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이 떠올라 온 세상을 밝게 비추다 지고 나면 세상은 붉은 돼지해로 바뀌어 갈 것이다. 한 해 동안 계획한 일 중에서 이룬 것도 많았을 터이지만, 아직 매듭짓지 못해 아쉬움도 남을 것이다. 못다 이룬 일들일랑 잠시 접어두고 그동안 이룬 것들을 헤아려보면서 그래도 행복한 한 해였다고 감사의 기도를 올릴 수 있으면 좋으리라.
옷깃이 여며지는 만큼 경제도 어렵지만 가슴만은 따뜻함을 잃지 않는 마음 부자가 되기를 기대한다. 행복은 그 사람이 마음먹은 만큼 온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힘든 일이 있더라도 용기 잃지 말고 웃음은 더더욱 잃지 말고 살다 보면 언젠가는 좋은 날도 찾아오지 않으랴. 주변에 마음 넉넉하고 착한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복된 일이지 않은가.
내년이 붉은 돼지해라고 한다. 지인이 보내준 연하장에도 붉은 돼지가 그려져 있다. 그러고 보니 헝가리여행에서 들어본 만갈리차 (mangalitsa)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양의 탈을 쓴 것처럼 복슬복슬 털을 뒤집어쓴 돼지, 얼핏 보면 살찐 양 같지만 사실은 돼지라고 한다. 어느 외신에서도 양털처럼 곱슬곱슬한 털을 가진 돼지 ‘만갈리차’에 대해 실은 기사를 읽었다. 스코틀랜드에서 돼지를 기르고 있는 한 사나이는 “만갈리차는 멀리서 보면 양 같지만, 가까이서 보면 영락없는 돼지”라고 하였다. 헝가리를 대표하는 동물인 ‘만갈리차’는 금색 또는 검은색의 곱슬곱슬한 털로 뒤덮여 있다. 양의 털과 비슷해 종종 양과 돼지의 교배종이라는 오해를 받지만 멧돼짓과의 포유류이며 양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그저 ‘털 달린 돼지’일 뿐이다.
만갈리차는 목초지 풀이나 감자, 호박 등을 주식으로 한다. 지방이 많고 살코기가 적어 현대에 들어 대체품종에 밀려났다. 그러나 최근에는 헝가리 농민 단체의 노력으로 헝가리 전통음식 만갈리차가 많이 알려져 있다. 바로 만갈리차 헝가리안 소시지다. 헝가리에서 특별한 돼지고기 만갈리차 요리는 아침 식사와 브런치로도 즐기는 메뉴이다. 헝가리 전통음식 만갈리차처럼 부담 없는 가격에 즐길 수 있는 음식을 친구 가족과 함께 먹으며 늘 행복한 담소를 나눌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내년 붉은 돼지해에는 언제 어디서나 헝가리에서 만갈리차를 맛보듯이 늘 행복한 한 해가 되기를.
나이 들어 건강을 유지하는 일은 정말 모두의 소망이리라. 노쇠란 의도하지 않은 체중감소, 피로, 신체 활동 저하, 악력 저하, 느린 보행속도의 5가지 항목 가운데 3가지 이상 해당하는 경우다. 증상이 1∼2개만 있다면 ‘노쇠 전 단계’. 이런 노쇠 예방의 열쇠가 친구에게 달려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나이 들어 친구를 자주 만나면 만날수록 노쇠 예방에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아주대의료원 노인 보건 연구센터 공동연구팀은 2016년도 ‘한국 노인 노쇠 코호트 연구’에 참여한 70세 이상 1천200명을 대상으로 노년기 친구, 가족, 이웃과의 접촉 빈도가 노쇠에 미치는 연관성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결과는 조사 대상 노인 중 노쇠는 9%, 노쇠 전 단계는 48.7%로 각각 나타났다. 노쇠나 노쇠 전 단계 모두 남성보다 여성에서 더 비중이 높았다.
사회적 접촉 빈도와 노쇠의 연관성은 친구와의 만남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가장 뚜렷했다. 평소 친구를 매일 또는 1주일에 한 번씩 만나는 노인 중 노쇠 비율은 친구들과 월 1회 정도 또는 그 미만으로 만나는 노인의 노쇠 위험에 비해 3∼5배가량 낮은 것으로 추산했다. 같은 조건에서 노쇠 전 단계 위험도 최대 1.27배까지 낮아졌다. 가족을 자주 만나는 것도 노쇠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매일 또는 1주일에 한 번씩 가족을 만나는 노인의 노쇠 비율은 각각 9.9%, 7.6%로 가족과 만남이 거의 없는 노인의 10.6%보다 낮았다. 노쇠를 예방해주는 효과는 가족 간 만남보다 친구와의 만남이 더 컸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가 노년기 주변인과의 소통이 긴밀할수록 노쇠 예방에 더 긍정적으로 작용함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했다. 한편으로는 친구를 만나는 등의 사회활동이 자연스럽게 노년기 운동 효과를 증진함으로써 노쇠를 억제한다는 분석도 있다.
김수환 추기경께서 생전에 하신 말씀으로 올해 마지막 날을 기념해보리라. “아침이면 태양을 볼 수 있고 저녁이면 별을 볼 수 있어 나는 행복합니다. 잠들면 다음 날 깨어날 수 있어 나는 행복합니다. 기쁨과 슬픔과 사랑을 느낄 수 있고 남의 아픔을 같이 아파해 줄 수 있는 따뜻한 가슴을 가진 나는 행복합니다.” 잊지 마십시오.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행복해집니다.

정명희

의사수필가협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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