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니 아부지하고 밤에 몰래 나가, 친구들이랑 밤새도록 놀다가, 새벽에 가만히 들어와서는, 할매 아침상 봐 드리고 하민서도, 그땐 피곤한 줄도 몰랐는데… 허허. 너으도 지금 놀 수 있을 때 재미있게 지내라.”
간밤에 어머니가 입원한 병실에서 하룻밤을 함께 지내고 온 아내가 웃음을 머금으며 한 말이다. 어머님이 그러시더라고. 시술을 하루 앞두고 뭔가 불안해서였는지, 지나온 당신의 삶이 짤방 동영상처럼 스쳐지나갔는지, 어머니는 며느리를 앞에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불안을 달랬나 보다. 아내도 그 짧은 시간에 시어머니와 참으로 오랜만에 많은 교감이 있었나 보다.
‘노세노세 젊어 놀아 늙어지면 못 노나니’라는 (1954, 김영일 작사, 황정자 노래)의 노랫말은 삶에 쫓겨 앞만 보고 살아온 인간의 탄식에서 나온 말일 것이다.
젊은 날 부지런히 일해야 늘그막에 행복한 무엇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노는 행위를 부정적으로 보았다. 특히 이 노래가 유행하던 당시는 전후의 폐허 속에서 망연자실하던 때였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로 보면 건설의 노래 등 소위 말하는 건전가요가 맞을 듯도 하다. 그러나 뒤집어 보면 놀고 싶어도 놀 수 없던 그 시절의 애환이 읽힌다.
개인의 삶은 없고 모든 것이 집단과 재건으로 치닫는 시대상황에서 놀이는 사치였다. 따지고 보면 놀이 또한 인간다움을 추구하는 기본적인 욕망이다. 더 늙기 전에 꽃구경 가는 정도의 행복은 또 다른 에너지임에 틀림없다.
끊임없는 일 욕망은 오히려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일 욕망과 놀이욕망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조화를 이룰 때 삶이 풍성해 진다. 이것을 알면서도 우리의 일상은 숨 가쁘기만 하다.
그런데 놀이욕망을 절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참고 참았던 욕망은 터지기 마련인데, 그때는 더 큰 문제를 야기한다. 건강한 방법으로 놀이욕망을 분출할 때 인간다움은 이루어진다. 전후 폐허에서 ‘노세노세’가 흘러나온 것은 재건의 고통을 이기는 놀이욕망의 관리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놀이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와 시대적 상황은 그것을 분출하는 사람을 비난할 수 있다.
문제는 그 비난이 타자에 대한 분노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이는 사회 갈등을 악화시킬 수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는 박정희정권 때 새마을 운동이 한창일 무렵에는 ‘가세가세 일터로 가세 새마을에 앞장서가세’라고 개사되어 불려 졌고, 이후 80년 신군부시절에는 아예 금지곡이 되어 버렸다. 사회악을 일소하겠다며 삼청교육대를 만든 그들 입장에서 놀이는 아마도 ‘탱자탱자 놀고먹는’ 타락으로 이해되었나 보다.
화란춘성 만화방창(花蘭春盛 萬化方暢) 좋은 시절에 적절한 삶의 여유를 누리지 못하고 가사와 일에 내몰린 어머니는 몸이 아프고 나니 친구들과 어울렸던 그 짧은 일탈도 행복의 순간으로 기억되었나 보다.
언제부턴가 자꾸 머리가 아파서 MRI 검사를 했는데, 뇌혈관에 작은 혹이 보였다. 급하게 여기저기 병원을 수소문한 끝에 뇌동맥류 시술을 받기 위해 입원을 했다. 담당의사는 간단하게 설명했지만, 뇌혈관에 손을 대야 하는 상황이고 보니 환자도, 가족도 모두 긴장한 상태였다. 시술을 앞둔 어머니는 여러 가지로 마음 상태가 불안하고 복잡했을 것이다.
도회지에 살았더라면 교사의 아내였던 어머니는 그럭저럭 간단한 살림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골 농가에서 시부모님 모시고 4남매를 키우는 종부로 큰살림을 사신 어머니는 마음 놓고 여행길을 나서지도 못했다. 잠시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부부동반 계모임이었는데, 조석으로 시어른 끼니를 챙겨야 하는 며느리 입장에서는 그마저도 사치였을 것이다.
산업화가 가속되던 그 시절 모든 어머니들의 삶이 다 비슷했겠지만, 병실 침상에 누운 어머니는 지난 삶에 대한 감회가 남달랐나보다. 외며느리로 집안 농사꾼 새참까지 챙기면서 내조와 육아를 감당해온 어머니는 당신의 이야기 도중에 손에 쥔 염주를 쉬지 않고 한 알 한 알 굴리셨단다. 앞만 보고 달려 온 세월과 시술을 앞둔 불안을 염주알로 어루만지셨나 보다.
‘한 밤중 시어머니의 일탈 사건’을 웃음으로 전하던 아내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정신없이 삼남매를 키우고 막내까지 대학에 보내고 난 중년여성의 허전함이었을까, 동병상련의 심정이었을까. 설 아래 언제 날을 잡아 아내와 함께 어디 가까운 데라도 다녀와야겠다.

김종헌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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