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복지·친환경 사육’ 두가지 원칙 고집…“우리 입맛에 맞는 건강한 먹거리 생산 목표죠”

발행일 2019-01-02 20:16:21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30> 안동 흙돼지 체험농장

새끼돼지 발육을 점검하는 손안섭 공동대표


우리나라에서 돼지는 ‘행운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다.

돼지꿈을 꾸면 복권을 구입하고, 고사를 지낼 때도 돼지머리가 주인공이다.

올해 기해년(己亥年)은 60년 만에 돌아온 ‘황금돼지의 해’라고 한다. 황금돼지의 행운을 받아 나라가 평안하고, 가정이 만사형통하기를 기원해 본다.

돼지해를 맞아 동물복지를 실천하면서 자연친화적 방식으로 돼지를 사육하고 있는 강소농을 소개한다.

주인공은 안동시 남선면에서 ‘안동 흙돼지 체험농장’을 운영하는 송수연(63)ㆍ손안섭(68) 대표 부부다.

이 농장에서는 사육하고 있는 흑돼지를 ‘흙돼지’라고 부른다. 만물이 흙에 기반을 두고 있는 만큼 흙의 소중함을 알고, 흑돼지의 발음과 연계해 ‘안동 흙돼지 체험농장’이라고 이름지었다. 부부는 현재 170마리의 돼지를 사육해 연간 5천여만 원의 소득을 올린다.

◆죽음의 문턱을 귀농으로 극복

안동은 송수연 대표의 친정 고장이다. 결혼 후 서울에서 남편과 함께 열대어 부화장을 운영했다. 형광등 불빛처럼 아름다운 빛을 내는 열대어인 ‘네온테트라’를 우리나라에서 2번째로 부화에 성공한 실력파였다.

80년대 초반에 1.5㎝ 네온테트라 치어 1마리당 가격이 250원으로 고가였다. 당시 월 수익이 500만 원을 넘었다. 이후 안동으로 사업장을 옮겨 계속했다.

순조롭던 열대어 사업은 1989년 열대어에 대한 수입자유화가 이루어지면서 부화장이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 대응책으로 수족관을 함께 운영했다. 다행히 수족관 운영은 순조로워 15년 간 별다른 어려움없이 사업을 이어왔다.

어느날 갑자기 손안섭 대표가 쓰러졌다. 한 달 넘게 혼수상태가 이어졌다. ‘뇌수막염’이라는 진단을 받고, ‘조용한 곳에서 요양을 하자’는 생각에 농촌지역인 길안면으로 들어왔다.

귀농도 귀촌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들어왔으나, 다행히 남편의 병이 호전되면서 사과재배와 한우사육을 시작할 수 있었다.

2012년 남선면으로 옮겨와 자연친화형으로 흑돼지를 키우고 있다.

◆노후 연금으로 시작한 흑돼지 사육

귀농 후 농촌생활은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송수연 대표는 “농사일도 힘들었지만, 적막함이 더 힘들었다”고 고백한다.

주변에 친구도 없고,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상대도 없었다. 외로움이 어떤 것인지를 맛보았다. 이러다가는 우울증에 걸리지나 않을까하는 걱정도 들었다는 것.

특히 밤이 되면, 아무것도 할 것이 없었다. ‘적막강산’이란 말이 딱 맞았다. 시간이 많으니 인터넷에 매달리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인터넷을 하던 중 우연히 흑돼지를 분양하는 사이트에 접속했다. “잘 키우면 월 300만 원 정도의 수익이 나온다”는 말에 흑돼지 새끼 10마리를 분양받았다. 처음 시작할 때는 손 대표가 크게 반대했다. “분양업자의 달콤한 말에 현혹되지 말라”며 말렸다.

하지만, 결국 남편을 설득했고, 다행히 돼지들도 잘 자랐다. 일 년에 두 번씩 꼬박꼬박 새끼를 낳아줬다. 무엇보다도 큰 병 없이 자란 덕분에 지금은 170마리의 대식구가 됐다.

사육 규모를 늘리면 소득이 올라 갈수도 있겠지만, 송수연ㆍ손안섭 부부는 욕심을 내지 않고 현재 규모를 유지하기로 했다. 200 마리를 넘기지 않는다는 것이 목표다.

어느 농가나 마찬가지겠지만, 사육보다는 판매가 더욱 어려웠다. 돼지들은 쑥쑥 자라는데 판로를 개척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 다행히 ‘돼지를 친환경적으로 키우는 농장’ 이라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어느 ‘생협’과 연결되면서 판로문제가 해결됐다.

