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김장문화 선도하는 울진 ‘산중가’

▲ 산과 동해바다의 태양을 모티브로 한 산중가 디자인.
▲ 산과 동해바다의 태양을 모티브로 한 산중가 디자인.

지난날 우리의 어머니들은 겨우살이를 대비해 추위가 극성을 부리는 날 김장을 했다. 마당에 김장독을 깊이 묻고, 광에 연탄을 가득 들여놓으면 “월동 준비를 마쳤다”며 흐뭇해 했다.
겨울 한 철 양식이었던 우리네 김장 문화가 바뀌고 있다. 맞벌이 가정과 아파트 거주 가구가 증가하면서 김치를 포기단위로 사 먹거나, 절임배추를 구입해 가정에서 간편하게 버무려서 먹는 가정이 늘고 있다.
이러한 김장ㆍ김치의 변화추세에 맞춰 절임배추로 새로운 김장 문화를 선도하는 강소농이 있다. 울진 ‘산중가’의 이영애(56)ㆍ용창식(57) 공동대표와 청년창업농 용한세(24)실장이 주인공이다. 24살의 아들이 일찌감치 농장에 합류하면서 힘을 얻어 농산물 가공을 통한 6차산업화에 도전하는 2세대 가족 강소농이다.

◆남편의 폭탄선언

‘산중가’ 용창식 대표는 젊은 시절 법학을 전공한 후 사법고시에 도전했다. 번번이 1차 시험에는 합격했으나, 2차의 벽을 넘지 못했다. 결국 진로를 바꿨다. 대구에서 외국어학원을 경영했다. 부인 이영애 대표는 미대를 나와 미술학원을 경영했다. 현실에 충족하며 열심히 살았다.
10년 전 어느 날, 외국어학원을 잘 운영하던 남편 용창식(57)씨가 귀향ㆍ귀농을 선언했다. 잘 운영하던 외국어학원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를 짓겠다는 ‘폭탄선언’이었다.
평온한 도시 생활에서 농촌 고향으로의 귀향문제는 인생에서 최대의 결정을 내려야 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였다. 이 문제로 이영애(56)ㆍ용창식(57)씨 부부는 오랫동안 의견충돌을 했다.
하지만, “우리가 60을 넘겼을 때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자”는 용 대표의 설득에 이 대표의 마음이 흔들렸다. 남편 용 대표가 먼저 1년 동안 귀촌ㆍ귀농생활을 경험해본 후, 결론을 내기로 합의했다.
결국 1년 후, 2009년에 전 가족이 고향인 울진군으로 귀농했다. 혼자 고향을 지키던 노모가 가장 반겼다. 동네 사람들은 40대의 젊은 부부의 귀농에 이상한 눈빛을 보내기도 했지만, 진심이 알려지면서 자연스럽게 해소됐다. 고향이라 정착하는데도 어려움이 없었다.
‘산중가’ 가족은 금강송이 우거진 산중 청정지역에서 청정한 먹거리를 만든다. 여름에는 배추를 키우고, 가을에는 절임배추를 만들며, 겨울에는 칡즙을 만든다. 틈틈이 국화와 목련을 비롯한 각종 꽃차도 만든다. 이를 통해 연간 1억 원의 소득을 올린다.

◆금강송의 맑은 기운을 맞고 자란 배추

▲ 산중가의 절임배추
▲ 산중가의 절임배추

흙과 더불어 사는 농사는 열심히 일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4년 동안 쉬지 않고 일만 했다. 그러나 소득이 오르지 않았다. 앞날이 막막했고, 귀농에 대한 회의감도 들었다. 그래서 가공으로 눈을 돌렸다.
2013년 처음으로 2천 포기의 김치를 만들어서 팔았다. 전량 판매를 완료했지만, 집집마다 입맛이 달라 모두의 입맛을 맞추기 힘들었다. 김치 판매는 지속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절임배추로 전환했다.
‘산중가’ 농장은 8월5일쯤 배추를 파종해 90일 정도 키워 11월 초에 수확한다. 산중가의 배추는 금강송의 맑은 기운과 동해의 해풍을 맞고 자란다. 이영애 대표는 “울진의 배추는 금강송의 솔향을 품은 땅에서 울진대게의 부산물로 만든 ‘키토산 퇴비’를 이용해 키우고, 해풍을 맞고 자라 담백한 맛이 특징”이라고 자랑한다.
절임배추를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많이 신경을 쓰는 부분은 청결이다. 3년간 묵혀서 간수를 완전히 제거한 천일염으로 절인 후, 버블 세척기를 이용해 3단계 세척을 한다. 가정에서는 양념과 버무리기만 하면 된다.
청결을 강조하다 보니, 절임배추는 포장을 하면서 모든 포기에 대한 전수검사를 이 대표가 직접 한다. 이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흠이 있거나 절임상태가 완전하지 못하면 폐기한다. 이런 철저한 검수 과정을 거친 덕분에 소비자로부터 항의나 반품사례가 발생한 적이 없다.

