 어느 한반도 끝자락의 항구마을에서 네안데르탈인 남녀 한 쌍이 가쁜 숨을 내몰아 쉬고 있었다. 그들은 사피엔스인들이 갈무리해 준 침실에 천천히 몸을 뉘었다. 침실의 뒤편에는 이들을 신으로 모시는 사피엔스인들이 새겨 놓은 고래며, 물고기며, 거북이, 사슴, 호랑이, 멧돼지 등이 반구대에 병풍처럼 암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대대로 네안데르탈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 새겨진 그림이었다.
네안데르탈인 남: 또 한 해가 지나가는군. 이번 겨울은 우리 둘 다 넘기기 힘들겠지?
네안데르탈인 여: 그렇겠지. 작년 겨울도 마지막 남은 면역 강화제로 겨우 넘겼으니까.
남: 우리가 이 세상의 마지막 네안데르탈인이겠지?
여: 맞아. 살아있으면 매년 동짓날 저녁에 쏘아 올리기로 한 폭죽을 쏘는 것은 이제 우리뿐인 것 같으니까.
남: 다른 네안데르탈인들도 다 같은 운명이었을까? 이렇게 문명을 진보시키고도, 심지어 사피엔스에게 도구 사용법을 가르쳤던 우리의 최후가 이렇게 허무하다니… . 우리가 사피엔스보다 우월하다고 믿었던 것은 착각이었을까?
여: 아니, 우리가 우월했던 것은 확실해. 역사를 보면 우리 선조들은 사피엔스보다 훨씬 먼저 아프리카에서 유럽의 검은 숲으로 진출했어. 혹독한 환경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후에도 끊임없이 신대륙을 찾아 나갔지. 우리는 사피엔스보다 훨씬 우수한 체력과 지능과 진취성을 가지고 환경에 적응했어. 우리는 사피엔스에 비해 짧은 30년의 수명을 가졌지만, 그것이 오히려 우리의 진화를 촉진했지.
남: 하지만 지금 세상을 둘러보라고! 우리는 이렇게 멸종해가고 있는데, 아프리카를 벗어나면 병에 걸려 죽던 병약하고 겁이 많던 사피엔스는 이제 온 세상에 퍼져 나가고 있는 중이야!
여: 그건 우리가 병균이나 혹독한 환경과 싸우며 획득한 저항력이 사피엔스에게 전해졌기 때문이야. 지금의 사피엔스는 대부분 우리 선조와의 교배를 통해 전해진 유전자를 가지고 있어.
남: 사피엔스의 번영은 우리가 환영할 일이잖아? 그들은 우리를 하늘에서 내려온 신으로 모시고 받들어주니까. 수천 년 전부터 우리는 사피엔스의 충성어린 수발 덕분에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을 스스로 해결하지 않아도 되었고, 덕택에 훨씬 높은 지적 수준에 도달할 수 있었어.
여: 하지만 난 그게 우리의 멸종을 가속시켰다고 생각해. 우리가 모든 육체노동에서 해방되고 나니 우리 선조들은 스스로가 누구인지를 묻기 시작했고, 자기 자신에 대한 탐구에만 집착했지. 자식을 낳아 기르는 일은 점점 개인의 성취를 방해하는 일이 되어버렸어.
남: 수천 년 전에 출산율이 2 이하가 되어서 인구 감소가 확실했을 때, 아니 어쩌면 수백 년 전에 출산율이 1 이하로 떨어졌을 때라도 우리 선조들은 반드시 어떤 대책을 마련했어야 했어.
여: 하지만 대책이란 결국 아이를 낳아서 기르라는 것인데, 문명을 획득하고 별과 우주를 바라보던 현명한 네안데르탈인에게 개인적인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었겠지. 우리 둘도 평생 아이를 가질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잖아?
남: 네안데르탈인이 이룬 이 철학과 수학, 과학의 발견과 발전, 사람과 지구와 우주에 대한 이해와 통찰이 모두 헛된 일이 되다니. 우리가 멸종하고 나면, 아직도 문자를 가지지 못한 사피엔스가 우리의 수준에 도달할 날이 올까?
여: 나는 오래전부터 그 생각을 하고 준비해 왔어. 우리의 모든 지식을 어떻게 문자도 없는 사피엔스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를 말이야.
남: 준비? 그래서 결론에 도달했나?
여: 응, 나는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서 우리에게 매일 제사를 지내러 오는 사피엔스 제사장에게 궁극의 지식 한 가지를 가르칠 수 있었어. 아마 그 사실이 사피엔스들 사이에 퍼지기만 하면, 아주 천천히, 하지만 확실히 문명이 일어날 수 있을 거야.
남: 궁극의 지식? 궁금해지는군. 그래 그동안 제사장에게 뭘 가르쳤어?
여: 사피엔스 중에서 가장 똑똑한 제사장에게도 우리가 가진 모든 지식 중에서 딱 한 가지 밖에 가르칠 수가 없었어. 그것은 바로 “세상 모든 것은 더는 쪼갤 수 없는 원자로 되어 있다”였어.
BC 2만1년, 사피엔스에게 둘러싸인 채, 신이 되어 안락한 삶을 영위하던 마지막 한 쌍의 네안데르탈인이 있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그들은 그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말았다. 발달한 문명으로 사피엔스를 지배하던 그들의 비출산 문화는, 과학기술로도 피할 수 없는 멸종을 초래한 것이다. 이제 남겨진 호모 사피엔스들은, 스스로 문명을 건설하고 번영하며 멸종을 피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신재호

경북대 응용생명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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