현재 성돈은 생협에 출하하고 자돈은 분양한다. 강릉의 유명식당에서 물량을 공급해 달라고 하지만, 어려울 때 도움을 받은 생협과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생협에 우선적으로 공급하고, 여유가 있을때 조금씩 강릉으로 출하한다.

◆친환경 사료로 키우는 돼지

손안섭 공동대표와 이준화 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민간전문위원이 미강과 효소를 배합한 사료의 발효 상태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송 대표의 농장 운영방침은 ‘친환경’이다. 사료는 물론 환경도 마찬가지다. 그러다보니 공장에서 생산되는 배합사료를 쓰지 않는다. 농산부산물과 풀을 주 사료로 하고 있다.

정미소에서 쌀 도정과정에 나오는 쌀겨와 풀, 버섯배지가 대표 사료다. 쌀겨는 안동시에서 축산농가의 사육규모에 따라 저가로 배정해 주는 것을 사용한다. 풀은 농장주변에 있는 것을 부부가 직접 채취해다 먹인다. 돼지는 잡식성이라 아무 풀이라도 잘 먹는다.

흑돼지들이 의외로 풀을 좋아해 쌀겨와 함께 주면 풀을 먼저 먹는다. 풀을 통해 영양소는 물론 비타민이나 미네랄 등 각종 미량원소를 섭취하기 때문이다.

버섯배지는 인근 임하면에 있는 ‘버섯결농원’(본보 2018년 8월1일자 22면)에서 초가송이버섯을 재배하고 부산물로 나온 것을 활용한다. 돼지의 습성에 맞추기 위해 돈사 바닥에는 상토를 20㎝이상 깐다.

돼지는 땅을 파는 특성이 있다. 하지만 현행 법령에 축사바닥은 반드시 포장을 하도록 돼 있어 땅을 팔 수가 없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상토를 두텁게 깔았다. 사방이 개방된 돈사라 겨울철 보온에도 큰 도움이 된다. 이 상토도 인근 육묘장에서 부산물로 나오는 것을 재활용한다.

이와 함께 볏짚도 함께 넣어서 깔짚으로 활용한다. 이렇게 하면, 상토와 볏짚에 돼지 배설물이 섞여서 냄새가 나지 않고 발효돼 양질의 완숙퇴비가 만들어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퇴비는 다시 논밭에 뿌려진다. 축산과 일반농업이 윈윈하는 ‘경축순환농업’(경종농업+축산)이 이루어진다. 이 덕분에 한 번도 냄새와 폐수로 인한 민원이 발생하지 않았다.

◆스트레스 없는 동물복지

‘흙돼지 체험농장’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 중의 하나는 동물복지다. 흔히 동물복지하면 ‘방사사육’만을 생각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방사도 동물복지의 한 방법일 뿐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방사를 한다고 해서 동물복지를 모두 실천한 것은 아니다. 영양공급과 사육시설, 관리상태 등 여러 가지 요건이 충족돼야 한다.

현재 이 농장에서는 660㎡의 돈사에 170마리를 사육하고 있다. 돼지 한 마리당 전용면적이 3.9㎡로 농림축산식품부 고시 기준인 비육돈 면적 0.8㎡의 5배 정도로 넓다.

이뿐 아니다. 사육과정에서 스트레스를 주지 않기 위해 최대한 자연형으로 기른다. 항생제도 투여하지 않는다. 태어나자마자 바로 맞히는 철분주사를 비롯해 다른 주사도 일절 맞히지 않는다. 다만 법정전염병인 구제역 등 법으로 정해진 예방주사만 맞힌다.

새끼돼지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기 위해 송곳니와 꼬리도 자르지 않는다. 번식도 자연교미를 통해 수정을 시키고 자연분만을 한다. 분만과정에 어려움이 있고, 시간이 지연되어도 분만촉진제를 주사하거나 인위적인 작업을 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어미돼지가 스스로 하도록 놔둔다.

사람의 도움손길이 없어도, 흑돼지는 모성애가 강해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한다. 송 대표는 이러한 ‘자연형 사육방식’이 진정한 동물복지라고 생각하고, 그 방식에 따르고 있다.

