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신준민 작가 “일상이 머물렀던 장소, 그때의 감정 덧입혀 작품으로”

<12> 서양화가 신준민 작가

‘경기장’


‘부지런한 작가.’ 지역에서는 신준민(35) 작가를 이렇게 부른다. 2015년 영남대학교 일반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한 후 끊임없이 작업에 몰두했다. 그 결과 매년 개인전, 단체전을 통해 다양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그림의 소재는 대부분 ‘대구’다. 일상을 주제로 그리는 신 작가는 지극히 평범한 장소를 내면화한 풍경을 그린다.

그는 “장소들은 회화의 소재로서 인위적으로 선택되기보다는 일상 행위가 이뤄졌던 장소에서 우연히 유년의 기억을 상기하거나 문득 떠오른 감정이 환기되면서 회화에 중첩된다”고 소개했다. 자신의 시각망 속에 들어온 대상을 단순히 재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개인적 감정을 투사함으로써 그 장소를 다르게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

“그림의 대상은 내가 가진 정서적 파장과 비슷한 에너지를 지닌 그 무엇들과의 만남에 대한 기록인지도 모른다. 목적이 내재한 소유 혹은 채집된 대상이 아니다. 우연한 조우의 대상이기에 이것을 회화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당시의 기억과 감정을 바탕으로 그 대상만이 가지고 있는 내적인 특성을 이끌어내 회화적으로 표현한다.”

그의 초기 작품은 주로 지역 유명 장소가 배경이었다. 첫 개인전 주제는 ‘달성공원’이었다. 이 개인전을 위해 그는 1년 동안 달성공원을 찾았다. 달성공원을 관찰하고 아름다운 동물원이기보다는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밝고 경쾌한 동물원의 이미지보다는 텅 빈 공원의 모습과 쓸쓸한 정적이 담겨 있다.

신 작가는 “흰 눈이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었을 때, 달성공원을 찾았다. 도심 속에 있는 달성공원은 자연의 순리대로 끊임없이 변모했다”며 “좁고 낙후된 우리(cage)와 그곳에서 살고 있는 동물들은 야생성을 박탈당한 채 적막함과 한적함을 내뿜으며 전시된 자연으로 남아 있었다”고 했다.

두 번째는 ‘시민운동장’이었다. 경기뿐만 아니라 그곳에 배치된 조형적인 요소와 상황에 따라 들려오는 풍경의 소리가 그를 매료시켰다고.

그는 “녹색 잔디 위에 그어진 흰 선은 광활하게 펼쳐진 그라운드에 긴장감을 부여했다. 관중석에 반복적으로 나열된 의자와 그물망은 경기장 내의 다양한 조형미를 갖추고 있었다”며 “경기의 상황에 따라 열광하는 사람들의 함성만큼 쏟아져 내리는 공간 속 조명 빛의 작렬함이나 그에 비례해 엄습하는 텅 빈 야구장의 묵직한 공기는 상황에 따라 다르게 들려오는 다양한 감각을 담아낼 수 있었다”고 했다.

이곳 역시 1년 가까이 찾았다. 신 작가의 기억 속의 시민운동장은 사람들로 늘 북적이는 곳이었지만 오히려 그는 사람이 없는 텅 빈 공간에 집중했다.

2016년부터 일상을 ‘모험’으로 설정해 새로운 에너지를 가진 풍경이나 대상을 그렸다. 특정한 파장을 가진 대상이나 풍경을 캔버스에 담았다.

이에 그 주제들은 더욱 일상 속으로 깊숙이 들어왔다. 주로 산책하던 유천교 일대부터 작업실 주변까지 발을 딛인 곳을 그렸다.

“그리려고 보는 게 아니고 야구장 다음에 뭘 그릴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었다. 주변을 산책하다 보니 갑자기 소재로 보이기 시작했다. 이때부터는 특정 장소를 그리지 않고 일상 속에서 거닐면서 반복적으로 와닿는 소재를 그렸다.”

천상 화가를 꿈꿨을 것 같은 신 작가의 고등학교 시절 꿈은 만화가였다. 고등학교 시절 만화동아리에서 만화를 그리다가 회화과에 가면 좀 더 풍성하게 배울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생각에 미대 입시를 준비했다.

그는 “당시 좋아했던 만화가들이 대부분 회화과를 나왔다. 만화도 재밌었지만 미술은 아름답다는 느낌과 표현이 무한해 뭔가 열려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며 “알 수 없는 유화의 맛인거 같기도 하고 재료에 매료가 된 것 같다”고 했다.

신 작가는 그림의 매력으로 ‘정답이 없는 점’을 꼽았다. 그는 “연애와 그림이 비슷한 것 같다. 어떤 날은 정말 잘 그려지고 어떤 날은 좋았던 부분까지 싫어지는 경우가 있다”며 “캔버스와 밀당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 부분이 매력적이다”고 했다.

지난해 연말에는 새로운 도전에 나서기도 했다. 범어아트스트리트에서 ‘범어길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이다. 시각 분야 기획자로 참석한 신 작가는 시각 작가 7명과 협업해 연극 무대가 될 9개의 공간을 탄생시켰다.

그는 “새로운 도전이라서 바빴지만 작가, 배우들과 함께 협업하면서 새로운 에너지를 많이 얻었다”며 “같은 목표를 향해서 힘을 합쳐 일을 처리하면서 살아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고 소감을 전했다.

2014년부터 최근까지 끊임없이 달려온 그는 지금이 ‘변화의 기점’이라고 했다.

신 작가는 “졸업 후 6년 동안 그림을 그렸다. 표현하는 장소를 아무리 바꿔도 한두 작품에서 영혼 없이 표현한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며 “새로운 표현이 나오지 않고 스스로를 뛰어넘지 못하니깐 스스로 내실을 다지고 업그레이드를 해야 하는 시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대학원 졸업 후 줄곧 그림만을 그려왔던 그는 지난해부터는 모교에서 강의도 겸하고 있다.

어떤 화가가 되고 싶냐는 질문에 신 작가는 “환경이 변해도 그 뿌리는 변하고 싶지 않다”며 “유행을 따르기보다는 자기의 범주 안에서 계속 확장하는 것이 더 좋은 것 같다. 지금은 소외되더라도 본인을 더 들여다보고 내실을 다지는 화가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김혜성 기자

hyesung@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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