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려상 / 창이 있는 미술관-이행희

발행일 2018-12-02 19:34:44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2018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이리저리 뻗은 소나무 줄기 사이로 커다랗고 펑퍼짐한 봉분이 자리했다. 공원 입구 양쪽에 자리한 거대한 무덤이 여기가 천년고도임을 몸으로 보여준다. 펄럭이는 깃발과 번잡한 행사장을 지나가니 숲이 우거진 언덕이다. 송두리째 몸을 내밀어 손님을 반기는 굽은 소나무 아래로 나무계단을 오른다. 시정의 어수선한 소리들이 일순 모두 사라진다. 다른 시공간으로 순간이동이라도 한 듯하다. 해묵은 왕벚나무 길을 따라가니 나지막한 장방형 건물이 나타난다.

좁고 긴 나무 막대기들을 이어 붙인 벽면이 친근하다. 90도로 꺾여 연결되는 넓은 벽은 나뭇결이 새겨진 길쭉한 황토빛 블록을 세워 붙여, 나무판자로 지은 듯한 느낌을 준다. 질박한 구조물이 아름다운 풍경 속에 편안하게 녹아 있다. 오랜 세월 무던하게 그 자리를 지켜온 바윗덩이 같기도 하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건축가 승효상의 작품, 경주 솔거미술관이다.

건축가 승효상, 그는 우리나라 현대 건축의 선구자 김수근 문하를 거쳐 현재 건축사무소 이로재(履露齋)를 운영하고 있다. 미술평론가 유홍준의 자택인 수졸당,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등을 설계하였으며 국내뿐 아니라 중국 등 아시아 지역과 미국, 유럽 곳곳에 그가 디자인한 구조물이 있다.

어느 날 남루한 달동네를 지나던 그는 가진 게 적은 이들이 많은 부분을 서로 나누며 살고 있는 공간 구조에 감탄한다. 그리고는 ‘빈자의 미학’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평생의 화두로 삼아 작업 중이다. ‘빈자의 미학’이란 가난한 사람의 미학이 아니라 가난할 줄 아는 사람의 미학이라고 역설한다. 가난할 줄 안다는 것은 바로 비우고 나눌 줄 안다는 뜻이렷다.

솔거미술관은 한국화의 거장, 소산 박대성 화백이 수백 점의 작품을 기증하여 경주 세계문화엑스포공원 내 아평지 연못가에 지어졌다. 신라 시대의 유명한 화가 솔거率居의 이름을 따, 2015년 문을 연 공립미술관이다.

솔거가 황룡사 벽에 그린 노송은 몸통이 비늘처럼 터져 주름졌고 가지와 잎이 얼기설기 굽어 새가 날아와 앉으려 했다는 설화가 유명하다. 훗날 색이 바래어 단청으로 덧칠을 했더니, 까마귀와 참새가 다시는 오지 않았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그의 작품은 세월 따라 모두 훼손되어 사라지고 설화 속에서만 존재한다.

전시실로 들어가자 낙락장송 한 그루와 맞닥뜨린다. 벽면을 뒤덮은 소산 박대성 화백의 대작이다. 밝은 만월 아래 침엽 한 잎 한 잎이 선명하고 풍성하다. 수묵으로 그린 흑백의 세계에 노란 달이 빛을 뿌린다. 힘차게 뻗은 가지에는 굴하지 않는 화가의 기개가 어려 있다. 달빛 아래 소나무만큼 먹물과 어울리는 소재가 또 있을까.

맞은 편 벽도 온통 소나무 숲이다. 커다란 노송들이 전시실 마루에서 천장까지 솟았다. 옛 문인화의 한 편에 시구를 적어 넣듯 화백은 소나무 발치에 자신의 이야기를 한글로 풀어 놓았다. 서체가 유려했다. 유년시절 들은 신라의 솔거 이야기를 평생 가슴 속에 품어왔다는 그는 이 그림을 그리고서야 그의 꿈을 이루었다고 했다. 살아 숨 쉬는 듯한 소나무를 그리려 평생을 노력해 왔을 그의 집념이 가슴 아리게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 다시 한 번 그림을 세세히 살펴보았다. 구불구불한 노송들의 자태에서 기가 뻗어났다. 소산의 염원에 감응한 솔거의 넋이 천 년의 시간을 건너와 그의 손을 움직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소산은 십여 년 전부터 경주 남산에 터를 잡아 그림을 그리고 있다. 전시실 가운데 놓인 긴 나무 의자에 걸터앉아 작품을 감상한다. 마치 남산기슭 소나무 그늘 아래 쉬고 있는 듯 마음이 고요해진다. 바깥세상을 잊는다.

