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려상 - 헛제삿밥 / 박종희

발행일 2018-11-13 19:21:44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2018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놋그릇에 나물이 얌전하게 둘러앉았다. 마치 절 받을 준비가 된 제사상처럼 고춧가루를 넣은 음식은 보이지 않았다. 고사리, 도라지, 숙주나물, 시금치나물 등 눈에 익은 나물무침과 하얀 쌀밥, 부침개, 두부부침, 호박전, 삶은 계란, 고기 한 점, 고등어구이와 맑은 탕국 한 그릇이 다였다. 누런 놋 제기 위에 담긴 헛제삿밥은 30여 년 전 내가 처음 만났던 헛제삿밥하고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양념을 많이 하지 않고 깨소금에 무쳐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린 나물에 쌀밥을 넣고 간장으로 쓱쓱 비볐다. 탕국을 좋아하는 남편은 국이 슴슴해 비빔밥과 같이 먹기 좋다고 했다. 딸애는 30년 전에 나처럼 먹을 게 없다고 구시렁거렸지만, 시장기 때문인지 비빔밥 한 그릇을 다 비웠다. 소박하지만 정갈한 밥상을 앞에 두니 이상하게도 경건한 마음이 들어 시아버님의 첫 제삿날이 생각났다.

20여 년 전 시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맞는 첫 제삿날이었다. 시집와서 처음 제사상을 차리는 거라 아버님께서 좋아하시던 명란젓과 잡채, 갈비찜을 해서 올렸다. 고사리와 도라지, 숙주나물, 무나물, 시금치 등 나물도 다섯 가지를 무쳤다. 남편은 아버님이 생전에 그토록 좋아하시던 광어회도 한 접시 떠왔다.

제사상을 본 시누들과 시어머님은 몹시 난감한 표정을 지으셨다. 유난히 형식을 따지는 시누들은 제사상에 회를 올리고 명란젓을 올리는 사람은 처음 본다며 못마땅해 했다. 하지만 남편과 내 생각은 달랐다. 돌아가신 분이 음식을 드시는 것은 아니지만, 평소 아버님이 좋아하시던 음식을 차려놓고 고인을 추억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제사의 바른 의미라고 생각했다.

어릴 때 친정집은 제사가 많았다. 일 년에 일곱 번이나 제사를 지냈으니 친정어머니는 거의 두 달 건너 한 번씩 제사상을 차린 셈이다. 그때만 해도 제사는 꼭 자정이 되어야 지냈다. 그 바람에 제삿날이 오히려 배를 곯는 날이기도 했다. 초저녁부터 제삿밥을 기다리느라 밥을 굶고 자는 날이 허다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장손이라 하루 전에 도착하는 친척들 때문에 친정집은 항상 비좁았다. 그날은 제사를 지내는 의식보다는 오랜만에 만나는 친척들의 날 같기도 했다. 그 많은 친척도 제사를 지내기 전까지는 입맛을 다시지 못했다. 부엌에서 지지고 볶는 기름 냄새가 담을 넘어도 제사 음식이라 손도 댈 수 없었다.

자다가 일어나 늦은 시간에 제사를 지내고 나면 음식을 담아 이웃집에 돌렸다. 없이 살던 그 시절에 제사 음식은 특별했기에 조금씩이라도 나누어 먹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어렵게 살던 때가 오히려 사람 사는 정은 더 깊었던 것 같다.

어릴 때 이웃과 제사 음식을 나누어 먹던 것처럼 헛제삿밥도 조선 시대에 과거 공부하던 선비들이 있지도 않은 제사를 지내고 제사음식을 나누어 먹었다고 해서 유래된 전통음식이다. 먹을 것이 부족해 영양실조에 걸리기도 하는 유생들이 어떻게 하면 배부르게 맛있는 음식을 먹을까 하는 궁리를 하다가 제사음식을 생각해 냈던 것이다.

