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듀, 갈등과 분열의 무술년

발행일 2018-12-26 19:54:48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다사다난했던 무술년 뒤안길로새해에는 내 편 네 편 ‘차별’ 말고다양한 가치관의 ‘차이’ 존중하길

“가치란 인간 행동에 영향을 주는 어떠한 바람직한 것, 또는 인간의 지적ㆍ감정적ㆍ의지적인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대상이나 그 대상의 성질을 의미한다. 가치라는 것이 경험할 수 있는 사물로부터 유래된 것인가, 혹은 개인의 감정이 사물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는 객관적 가치인가 주관적 가치인가를 논하는 가치론의 중요한 쟁점이다.” ‘문학비평용어사전’에 나오는 설명이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가치를 생산하면서 동시에 판단해야 한다. 또한 그것 때문에 평생 크고 작은 갈등 속에서 살아야 한다.

‘충과 효’ ‘조국의 해방과 자유’ ‘반독재 민주화’ ‘절차적 민주주의와 개인의 자유’ ‘소득주도성장과 시장경제’등 시대에 따라 사회 구성원들이 상호대립하며 우선시하는 가치는 달랐다. 과거에는 그 사회를 지배하는 ‘절대 가치’가 있어 개인은 그 가치를 무조건 받아들여야 했다. 봉건사회에서 ‘충과 효’는 절대가치였고, 싫든 좋든 그것을 받아들이게 함으로써 다양한 갈등과 분열을 잠재울 수 있었다. 인류는 일방적인 ‘절대적 가치’의 강요로부터 ‘가치 상대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투쟁했다. 현대 사회는 모든 것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이제 어떤 집단에서도 ‘가치 서열’을 정해 강요할 수가 없다. 개인은 사회나 국가, 특정 정당이 주장하거나 강요하는 강령과 가치에 맹목적으로 충성하지 않는다. 해방 이후 우리 사회는 우선 가치를 두고 벌인 갈등과 분열로 수많은 파국을 초래했다. 이런 불행한 상황의 반복 속에서 갈등 조정능력은 지도자의 주요 자질로 간주되었다.

인간 사회는 갈등의 해소 과정을 통해 성숙한다는 것도 일리 있는 말이다. 투쟁의 일반 이론을 구축한 랄프 다렌도르프를 비롯한 사회주의 사상가들은 집단 간의 갈등을 역사 발전의 동력으로 간주하기도 했다. 가진 자들은 가진 자들끼리 집단을 형성하고, 가지지 못한 자들은 그들끼리 집단을 형성하여 갈등을 일으키는데, 사회는 그 갈등을 통해 내재해 있는 모순을 극복한다고 주장했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지난 시대의 극단적 갈등과 투쟁이란 악습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국민을 위한 생산적인 타협과 조정은 드물다. 시간이 흐를수록 적폐 청산을 주도하는 측 내부에 썩는 냄새가 진동한다. 적폐 청산을 정치 보복이라 주장하는 쪽에서도 여전히 맑은 공기와 맑은 물, 신선한 피의 공급은 없다. 고여서 썩은 물의 지독한 악취만 풍긴다. 그러다 보니 진보와 보수, 좌와 우, 모든 집단이 국민에게 희망을 주지 못한다. 국민은 극도로 피곤하고 고통스럽다.

국가백년대계인 교육도 마찬가지다. 교육만큼 점수에 의한 줄 세우기를 절대적 우선가치로 신봉하는 곳은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정량평가 되는 수능점수와 교과 등급은 봉건 사회의 ‘충과 효’보다 더한 절대적 가치로 신봉된다. 수능 문제와 난이도를 이야기하기 전에 우리 사회의 점수 우선주의 가치관을 직시해야 한다. 프랑스와 독일, 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공부 잘 하는 학생과 못 하는 학생을 구별하여 ‘차별’하지 않는다. 공부가 적성에 맞는 학생과 그렇지 않는 학생으로 나누어 그것을 ‘차이’로 인식한다. 교사가 학부모에게 학생은 공부가 적성에 맞지 않으니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면 학부모는 교사에게 깊이 감사하며 그 권고를 따른다. 아이가 더 적성에 맞는 일을 하도록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입시개편안과 수능 난이도를 이야기하기 전에 우리 사회와 개인 속에 내재해 있는 전근대적인 가치관을 먼저 응시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아직도 수학 잘 하는 학생은 우수한 학생으로 간주하고 드럼 잘 치는 학생은 노는 것을 좋아하는 불량기가 있는 학생으로 간주한다. 서로 다른 적성과 재능을 ‘차이’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존중해 주지 않는다면 그 모든 해결책은 백년하청이 될 수밖에 없다.

다사다난했던 무술년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우리 사회는 모든 분야에서 서로 대립하며 극렬한 갈등을 겪고 있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내 편 네 편으로 나누어 ‘차별’하지 말고 다양한 가치관의 ‘차이’를 상호 존중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길 소망해 본다.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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