◆무지가 부른 낭패

언뜻 보면, 돼지 사육이 쉬운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돼지 사육에 대한 기본적인 기술을 갖추고 있어야만 사육이 가능하다. 그래서 이들 부부는 농업기술센터 등 농업교육기관을 통해 다양한 교육을 받는다. 돼지뿐만 아니라, 일반 농업분야 교육도 열심히 받는다.

송수연ㆍ손안섭 대표는 “2015년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고 고백한다.

흑돼지는 일반돼지보다 성장속도가 느린 탓에 10개월 동안 정성을 들여 키운 돼지 10마리를 도축했는데, 도축장에서 반출을 중지시켰다. 지방의 색깔이 변색되었기 때문에 반출을 거부했다.

서로 옥신각신하다 보니 농산물품질관리원의 원인조사로 이어졌다. 현장조사와 채혈검사까지했지만, 특이점은 찾지 못했다. 다만, “황달이 의심된다”는 애매한 진단이 내려졌다.

자가 소비를 하겠다고 우겼지만, 결국 10마리 모두 폐기처분됐다. 일 년 간의 노력과 300만 원 이상의 돈이 한 순간에 공중으로 날아갔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10개월 동안 기울인 정성이 무너진 것이 더욱 억울했다.

처음부터 돼지사육을 반대하던 손안섭 대표가 “이 참에 돼지사육을 중단하자”고 말하는 것을 극복하기가 더욱 힘들었다. 그날 밤 송 대표는 밤새 울었다.

얼마 후 최종 검사결과가 통보됐다. 도축 직전까지 돼지에게 토마토를 먹인 것이 원인으로 밝혀졌다. 당시 인근의 농장에서 토마토가 과잉 생산돼 폐기하는 것을 가져와 사료로 먹인 것이 화근이었다. 토마토의 붉은 색소가 지방을 변색시킨 것이었다. 도축 1개월 전에는 중단해야 한다는 것을 몰랐던 무지의 소산이었다.

송 대표는 “그때를 생각하면, 아까운 마음과 부끄러운 마음이 겹칩니다. 그래서 요즘은 더 열심히 공부를 합니다”고 말한다.

◆체험농장으로 운영

송수연 대표가 농장에서 직접 만든 소시지를 들고 있다. 이런 수제 소시지를 만들고 시식을 하는 체험을 한다.
지난해부터 작지만 농장체험활동을 시작했다. 흑돼지는 야생성이 강하고 활동적이어서 체험활동에 직접 활용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어 음식체험 위주로 진행하고 있다. 초중고생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다.

농장에서 생산된 돼지고기를 활용해 수제 소시지와 떡갈비, 수제돈까스를 만들고 시식을 한다.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흑돼지는 일반돼지보다 1.5배 정도 성장이 느리기 때문에 식감이 좋다. 학생들은 딱딱하고 질기다고 하지만, 50대 이상의 장년층과 고기 애호가들은 “옛날 맛이 살아있다”면서 좋아한다.

이러한 특성을 반영해 학생체험에서는 새끼돼지를 활용한 체험을 개발하고, 어른들을 대상으로 전통주와 돼지고기를 결합한 체험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농장 옆 산자락에 ‘쉼터’를 조성해 체험객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다.

◆우리 정서에 맞는 고급 가공제품 생산이 꿈

송 대표는 농장의 규모를 확대하거나 고가의 첨단시설을 도입하는 등의 큰 계획은 세우지는 않는다. 그래서 200마리 이하만 사육한다는 원칙을 벗어나지 않는다.

소규모로 운영하면서 동물복지와 친환경사육을 실천해 우리 땅에서 나고, 우리 입맛에 맞는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하고자 하는 것이 목표다.

또한 우리 정서에 맞는 가공품을 만들어 ‘작지만 강한 농업’을 만들고, 자원 재활용을 통한 ‘경축 순환농업’으로 환경도 지키면서 농촌생활의 여유로움도 즐기는 ‘소확행’을 실천하겠다는 방침이다.

‘동물복지’와 ‘친환경 사육’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함께 잡겠다는 송 대표의 굳은 의지가 돋보였다.

▲농장명: 안동 흙돼지 체험농장

▲농장주: 송수연ㆍ손안섭 공동대표 (2015 강소농)

▲구입문의: 010-4526-8785, 054-821-8785

▲홈페이지: http://www.andongpork.com

▲소재지: 안동시 남선면 충효로 3809-57

▲이메일: s-oos00@daum.net

글ㆍ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

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 민간전문위원

팜라이터 ilsok@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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