유생들은 잘 먹지 못해 늘 허기지고 헛헛했다. 그들이 얼마나 먹을 것이 없었으면 거짓 제사를 다 생각해 냈을까. 하긴 그 시절에 제사 음식만큼 푸짐하고 정성이 담긴 음식이 또 있었을까. 음식을 차려놓고 그들은 어떤 넋을 위로하며 헛제삿밥을 나누어 먹었을까. 유생들이 제사를 가장하고 차려먹은 헛제삿밥은 바로 우리 시누들이 돌아가신 아버님의 생신날을 빌미로 만들어 낸 헛제삿밥과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잔재미가 없는 시부모님 밑에서 자란 시누들은 가족들이 모이는 것을 지나칠 정도로 좋아했다. 정에 굶주려 무슨 건수라도 잡아 모임을 만드는 시누들은 부모님의 제삿날이나 명절날이면 우르르 몰려왔다. 사실 시누들이 기다리는 제삿날은 아버님을 추억하는 날이기보다는 식구들이 모이기 위한 구실 같은 헛제삿밥을 먹는 날이기도 했다. 부모님과 형까지 떠나보낸 남편도 동생들과 먹고 웃으며 지내는 시간을 은근히 즐겼다.

그때는 손님 치르는 것이 힘들고 부담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나니 그런 시간도 한때였던 것 같다. 이제는 자식들이 장성하여 다 같이 모이기도 어렵고 제사의 의미도 옅어지고 있다. 너나 할 것 없이 바빠지는 생활과 어려워지는 경제 때문인지 주변에도 제사를 챙기는 집이 줄어들고 있다. 우리 집도 제사를 간소화시켰다. 우리 집에서 지내던 제사를 몇 년 전에 장손 조카가 가져갔지만 일 년에 한 번 제사를 모아서 모시기로 했다.

남편과 딸애와 같이 헛제삿밥을 먹으면서 조선 시대 과거 공부하던 선비들을 생각했다. 그 시절에 그들은 어떻게 그런 기특한 생각을 다 했을까. 점점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세상으로 변하는 요즘에 정작 헛제삿밥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돈 들여 형식을 갖추고 푸짐하게 차리는 것만 제사상이 아니다. 헛제삿밥처럼 나물 무치고 전 몇 가지 부치더라도 정이 있는 밥상이면 충분하다. 일 년에 한 번 형제들 얼굴 보기도 어렵고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사는 이 허허로운 세상에 헛제삿밥 한 그릇으로 서로를 위로하면 어떨까. 고단한 삶과 정에 굶주려 벼랑 끝에 서는 사람들과 헛제삿밥을 빌미로 따뜻한 정을 나누면 좋겠다. 맵거나 짜지 않아 슴슴하고 담백한 헛제삿밥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30년 만에 다시 찾은 안동은 양반의 도시답게 깨끗하고 고풍스러웠다. 세월이 지나 다시 먹는 헛제삿밥은 예전의 내 혀가 기억하던 그 맛과 달랐다. 나물 맛을 모르던 아가씨의 입에서 겉돌던 싱거운 맛이 아니었다. 그만큼 나도 나이가 들었나 보다.

스물다섯 살의 아가씨는 나물을 먹을 줄 몰라 헛제삿밥이 맛없다고 느꼈는데 오십 대 중반의 아줌마 입에 씹히는 나물은 그렇게 구수하고 맛있을 수가 없었다. 남편도 헛제삿밥이라는 음식 이름 때문에 서먹했는데 담백하고 부담 없어 먹기 좋다며 우리 고장에도 이런 음식점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점심을 먹고 하회마을을 둘러보며 하마터면 양반의 고장인 안동의 아흔아홉 칸 종갓집 며느리가 될 뻔했다는 안동 남자와 맞선 본 이야기를 했더니 남편과 딸애는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잠자던 글쓰기 감각 일깨운 소중한 계기”수상소감


한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글 쓰는 것을 잊고 살았는데 수상 소식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부끄럽기도 하고 기쁘기도 합니다. 부족한 글을 뽑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잠자던 감각기관을 깨웠으니 앞으로 좋은 글 열심히 쓰겠습니다.

△2000년 월간문학세계 수필 신인상으로 등단

△시흥문학상 수상

△매월당 문학상 수상

△등대문학상 수상

△동양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 외 다수 수상

△충북작가회의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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