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보름께의 달이다. 언저리가 환하다. 달빛에 의지해 한밤의 추위와 어둠 가득한 터미널을 빠져나온다. 서둘러 걸음을 옮기는 발 앞으로 어두운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있다. 점점이 불그스름한 물체가 그림자에 박혀 도드라진다. 놀란 마음이 걸음을 막지만 발은 이미 그림자 속에 들어선다. 달빛이 환할수록 그림자는 길고 짙다. 그림자가 된 몸이 그 그림자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바닥의 물체를 밟지 않기 위해 매트릭스의 주인공과는 다르게 허우적이며 림보를 하는 순간에야 넋을 잃는다. 쭉 뻗은 나뭇가지 사이로 풍성한 잎사귀와 알알이 매달린 감들이 달빛 쟁반 위에서 빛난다. 머잖아 곶감이 되고 홍시가 될 수많은 열매를 만들어 낸 나무의 자태는 밤이 주는 위용에 힘입어 더욱 아름답다. 절정을 향해 가는 열매 역시 그림자만큼이나 힘이 있다. 단단하다. 곱다.
축제가 끝난 도시, 술 취한 이들의 소란만 아니었다면 달빛이 비추는 나무 아래 좀 더 머물렀을 게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밤이 새도록 감을 세고 있었을 게다. 사뭇 깨져 버린 감흥이 낯선 도시에서 무엇을 하고 있나 회한을 몰고 온다. 분명 나는, 옹골져서 돌아가겠노라 했다. 사표를 쓰고 귀농의 도시에 머물기로 한 건 기능을 상실한 몸보다 한 발짝 먼저 엎어져버린 마음을 추스르기 위함이 컸다. 귀농·귀촌 도시가 당연하게 나를 농부로 만들어 줄듯이 단단한 열매를 맺으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툭. 가을이 더욱 깊어가고 있건만 여물지 못한 열매가 힘겨운 듯 떨어져 내린다. 의지란 갖기보다 갖지 않기가 쉽다. 더 쉬운 쪽에 기대어 방기했던 날들이 떨어져 내리는 것만 같다. 이를 보는 나무의 마음이 나와 같을까. 나는 묻는다. 열매 하나와 감나무, 어디에다 실패를 덧씌워야 할지를. 내 오랜 침묵과 칩거는 실패라는 단어에서 헤어나지 못한 결과인지 원인인지를.
그 나무가 보고 싶다 생각한 건 순간이다. 새벽녘, 몰아치는 비바람이 아물지 않은 감을 떨구던 때였으니 줄곧 존시(Johnsy)로서 그 나무를 보고파 했는지도 모른다. 하늘 아래 첫 감나무라 했던가. 750년 세월을 먹은 감나무라 했다. 가로수도 감나무인 곶감의 도시, 곶감특구로 지정된 상주 외남면에는 임금께 진상된 곶감 나무로 알려진 감나무가 있다. 1468년 조선 예종실록 속 곶감을 영글었던 감나무는 지금까지도 수천 개의 감을 내어놓고 있다. 비바람이 몰아쳤으니 마지막 잎새 하나 힘차게 펄럭일 때 그제야 병상에서 일어나겠다는 존시라면 고목의 위용보다 감나무가 감을 지켜 안고 있을까가 더 궁금할 테다.
가는 길, 부랴부랴 찾아본 기사에서 하늘 아래 첫 감나무는 200여 년이 젊어져 있다. 2010년 산림과학원 유전자 분석에서는 530년생 최고령 접목나무로 감정되었다 한다. 그만큼 젊어졌으니 수천 개 열매 맺기쯤이야 뭐가 어려우랴. 자연스레 흘러가는 삶이 노화이고 퇴화일진대 병증에 흔들리고 소멸하는 것 또한 당연할 터, 무어 욕심으로 지금껏 감꽃을 피우는 청춘이냐고 나는 따질 터였다. 베어먼 할아버지라도 다녀갔을까 두려움을 안고서, 존시로 살던 내 삶을 정당화하고 연장하려는 발버둥이었을까.
햇볕이 옹골차게 들이차는 곳에 자리한 감나무는 쉬이 지나칠 만큼 평범했다. 오랜 수령을 자랑한다면 내 복부만큼이나 커다란 둘레와 마천루만큼이나 높은 키를 자랑해야 했다. 최고란 수식어에 그저 크게, 화려하게만 여기며 반발을 품고 온 게 무색할 만큼 야윈 노목에 멍해진다. 밑동은 썩고 줄기는 갈라진 채 확연히 늙음을 드러낸 나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여물어가는 감을 받치고 선 굽은 가지가 증손주를 안고 ‘세월아 비켜라 내 나이가 어때서’를 노래하던 할머니를 떠올리게 한다. 행복하게 더 오래 사세요, 할머니께 하던 말인데 사실 늙음은 소멸이라 마음에 품고 있었다 말할 수 있을까. 아니 하나의 생명이 존재를 다한 채 빛을 발하는 모습이 경이롭게 느껴진다. 응당 그것이 삶이거니 그런 삶의 황홀을 맞보기를 바라기에 일찍 찾아든 병에 쉬이 무너졌던 것이구나 생각한다. 그때야 다른 멀쩡한 몸의 기능마저도 퇴화시켜버린 나의 태만을 오만을 자책한다.
