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이다솜 연출가 “관객을 더 집중하게 만드는 것, 연극의 묘미죠”

<11> 이다솜 연출가

범어아트스트리트에서 펼쳐진 ‘도리언 그레이와 9개의 방’ 출연배우가 연기를 펼치고 있다. 지나가는 시민들이 연극을 지켜보는 모습.


지난해 12월21일 오후 6시, 그림, 조각, 설치미술 등 다채로운 예술 작품으로 꾸며진 공간에서 배우들이 연기를 했다. 범어아트스트리트가 연극무대로 변하는 순간이다. 11개의 작품 스튜디오는 연극무대로 바뀌었다. 그 흔한 좌석도 없다. 관객들은 주인공 뒤를 따라다니면서 연극을 관람했다. 20명의 관객은 물론 오가는 시민들은 배우들의 연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는 대구에서는 첫선을 보인 ‘이동하는 연극’이다. 배우들의 퇴장도 없다. 우리가 흔히 아는 무대 뒤는 당연히 없다. 암전도 없다. 관객들이 눈을 돌리며 배우들은 저마다 방법으로 연극무대를 지키고 있다.

이다솜(29) 연출가의 작품이다. 아름다운 외모의 집착이 부른 비극을 드러낸 원작(도리언 그레이 초상)과 달리 연극 도리언 그레이와 9개의 방은 아름다운 예술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예술가가 겪는 고통과 희생 등 비극적인 숙명을 보여줬다.

“새로운 도전이었어요. 외국에서는 이동하는 연극이 큰 인기를 끌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유명하지 않아서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한 걱정이 많았어요. 그래서 연극이 끝난 후 관객들과 대화의 시간을 마련했어요.”

반응은 어땠을까? “감격스러워서 잠을 못 잤다”는 이 연출가의 말에 관객들의 반응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 연출가의 연극은 이색적이기로 유명하다. 배우 퇴장이 없고, 암전도 없다. 좌석이 없기도 하고, 런웨이식으로 의자를 배치하기도 한다. 참여하는 배우들은 퇴장이 없다는 것을 늘 각오한다.

그는 “어떻게 하면 관객들이 연극에 더 집중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늘 고민한다”고 했다. 이게 연극의 묘미란다.

실험적인 도전은 처음이 아니다. 이 연출가는 지역의 유휴공간이자 사회문제로 떠오른 빈집을 무대로 연극 ‘빈집으로의 초대’를 기획했다. 사회문제에 대한 시선과 연출가 눈에 들어온 빈집에 대한 인상을 예술 작품 속에 고스란히 담았다. 집주인이 떠난 빈집을 지키는 성주신과 그를 데려가려는 죽음 사이의 조용한 전쟁을 보여주는 짧은 퍼포먼스 형태의 공연이다.

“대명공연문화거리 인근에 빈집 거리를 초소형 극장으로 꾸미는 제2의 오프브로드웨이의 꿈을 가지게 됐어요. 빈집을 섭외하기 위해 대명3동 행정복지센터 마을계획단 회의에 매주 참석했습니다. 통장님, 상인분들 주민분들을 만나 빈집의 위치나 활용 계획에 대해서 들을 수 있었어요. 주민 극단 신뜨름 대표이자 통장이신 조상용 어르신을 설득해 집주인 동의하에 빈집을 섭외할 수 있었습니다.”

빈집의 대문을 열었을 때 그 충격은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마당에 쓰레기가 쌓여 있었고 천장이 무너져 내리고 고양이 주검에 벌레들까지 거기다 사람이 살지 않으니 끊긴 전기와 수도…. 여기서 대체 어떤 공연을 할 수 있을까”했다고.

이 연출가는 고민하다가 받았던 충격을 고스란히 전달하고자 빈 집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알리는 퍼포먼스를 기획했다. 무너진 지붕에 비가 오는 날이면 관객들은 우비를 입고 또는 우산을 들고 공연을 지켜봐야 하기도 했다.

“빈집 주변 이웃에서 공구와 청소도구, 그리고 전기도 빌려주셔서 조명을 밝힐 수 있었습니다. 호기심에 찾은 주민들도 무서운 빈집이 극장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신기해하고 응원을 해줬어요. 마을계획단에 같이 참여했던 한 주민은 공연 관람 후 모두가 무관심했던 빈집 문제를 조명해줘 고맙다는 인사도 전해주셨어요.”

연출가를 꿈꾸게 된 계기가 무엇일까? 그는 “미국 드라마 프렌즈 메이킹 필름을 우연히 봤는데 녹화현장에 관객석을 채워놓고 막을 올려 관객 반응이 좋으면 그대로 내보내고, 아니면 새롭게 고치기 위해 모든 스태프가 회의하는 모습을 봤다. 그 모습을 보고 저렇게 살면 원한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어 “대구콘서트하우스가 되기 전 시민회관 마지막 공연을 하는데 음악을 트는 일을 맡았다. 수많은 관객이 함께 우리가 준비한 공연에 반응하고 배우들도 나의 음향 큐사인에 따라 감정이 폭발할 때 또 마지막으로 커튼콜 때 박수와 환호소리를 들었을 때는 공연이 끝나고 나서도 마음이 먹먹할 만큼 살면서 가장 인상깊었던 순간이었다”고 했다.

이미 다음 공연도 기획하고 있다. 그는 “첫 빈집 공연이 끝난 후 남구 이천로의 ‘저 하늘에도 슬픔이(1965ㆍ김수용 감독)’ 영화 촬영지였던 빈 한옥과 연결됐다”며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과 극장으로 고쳐 올해에도 새 연극을 선보일 것 같다”고 했다.

현재 계명대학교 예술대학원 연극뮤지컬학과 과정 중인 그는 앞으로도 지역에서 활동하며 우리가 처한 문제를 다루는 작품들을 하고 싶다고 했다.

이 연출가는 “소재가 없어서 글을 쓰지 못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거다”며 “그것이 연극이 가야 하는 길이다. 먼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 마주한 문제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김혜성 기자 hyesung@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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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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