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희/



‘사람’은 ‘인간’이 갖고 있지 못한 속성들이 부여된 존재다. 국어사전에서 ‘인간’과 ‘사람’이 같이 갖는 뜻은 ‘생각을 하고 언어를 사용하며, 도구를 만들어 쓰고 사회를 이루어 사는 동물’인 반면, 사람은 이에 더해 ‘일정한 자격이나 품격 등을 갖춘 이’, ‘뛰어난 인재나 인물’, ‘어떤 일을 시키거나 심부름을 할 일꾼이나 인원’ 등의 뜻을 더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을 키운다’라고 말하지만 ‘인간을 키운다’라는 말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학교에서는 교육을 통해 사람을 키운다. 그리고 국가는 교육 시스템을 통해 사람을 키운다. 그래서 사람을 키운다는 말은 국가의 미래를 준비한다는 말과 동의어이며, 사람을 키운다는 말은 희망을 품는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다시 말하자면, 사람을 키우는 일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영속시키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일이다.

국가가 지향하는 바의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도 사람을 키우는 일은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 보육을 국가가 책임지기 위해서도, 치매 노인을 국가가 돌보기 위해서도, 보호자 없는 입원실을 만들기 위해서도 그 일을 맡기에 충분한 자질이나 자격을 갖춘 충분한 수의 인력이 확보되어 있어야 한다. 갑작스러운 재난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평생교육 체제를 실현하기 위해서도, 미래 에너지 대책을 세우기 위해서도 그 일을 맡길 수 있는 믿을만한 사람이 필요하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이를 구현할 일손이 없다면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는 법이다. 사람은 “금 나와라, 뚝딱!”하고 주문을 외운다고 해서 바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관련 기술 교육을 받거나 자격을 취득하는 데 적어도 수개월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고, 보다 전문적인 지식을 학습하고 익히기 위해서는 고등교육도 필요하다.

그래서 어떤 일이 필요하다고 하면, 그 일을 할 사람이 제대로 있는지부터 확인하는 절차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사람이 부족하면, 혹은 그 일을 할 적당한 사람이 없다면, 사람을 길러 낼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그래야만 좋은 제도가 튼튼한 토대 위에서 잘 시행될 것이다.

최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부응하기 위한 각종 인재양성 사업이 시행되고 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대학을 대상으로, 그리고 기업을 대상으로, 지역을 발전시키고 신산업 동력을 태동시키기 위한 많은 사업을 시행해 왔다. 사업계획을 세우고 사업성과를 평가하는 데는 인재양성의 영역이 포함된다.



이제 우리는 어떤 사람을 키워야 할 것인가에 더해, 어떻게 사람을 키워야 할 것인가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대학 입시를 위한 면접에서 자기주도적인 학습 능력의 중요성을 평가하면서도 정작 대학에서는 ‘주입식’, ‘사교육 의존식’, ‘통제식’ 교육이 이루어져 오지 않았는지, 대학 스스로가, 그리고 지자체나 국가가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어떤 사업에서든 사업비 집행의 적절성을 평가받기 위해서는 어떤 강좌에 반드시 일정 인원 이상이 수강해야 하고, 몇 시간 이상의 출석 수업을 받아야 하고, 수업에 대한 만족도가 몇 점 이상이 되어야 한다. 물론, 양적인 지표 산출과 달성을 위해서는 중요하다.

그러한 한편으로, 세계를 선도하는 국가에서는 어떻게 교육을 하고 잘나가는 기업에서는 어떤 직장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사례를 공유하며 우리도 그들을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얘기들을 많이 한다. 그리고 그러한 의도로 기획되는 사업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안다. 그런데 예산 확보를 위해 이렇게 저렇게 협의를 하다 보면 우리들의 사업은 언제나 정해진 틀 속에 들어오고 만다. 그리고 그 틀을 지키기 위해서 대학은 학생들을 다시 틀 속에 넣는다.



다행히 최근 학습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제도 허용의 폭이 커지고 이에 따라 대학도 학생들이 자기주도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러한 교육 분위기가 우리 사회를 좀 더 튼튼하게 만드는 기반이 되기를 바란다. 다만, 이 또한 반드시 자기주도적이어야 한다는 틀 속에 스스로 갇히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다.

사람을 키우는 일은 국가 차원에서도 개인 차원에서도 모두 중요하다. 사람이 필요한 영역과 분야를 국가가 정책을 통해 발굴하고 제안하는 한편 사람들은 자기주도적 학습으로 스스로 커 가며 국가가 나아갈 방향을 찾아 나갈 수 있다면 진정 이상적인 교육이 실현될 수 있지 않을까?



박준우 기자 pj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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