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우의 따따부따] 전투에 이기고도 전쟁에서 진다면

발행일 2019-02-07 16:10:52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전투에 이기고도 전쟁에서 진다면

이 경우/

설 대목 한국당 대표 후보들이 줄줄이 대구를 찾아 지역 당심에 호소했다. 그들 모두 대구가 보수의 텃밭이라는 현실을 인정한 때문이다. 대구 민심을 잡지 않고서는 당심을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당의 전력이 여당을 견제하고 투쟁해야 할 때인데 당심을 잡기 위한 내부총질만 하고 있다는 걱정도 크다. 정권보다는 개인의 안위에 매달린 지역 의원들에 대한 실망감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야당인 한국당이지만 지역에서는 여전히 여당 노릇을 하고 있다. 그래서 전국이 민주당에 민심을 주고 있지만 민심 1위를 민주당에 양보하지 않고 버티는 곳이 대구 경북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때도 대통령이 잘못하고 있다는 데 가장 많은 표를 모아 준 곳이 대구다. 그런 데는 다 이유가 있다. 한국당 책임당원 32만8천명 중 9만3천명이 대구경북지역에 있다. 28.5%다. 부산경남지역까지 포함하면 절반을 차지한다. 괜히 보수의 텃밭이 아니다. 그만큼 한국당 지지세가 강한 지역이다. 전당대회를 앞둔 한국당의 대표 주자들이 그 보수 텃밭 당심을 공략하면서 민심까지 요동치고 있는 것이다.

설 연휴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대구를 찾아 민심을 호소했다. 김진태 의원도 대구에서 시장바닥을 돌며 민심을 훑었다. 그전에 홍준표 전 대표와 황교안 전 총리가 대구에서 대규모 세몰이를 하면서 지역과의 인연을 강조했다. 지역에서도 주호영 의원이 당 대표 출마를 선언했고 윤재옥 김광림 의원이 최고위원 출마를 선언했다.

지역 민심은 과연 어느 후보가 한국당을 살리고 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지에 모아지고 있을까. 지역 출신 주 의원에게 힘을 실어주면서 지역의 결집력을 보여주고 차기를 도모하자는 뜻을 펴는 의원들도 있지만 당협위원장 구성 자체가 현실정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계파의 틀 속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지금 지역 정치판에 대한 지역민들의 기대는 실망이다. 청와대와 집권 여당의 잇따른 실책으로 한국당이 반사적 이득을 얻고 있지만 지역 정치권의 대응은 기대 이하이기 때문이다. 김태우 청와대 특별감찰반의 민간인 사찰 의혹과 신재민 기획재정부 사무관의 국채발행 의혹, 손혜원 민주당 의원의 목포 근대역사문화 공간 건물 9채 집중 매입한 투기 의혹과 서영교 의원의 재판 청탁 의혹이 잇달아 터져 나왔다. 결정판은 김경수 경남도지사의 댓글 조작에 따른 법정구속이다. 이런 사안들이 본인의 부인과 집권당의 변명에도 불구하고 벌어진 데 대해, 국민들은 권력의 이름으로 빚어지고 있는 집권 세력의 무차별적 농단이 도를 넘었다며 분개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집권당의 무차별적 비리와 권력형 탈법 초법 행위들에 대한 제1야당의 대응이 참으로 미숙하고 유약하다는 것이다. 고작 조해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의 임명을 강행한 데 대한 당 차원의 단식농성이다. 이건 오히려 여론에 가십거리만 제공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런 대응에 지역 의원들의 역할은 그야말로 없다는 것이다.

집권여당과 청와대의 잇단 실축에 지역민들은 시원한 사이다 발언을 기대한다. 보수 텃밭의 주인답게 집권 세력을 따끔하게 혼내고 지역민들을 대리만족시켜주길 바라고 있다. 그런데 대구지역의 국회의원들은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가 돼 버린 것이다. 온통 전당대회와 대표 선출에 따른 자신의 이해득실 계산에만 바쁘다. 지난 총선에서 여당에 표를 줬던 지역 민심이 최근 여당의 실정에 등을 돌려도 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못했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4년 전 2016년 4월 20대 총선 당시 친박 공천 파동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으로 몰아넣은 단초가 됐다. 결국 총선에서 민주당에 참패했고 대통령 탄핵 후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정권을 넘겨주고 지방선거에서까지 졌다. 그런데 다시 그 전조가 재현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지역 정치권 일각의 우려도 크다. 내년 총선은 지역에서 보수 텃밭의 기득권을 지켜내지만 2022년 대선에서는 정권을 되찾지 못하게 되는, 자칫 전투에서 이기고 전쟁에서 지는 결과를 몰고 올지도 모른다는 그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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