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소 문경아 새재는 웬 고갠지 굽이야 굽이굽이가 눈물이 나네~”
아리랑 구성진 가락에 문경새재 높은 고갯마루도 가쁜 숨을 쉬어간다. 소백산맥 준봉들이 흘려놓은 산 부스러기가 고봉을 엎어놓은 듯 작은 들판 위에서 봉긋하다. 계곡을 따라 이어지던 길이 기역자로 꺾어지는 농암천을 건넌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여남은 채 되는 농가 끄트머리에서 빼꼼 고개를 내민 파란 지붕이 푼더분하다.
사라져가는 것들은 모두 외로운 시간들을 견뎌야 하나 보다. 문경 농암면 내서리의 나지막한 산자락에 자리한 문경한지장전수관은 개 짖는 소리마저 들리지 않는 고요 속에 앉아 있다. 지대석 위에 ‘삼식지소’라고 돋을새김한 비석이 없었다면 잰걸음으로 그냥 되돌아나갔을지도 모른다. 허름하게 기운 옛 작업장이 그대로다. 집 앞에는 여름 한 철 울창하던 닥밭이 겨울 햇살 속에 누워 민숭민숭한 털을 고르고 있다. 흙 가마 위에 켜켜이 쌓아놓은 닥나무 몇 단만이 코끝이 매콤한 겨울바람을 이기고 있다.
낯선 방문객을 목전에 세워놓고 무형문화재 김삼식 선생의 손길이 분주하다. 한 며칠 매서운 추위가 계속되어 닥 껍질 벗기기 좋은 날이란다. 어른 키만큼 자란 닥나무가 된서리를 맞고 누런 잎이 지면 밑동까지 바짝 잘라 가마의 뜨거운 증기로 여덟 시간씩 푹 찐다. ‘닥무지’의 과정을 거쳐 껍질이 흐물흐물해진 닥은 닥칼로 쓱쓱 민다. 이때 뱀 허물처럼 벗겨지는 겉껍질을 피닥이라고 한다. 정어리처럼 매끈한 가지는 구들을 뜨듯하게 데울 장작으로 들어가고 거무튀튀한 나무껍질이 종이가 된다니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닥 껍질 벗기기가 한창인 작업장 바로 옆 난간에 피닥들이 치렁치렁 널려있다. 물을 뿌려가며 얼렸다가 다시 빠닥빠닥 말리는 중이다. 날이 추워야 단단한 껍질이 잘 벗겨진다니 아이러니하다. 월동을 해야 꽃나무에 꽃이 피듯 닥도 겨울을 나야 종이로 거듭날 수 있는 모양이다. 나무의 본성을 그대로 지닌 채 얼었다가 녹는 과정을 반복하는 피닥을 보고 있자니 나를 보는 듯 친숙하다.
음력 시월 열여드렛날, 분만실에서 밤새도록 힘을 주던 나는 난간에 널어놓은 피닥처럼 맥없이 널브러져 있었다. 열 시간 남짓한 진통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내려오기는커녕 거꾸로 돌아앉으며 가슴께를 치받기 때문이었다. 생사가 오가는 분만실 문을 밀고 들어온 촌부가 의사의 가운자락을 애타게 붙잡았다. 손이 귀한 집안의 외동 며느리인 어머님이셨다. “아들이겠능교, 딸이겠능교?” 딸이면 남우세스럽다며 수술동의서에 도장을 찍어주지 않으셨다. 간호사의 연락을 받고 급히 달려온 남편의 동의 끝에 수술은 정오가 다 돼서야 이루어졌다. 그날의 우여곡절 끝에 아들을 낳고 덤으로 주먹만 한 종양이 앉은 난소 한쪽도 떼어냈다. 하지만 골라내고 또 골라내도 종이에 남은 한 점 티끌처럼 마음 구석에는 남모르는 서러움이 조그맣게 박혀 있었다.