◆아들의 귀농선언

▲ 산중가의 용창식 공동대표(오른쪽)와 아들 용한세 실장이 절임배추를 만들기 위해 배추절단 작업을 하고 있다.
▲ 산중가의 용창식 공동대표(오른쪽)와 아들 용한세 실장이 절임배추를 만들기 위해 배추절단 작업을 하고 있다.

군대를 제대한 아들이 복학을 포기하고 농사를 짓겠다고 했다. 이건 또 무슨 날벼락인가? “학교전공이 맞지 않고, 오히려 농업이 전망이 있어 보인다”는 것. 이 대표는 또다시 가슴앓이를 했다. 체육대학 진학을 원하던 아들을 억지로 전망이 밝아 보이는 학과로 보낸 것이 화근이었다.
하지만, 아들은 “부모님이 농사를 짓는 모습을 보면서 농업은 전망이 밝고, 충분히 고민하고 내린 결정”이라면서 당당하게 소신을 밝히는 모습을 보고 아들의 귀농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가공실장’이라는 큼지막한 직함을 부여했다.
용창식 실장은 농산물 가공 분야에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 이 덕분에 올해 청년창업농으로 선정돼 스스로 길을 열어가고 있다. 결혼을 약속한 여자 친구도 용실장의 귀농을 적극적으로 후원하고 있다. 용실장의 귀농을 후원하기 위해 경북지역 근무를 지원해 포항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양념키트로 새로운 시장 개척

‘산중가’ 농장은 절임배추를 전문으로 하지만, 3년 전부터 김장용 양념키트를 개발해 판매한다. 나만의 김치를 만들고 싶다는 고객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개발한 신상품이다.
양념키트는 절임배추 20kg을 기준으로 7kg으로 만든다. 기본적으로 고춧가루와 마늘, 젓갈을 육수에 버무려서 만든다.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양념이다. 고객은 양념키트에 입맛에 맞는 청각이나 쪽파 등을 첨가해서 김치를 버무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다행히 양념키트는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맞벌이하는 젊은 주부들이 직접 김장 준비를 하기는 어려운 점을 활용해 개발한 신상품이기 때문이다. 주거환경의 변화에 따라 양념키트의 판매는 계속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절임배추와 양념키트를 함께 구입하는 가정이 크게 늘었다.

◆주문 누락의 악몽

‘절임배추’는 날짜가 생명이다. 예약한 날에 배송하지 못하면 큰일난다. 지난해 서울의 어느 중소기업으로부터 구내식당용 절임배추 13상자를 주문받았으나 잊어버리는 큰 실수를 했다. 밭에서 일하던 중 받았던 전화라 메모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장준비를 마친 고객이 “내일 김장을 해야 하는데 배추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고 전화를 해왔다. 하늘이 캄캄했다. 다행히 여유 물량으로 온 가족이 밤늦도록 포장작업을 해 포항 버스터미널에서 새벽 첫 버스에 싣고 용 실장이 직접 배송에 나섰다. 울진에서 포항으로 다시 서울터미널에서 용달 차량에 옮겨 싣고 달리는 특급 수송 작전을 펼친끝에 겨우 오전에 배달할 수 있었다. 용 실장은 수없이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자신이 먼저 앞치마를 두르고 김치를 버무렸다.
지난해 실수를 한 때문이었을까? 올해는 아직도 주문고객 명단에서 그 고객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 고객관리의 중요성을 크게 깨달은 셈이다. 이 대표는 이제 수첩과 연필은 언제 어디서나 반드시 챙기는 버릇이 생겼다.

◆청년창업농의 꿈

▲ 산중가에서 만드는 각종 꽃차.
▲ 산중가에서 만드는 각종 꽃차.

청년창업농 용실장의 꿈은 크고 야무지다. 부족한 농업기술교육을 배우면서 가공을 통해 꿈을 이룬다는 계획이다. 지금까지 부모님들은 절임배추를 만들어 판매하는 1차 가공에 의존했으나, 이제는 본격적인 가공과 관광을 가미한 6차 산업화를 추진하고 있다.
용 실장은 “농사는 땅을 기반으로 해서 열심히 일해서 고품질 다수확을 하는 것이 기본이지만, 이제는 유통과 판매는 물론 관광을 겸한 6차산업화로 부가가치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고 강조한다.
그동안 품질을 바탕으로 한 직거래 방식에서 한 단계 더 발전시켜 불특정 고객을 상대로 적극적인 마케팅을 추진한다는 당찬 계획도 세웠다. 이를 위해 내년에는 농민사관학교에 입학해 가공과 마케팅교육을 받을 준비를 하고 있다.
특히 여행객들에게 가장 낭만적이고 먹거리가 많다고 알려진 ‘피시로드’인 동해안 7번 국도를 ‘푸드로드’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용실장의 꿈이다.
▲농장명: 산중가
▲농장주: 이영애. 용창식 (2015강소농)
▲구입문의: 010-3764-0594, 010-4199-4784
▲블로그 : https://blog.naver.com/edcrfv987
▲소재지: 울진군 매화면 갈면대평길 283-14
▲이메일: edcrfv987@daum.net
글ㆍ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
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 민간전문위원
팜라이터 ilsok@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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