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 남진우

발행일 2019-02-14 18:22:25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고백/ 남진우

내 그대에게 사랑을 고백함은/ 입 속에 작은 촛불 하나 켜는 것과 같으니/ 입 속에 녹아내리는 양초의 뜨거움을 견디며/ 아름다운 동그란 불꽃 하나 만들어/ 그대에게 보이는 것과 같으니// 아무리 속삭여도/ 불은 이윽고 꺼져가고/ 흘러내린 양초에 굳은 혀를 깨물며/ 나는 쓸쓸히 돌아선다// 어두운 밤 그대 방을 밝히는 작은 촛불 하나/ 내 속삭임을 대신해 파닥일 뿐

- 시집 『사랑의 어두운 저편』 (창비, 2009)

송창식의 ‘맨 처음 고백’이란 노래가 있다. “말을 해도 좋을까 사랑하고 있다고 마음 한번 먹는데 하루 이틀 사흘… 맨 처음 고백은 몹시도 힘이 들어라 땀만 흘리며 우물쭈물” 노랫말의 끝에는 결국 “눈치만 살피다가 일년 이년 삼년” 지난 한평생이 되고 만다. 이토록 예전의 사랑 고백은 끙끙대며 힘들어했다.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우려와 조바심 탓이려니. 그리고 그것은 모두 남자의 몫이지 여자가 먼저 고백하는 일은 극히 이례적이다. 이 시의 사랑 고백 역시 “입 속에 작은 촛불 하나 켜는 것과” 같이 지난한 일이다. “입 속에 녹아내리는 양초의 뜨거움을 견디며 아름다운 동그란 불꽃 하나 만들어 그대에게 보이는 것과” 같다. “불은 이윽고 꺼져가고 흘러내린 양초에 굳은 혀를 깨물며 나는 쓸쓸히 돌아”서고 만다. “내 속삭임을 대신해 파닥일 뿐”인 마음의 촛불 하나만 남겨두고.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도시적 감성 진화의 결과이겠으나 우리 젊은 날엔 듣도 보도 못한 밸런타인데이니 화이트데이 또 만난 지 50일이니 100일이니 따위로 호들갑을 떤다.

유치한 짓이고 상혼에 의해 주도된 것이라 입을 삐쭉거려 보지만 요즘의 젊은 사랑이 은근히 부럽고 약도 오른다. 하지만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고 주도권이 강화될수록 남성은 상대적으로 신중해지고 머뭇거려질 수밖에 없는 세상이 되었다. 프러포즈는 남자가 먼저 해야 한다는 공식은 오래전에 깨졌고, 남녀 관계에서 예전의 호연지기나 남자다움은 자칫 폭력성으로 의심받기도 한다. 여성의 입장에서도 함부로 호의를 베풀거나 섣불리 고백하기는 조심스럽다.

성폭행 혐의로 피소된 한 남성이 상대 여성으로부터 밸런타인데이 때 초콜릿을 받은 사실이 인정되어 혐의를 벗은 일이 있었다. 안희정 성폭행 혐의 사건이 불거지기 훨씬 전 일이다. 안희정 사건 1심 무죄 판결 이후 구체적인 폭력이나 협박 등이 없더라도 의사에 반하는 성관계일 경우 처벌하자는 이른바 ‘비동의 간음죄’가 대두되었다. 합이 딱 맞아떨어지면 무슨 문제가 있을까만 매번 명시적이고 확정적인 동의 의사를 녹음해 둘 수도 없는 노릇이고 참으로 어려운 문제다. 분명한 건 무대뽀로 여성을 밀어붙이곤 했던 과거의 낡은 인식은 더 이상 안 통한다는 사실이다.

여자의 ‘메이비’는 ‘예스’와 실질적 동의어이고, ‘노’라고 말하는 단호함도 ‘메이비’ 쯤으로 알아듣는 옛날 방식을 가동했다가는 큰코다치기 십상이다. 독일에서도 ‘No means No’ 법안이 도입되었고, 캘리포니아주는 이보다 더 강력한 ‘Yes means Yes’ 법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우리 환경에서 어디까지를 동의로 봐야 하는가의 판단은 여전히 쉽지 않다. 다만 그대를 향한 고백은 모름지기 ‘입 속에 작은 촛불 하나 켜는 것’처럼 신중하고, ‘입 속에 녹아내리는 양초의 뜨거움을’ 견디는 것과 같이 진실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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