수북한 피닥을 앞에 두고 동굴 속 곰처럼 웅크리고 앉는다. 크게 숨을 들이쉰다. 마음속에 들러붙은 흑피를 빡빡 긁어내면 닥 껍질은 가려져 있던 뽀얀 본성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속껍질인 백닥이다. 한지장은 물에 불린 백닥을 콩대와 고춧대를 태워 만든 잿물에 넣고 푹 삶은 후 오래도록 뜸을 들인다. 재의 알칼리 성분이 한지를 더욱 탄력 있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증해’의 과정을 거친 닥은 다시 흐르는 물에 사나흘 담가두었다가 햇볕에 내어놓는다.
햇살에 바래지며 닥은 더욱 뽀얗게 거듭난다. 그 위로 가끔 내게 보여주신 어머님의 내리사랑도 겹쳐진다. 퇴근 시간보다 더 일찍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아이를 거둬주시기도 하고, 새색시라는 타이틀이 떨어진 지 오래되었어도 냉장고의 반찬이 떨어지기 무섭게 김치를 담가주기도 하셨다. 어머님의 정성에 감복하여 딴에는 잘해보겠다고 나도 최선을 다했다. 맏며느리도 거들지 않는 제사상을 차리거나 자주 찾아뵈어 곰살궂게 다가서려 애썼다. 십수 년간은 피닥처럼 추리한 나도 말간 햇살에 꾸덕꾸덕 말라 하얗게 표백되었으리라.
한지를 만들 때 가장 많은 노력이 들어가는 시간이 백닥을 만들기까지다. 지난한 공을 들였다고 해서 만반의 태세를 갖춘 건 아니다. 닥 돌 위에 올려놓고 닥 방망이로 곤죽이 되도록 두들기는 ‘고해’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혹독해 보여도 비로소 딱딱한 나무의 본성을 버린 닥이 마지막 고치를 만드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 수백 수천 번의 짓이김을 통해 야들야들해진 닥 섬유를 보면 그 고통의 시간들을 어떻게 이겨냈을까 대견하기만 하다.
문득 고통스러웠던 지난 일이 생각난다. 남편의 실수로 우리 식구가 거리로 내쫓길 상황에 놓였다. 불똥은 엉뚱한 곳으로 튀었다. 아들에게 바가지를 긁을까 봐 지레 염려가 되신 어머님이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리며 친정어머니에게까지 모진 말을 쏟아냈다. 천만 갈래로 마음이 찢겨진 내가 궁지에 몰린 쥐처럼 발끈한 것은 일종의 쿠데타였을 것이다. 알게 모르게 쌓인 그간의 서러움이 폭발한 나는 그날 이후로 어머님을 쳐다보지 않았다. 그렇게 돌아선 내 마음도 편하지는 않았다. 홀로 제사 지내는 어머님이 안타까워 슬쩍슬쩍 눈길을 돌리곤 했다. 불똥거리는 서운함과 싸우느라 스스로를 짓이기던 시간은 어쩌면 나를 한층 더 성숙시키기 위한 날들이었을지도 모른다.
고해를 거친 닥 섬유를 물이 가득한 지통에 풀어 긴 막대로 휘휘 저어가며 풀대친다. ‘해리’의 과정에서 반드시 넣어야 하는 것이 닥풀이다. 서리 내리기 전의 황촉규 뿌리를 짓이겨 만든 끈끈한 점액질을 닥물에 섞으면 닥 섬유가 물에 가라앉지 않고 고루 퍼진다. 양떼구름처럼 동동 떠다니는 닥 섬유를 한 움큼 뜨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감촉이 미끌미끌하다. 은근슬쩍 마음을 토닥여준 시누님들 손길 같다. 덕분에 맺힌 응어리도 조금씩 풀어졌는지 흐르는 속도를 조절해가며 적당한 종이 두께를 만들어 나갈 수 있었던 듯하다.