경사진 회랑을 따라 오르내리고 중정에서 잠시 쉬기도 하며 차례로 전시실을 찾아간다. 웅장한 산수화와 섬세한 화조화를 감상하며 걷다 보니 그림이 있어야 할 자리에 네모난 유리창이 하나 나타난다. 바닥에서부터 사람 키 높이만큼 트여 있다. 창 밖에 있는 연못과 하늘, 그리고 나무와 풀을 담담하게 품고 있다. 창은 건축가 승효상이 미술관에 선물한 작품으로, 날씨와 시간과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그림이라는 해설사의 설명이 함축적이다. 고쳐 그리지 않아도 되는, 자연을 그대로 받아 안은 겸손한 그림이다. 인간의 작품이 어찌 자연을 넘어설까. 거기다 시간의 흐름까지 담아내다니, 오늘 마주한 그림들 중 가장 훌륭한 그림일지도 모르겠다. 자욱하게 비 오는 날 이 창 앞에 서고 싶다.

그러고 보면 그림도 창이다. 그림을 통해 화가는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나타내고, 우리는 화가의 사유와 감성을 미루어 짐작한다. 작품은 그가 자신을 보여주고 우리가 그를 들여다보는 창이다. 솔거미술관에서 승효상의 창과 소산의 창을 보았다. 이들은 모두 지극히 한국적이고 자연친화적이었다. 정답고 편안했다.

나무데크로 이루어진 테라스로 나온다.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 건축물을 이어주는 트인 공간이다. 한 쪽은 사무실과 상설 전시실이 있는 큰 구조물이고 다른 쪽은 기획전시실이 있는 작은 공간이다. 테라스는 우리 전통 주택에서 바깥채와 안채를 연결해 주는 마당 역할을 한다. 여기에 서면 아래편 연못과 문화엑스포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황룡사 9층탑을 음각으로 새긴 경주타워가 파란 하늘과 잘 어울린다. 그 뒤편으로 경주타워에서 빠져나간 듯, 황룡사 9층탑 모양의 건물이 양각으로 서 있다. 마치 서로를 끌어당기는 모양새로 서 있는 모습이 일품이다.

승효상의 창이 품었던 아평지 연못으로 향한다. 신라 때 군마에게 물을 먹이던 곳으로 추정되는 아평지는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운치 있고 아늑한 못이 되었다. 연꽃이 곱게 피어 있고 못을 둘러싼 나무들이 나지막하게 물 위로 가지를 뻗고 있다.

바람이 분다. 못 앞의 기다란 풀잎들이 다 같이 눕는다. 바람을 따라 굽이치는 푸른 곡선의 흐름이 소산의 그림 속 굽은 소나무 가지를 어루만지던 바람과 같다. 천년고도의 산기슭을 감아 흐르는 구름의 결도 곡선이다.

내 가슴에 바람 흐르는 창이 하나 열린다.

“수필 쓰기 통해 세상을 보는 폭 더 깊고 넓어져”수상소감


공모전에 처음으로 응모해 봤습니다. 장려상을 받게 됐습니다. ‘장려’의 정확한 뜻을 알고 싶어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니 ‘좋은 일에 힘쓰도록 북돋아 줌’이라고 나와 있었습니다. 좋은 일을 계속하도록 초대받은 셈이라 무척 기쁩니다.수필이 뭔지도 모르고 무작정 쓰고 싶은 것을 끄적이기 시작했더랬습니다. 어떻게 써야 하는 건지도 모르면서 그냥 썼습니다. 어떤 것은 생각보다 쉽게 써지기도 하고 또 어떤 것은 풀어나가기가 너무 힘이 들어 마무리도 못 하고 기진맥진하기도 했습니다. 글이 되는지 아닌지도 모르면서 계속 이것저것 써갔습니다.

막연하기만 했던 시간이 지나가면서 글쓰기를 잘 시작했다는 생각이 서서히 들더군요. 무심히 지나치던 것들에 대해 여러 각도에서 생각해 보게 돼, 세상을 보는 폭이 조금 더 넓고 깊어진 듯합니다. 그것은 바로 저 자신이 크고 깊어지는 일이었고 스스로 잘 몰랐던 저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니 수필 쓰기는 그냥 좋은 일을 넘어서 참 좋은 일인 듯합니다.

참 좋은 일, 수필 쓰기에 힘쓰도록 북돋움을 받았으니 열심히 꾸준하게 작업해보겠습니다. 뽑아주셔서, 북돋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2013년 ‘수필과비평’ 등단

△부산문인협회, 부경수필문인협회 회원

△수필집 ‘노을을 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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