예사로 넘긴 접목묘의 이미지를 그려보며 수백 년을 거슬러 그때의 감나무를 상상한다. 지금 숨결이 사그라들 듯한 몸으로도 찬란히 감을 머금고 풍성한 감잎을 흩날리고 있는 감나무의 지난 생애를.
어쩌면 그때, 젊은 감나무에게도 질병이 찾아왔는지도 모른다. 상처 입은 나무는 열매 맺지 못하거나 아물기도 전에 수두룩 떨어지는 열매를 봐야 했을 게다. 이 모양을 지켜보던 조선 시대 농부의 마음에도 깊은 그늘이 드리웠을 게다. 한 개의 감이 온전히 가지를 벗어나는 것은 흐르는 시간이 해결해 주지 않는다. 같은 가지에 있다고 모두 감이 되어 떠나는 것도 아니다. 먼 꼭대기든 담벼락에 얹힌 가지에 있든 옮길 수 없는 그 자리에서 감이 되려 달빛과 별빛과 햇빛과 바람과 또 술 취한 이들의 손길을 견디어야 한다. 그럼에도 가장 필요한 것은 안녕을 말하려는 감나무의 안녕을 찾는 일, 그래야 감이 존재할 수 있다.
오래도록 살아남아 감나무가 열매를 맺기 바라던 농민은 어떤 이였을까. 상처 입은 감나무를 위해 밤낮의 노력을 쏟아 찾아낸 조선 시대 농부의 비결, 그것은 힘을 낼 수 있기 위한 보다 힘을 낼 수 있는 것들과의 접목. 농부는 감나무와 고욤나무 묘목을 덧대어 하나의 감나무를 만들어낸다. 병든 나무를 살려내고 보다 풍부한 과실을 얻기 위해 서로 다른 나무를 접목시킬 발상은 어떻게 나온 것일까. 아니 병들었다고 포기하지 않은 그 마음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 실로 놀라운 농부의 정성과 기술로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접목묘가 된 하늘 아래 첫 감나무는 질병을 이겨내고 오래도록 살아남아 농부의 바람을 이어온다. 썩은 줄기로도 여전히 수많은 열매를 맺는 최고(最高)의 감나무로 수백 년 전부터 외남면 소은리 그 자리에서 감꽃을, 감을 피워내고 있다.
하늘 아래 첫 감나무에서 열린 감으로 빚은 곶감은 최고가의 상품으로 세상에 나오고 있다 한다. 최고, 최초, 이런 수식어가 붙으면 상품가격은 오른다. 그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속성이라는 걸 모르지 않는다. 그래서 세상에 내놓지 못한 상품이 된 나를 세상에서 유폐시켰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 최고도 최초도 젊음도 늙음도 살아가는 과정에서의 수사(修辭)쯤으로 여겨진다. 이런 감정과 생각에 빠진 이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다. 최고가, 최초, 최고, 실패 이런 단어가 뒤로 물러나고 새로운 단어들이 내게로 달려오는 이 순간을.
나는 묻는다. 과거에서만 첨벙하던 내게 미래를 묻는다. 질문은 엉키어 또 질문을 만들어내고 늘 한결같은 대답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더 이상 답할 수 없는 질문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분명 미래에 관한 질문이 접목되어 나의 현재를 단단하게 붙들려 하고 있음을 느낀다.
한낮의 햇볕 한 줌이 내 그림자를 만든다. 홍시가 되려는지 곶감이 되려는지 감이 대롱대롱 흔들릴 때마다 그 빛깔이 완연하다. 햇살은 노목의 생채기를 뚜렷이 비춘다. 노목의 감나무에게 그림자가 되지 않기 위해 노목 옆으로 나는 더 다가선다.

“꽃 피우고 열매 맺는 글쓰기 위해 더욱 정진할 것”

수상소감

가지치기가 한창인 아파트의 소음이 물러가고 나니 휑한 나무가 확연합니다. 잘려진 나뭇가지들이 나무 아래 수북하게 쌓여있습니다. 어떤 나무인지 알아맞히기도 쉽지 않습니다. 꽃피고 열매 맺는 건 머언 날의 일이라 당장은 잘려나간 나뭇가지에 키마저 줄어든 나무가 안쓰러워집니다.
글쓰기도 그러하겠지요. 아직은 휑하고 아쉬움만 가득한 글일지라도 스스로를 더욱 더 가지치기 하다보면 더 채워지고 옹골져 가겠지요. 좀더 아름답고 시들지 않게 꽃피고 열매 맺는 나무가 되어 가겠지요. 아직 충분히 가지치기 하지 못한 나무이기에 쑥스럽다가도 글쓰는 일에 즐거움과 흥미를 느끼는 일을 지속할 수 있다면 부끄러움은 조금 멀리 두고 상을 즐기겠습니다. 경북문화체험 수필대전 관계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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