가끔 어머님께 안부전화를 한다. 그러면 불효한 지난 일은 다 묻어두고 백발성성한 어머님의 목소리가 성근 가슴속으로 들어앉는다. 이제야말로 제대로 된 종이를 뜰 수 있을까? 결심 끝에 공중에 매단 줄 하나에 의지한 틀을 전후좌우로 흔든다. 어느 종이보다 한지가 질긴 이유는 담아두는 법 없이 종이 물을 곧바로 흘려보내기 때문이다. 앞으로 떠서 뒤로 흘려보내고 좌로 떠서 우로, 우로 떠서 좌로 흘려보내는 외발뜨기를 통해 유난히 긴 닥의 섬유질은 얽히고설켜 단단한 고를 이룬다. 고부간도 마찬가지이다. 잘잘못을 따지기보다 서로의 허물을 감싸 안을 때 사이는 더욱 돈독해지는 것이 아닐까.
조금만 더 유연할걸. 매사 지나치게 뻣뻣했던 내가 후회스럽다. 지난 세월이 덧없어진 나는 차곡차곡 포개어둔 습지 위에 묵직한 돌을 얹어 물기를 쭉 뺀다. 그러고는 다시 달군 철판 위에 얹어 여분의 눈물을 건조시킨다. 바싹 마른 종이는 상처를 머금었던 후유증으로 아직도 표면이 우툴두툴하다. 홍두깨로 두들겨 거친 표면을 다시 매끄럽게 다듬는다. ‘도침’의 과정을 통해 그간의 케케묵은 감정의 찌꺼기는 모조리 여과되리라.
“딱재이여. 한지 만드는 사람을 경상도 사투리로 그리 불러.”
나를 향해 불쑥 던진 한지장의 주름진 미소가 따습다. 윤기 자르르하고 유난히 질긴 한지를 닮아 굴곡진 인생이 은은하게 투영되어 보인다. 한 그루의 닥나무가 변하여 한지가 되듯 세상을 대하는 내 마음도 한결 부드러워지고 넉넉해지는 듯하다. 얽히고설키며 오늘도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는 나 역시 종이를 뜨는 ‘딱재이’인 것을.

“포기하지 말고 글쓰기 도전하라는 용기 얻어”

수상소감

참 덥고 지루한 여름이었다. 나 혼자만 더우면 짜증이라도 내겠는데 저 하늘 전체가 들끓고 있으니 뭐라고 불평도 못했다. 비단 날씨만 그랬을까. 건강에 대한 염려로 오랫동안 연필을 놓고 있으면서도 마음 언저리는 늘 수필에 가 있었다. 하지만 글은 점점 더 멀어졌다. 혼자 글을 쓰다 보니 당겨주는 문우가 없어서 더욱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바람도 선선해진 구월, 가족들과의 여행으로 문경에 들렀다. 천년 종이 한지를 만났다. 한 그루의 닥나무가 한 장의 종이가 되가는 과정을 지켜봤다. 우리네 삶과 무에 다르랴. 다녀와서 올해 처음으로 연필을 긁적였다. 공모전 마감 날짜가 바로 코앞이라 빠듯했지만 며칠 만에 글 한 편이 만들어져서 정말 좋았다. 나는 아직 죽지 않았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해마다 경북문화체험에 공모하는 이유는 문화체험을 워낙 좋아하는 때문이기도 하지만 큰 상을 한번 받아보고 싶은 욕심도 있어서였다. 글쓰기를 시작한지 어느덧 8년. 그동안 잠시 절필했던 몇 년을 제하고라도 장독 하나 깼을만한 시간이다. 그동안 크고 작은 상을 받았지만 늘 목이 말랐다. 그럴듯한 대표작이 없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올해 역시 내 성에는 차지 않는다. 하지만 또 한 번의 귀한 상을 주셔서 무척 감사하다. 포기하지 말고 다시 한 번 더 글을 쓰라고 용기를 주신 듯하다. 종이를 만들 듯 앞으로는 꾸준히 글을 쓰겠다.

△ 1967년 출생
△ 제6회 철도문학상 우수상(2014)
△ 제6회 시흥문학상 우수상(2014)
△ 제1회 여자의 행복 수기공모전 대상(2015)
△ 제2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은상 (2015)
△ 제4회 등대문학상 우수상(2016)
△ 제7회 독도문예대전 최우수상(2017)
△ 제11회 해양문학상 은상(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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