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


1825년 12월, 러시아에서 니콜라이 1세의 즉위에 반대하는 반란이 일어났다. 반란자들은 농노제 폐지와 입헌정치의 실현을 요구했다. 지도자인 콘드라티 릴레예프는 모반죄와 황제시해 미수 혐의로 체포되어 사형이 집행되었다. 형장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발밑 바닥 문이 꺼져 몸이 아래로 떨어졌지만 그의 목을 매단 밧줄이 끊어진 것이다. 시인인 릴레예프는 사형집행을 구경하던 군중들에게 “러시아는 불행한 나라다. 교수형에 처하는 방법조차 모르는 엉터리 나라다”라고 외쳤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대개의 경우 신의 섭리라 생각하여 사면해 주었다. 니콜라이 1세가 사면장에 서명하며 물었다. “밧줄이 끊어지는 기적이 일어난 뒤 릴레예프가 뭐라고 하던가?” 신하가 릴레예프의 말을 그대로 전하자 황제는 서명하려던 펜을 던지며 “그렇다면 그 말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해야지!”라고 말했다. 릴레예프는 다음 날 교수대에 다시 섰다. 이번에는 줄이 끊어지지 않았다. 그는 바이런의 시집을 들고 죽었다. 릴레예프는 밧줄에 목이 매여 죽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한 말에 목이 졸려 죽었다. 이윤재, 이승준의 ‘말 콘서트’에 나오는 이야기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사회에서나 지나치게 말이 많으면 반드시 설화를 입게 된다. “다언삭궁 불여수중(多言數窮 不如守中), 말을 많이 하면 자주 궁지에 몰릴 수 있어, 중용의 도를 지키는 것만 못하다.” 노자 도덕경 제5장에 나오는 말이다. 다언수궁(多言數窮)이라는 말도 있다. 여기서 수(數)는 바둑이나 장기의 수, 즉 책략, 수단, 방법 등을 의미하니, 말을 많이 하면 수가 막히거나 행동의 여지가 줄어든다는 뜻이다. 탈무드에 랍비가 제자에게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과 가장 나쁜 것을 찾아 상자에 넣어오라고 하니 두 상자에 모두 혀를 담아왔다는 이야기가 있다. 나쁘게 쓰면 혀보다 나쁜 것이 없고, 좋게 쓰면 혀보다 좋은 것이 없다는 말이다. 한 치 안 되는 혀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도 갚을 수도 있다. 말보다 더 날카로운 칼은 없고, 말이 주는 상처보다 더 오래 사람을 아프게 하는 것은 없다.
다언(多言)은 소통을 가로막거나 방해하고, 결국은 감정의 골만 더 깊게 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관점에서 보아도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 손혜원 의원의 부동산 투기 관련 뉴스가 전 국민적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많은 국민들은 부동산 관련 문제보다는 손 의원이 보여주는 오만방자한 몸짓과 태도, 말하는 방식에서 더 거부감을 느끼고 있다. 손 의원은 과거에도 안하무인 격의 가시 돋친 막말로 수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고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거나 상대를 설득하려고 할 때 말로 자신의 견해를 먼저 표명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정말 중요한 것은 말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때론 말보다 무언의 침묵이 더 큰 울림을 준다. 상대에 대한 배려와 신뢰가 전제되어 있으면 눈빛이나 표정, 사소한 몸동작만으로도 믿음과 감동을 줄 수 있다. 정치는 ‘언어의 예술’이다. 우리 정치인들이 구사하는 말에는 예술적 향기가 없다. 상대를 불쾌하게 하면서 원한과 투쟁심만 부추기고 악취만 풍기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정치만 그런 것이 아니다. 서울시 교육청이 수평적이고 자유로운 조직 문화를 만들기 위해 ‘선생님’이란 호칭 대신 ‘~님’ ‘~쌤’ 같은 호칭을 쓰겠다고 했다가 여론의 반발을 샀다. 신임 교사가 교장 선생님에게 ‘박쌤’이라고 불러도 좋다는 뜻이다. 언어가 천박해지면 예의와 염치가 사라지고 교육에서 꼭 필요한 교권은 무너지게 된다. “남의 입에서 나오는 말보다도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잘 들어라. 말은 당신의 입안에 들어 있는 한 당신의 노예지만 입 밖에 나오면 당신의 주인이 된다. 당신의 말은 당신이 건너가는 다리라고 생각하라. 단단한 다리가 아니면 건너지 않을 테니까.” 정치인이나 교육자, 아니 우리 모두가 이 유대인 속담을 되씹고 곱씹어봐야 한다. “입을 열면 침묵보다 뛰어난 것을 말하라. 그렇지 않으면 가만히 있는 것이 낫다”는 말도 우리 모두 가슴에 새겨두면 좋겠다.

윤일현

지성교육문화센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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