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스쿨미투’가 남긴 생채기

발행일 2019-02-17 16:26:19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홍석봉/ 논설위원

남녘에선 꽃 소식이 들려온다. 2주 후면 신학기가 시작된다. ‘스쿨미투’의 광풍이 휩쓸고 간 학교는 이따금 찬바람이 스쳐 지나가고 있다. 봄방학에 들어간 교정엔 학생 자취가 끊긴 채 적막감만 흐른다.

지난해 8월 29일 2학기 개학과 동시에 불어닥친 스쿨미투 바람은 지역의 한 여자중학교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페이스북 게시판에 한 학생이 인권 침해 사례를 고발한 것이 발단이다. 계속 유사한 글이 올라가면서 미투가 촉발됐다. 10월 중순까지 한 달 반 동안 경찰 수사와 함께 대구시교육청의 집중감사를 받았다.

학생들이 미투로 고발한 내용은 “교사가 팔로 몸을 스치는 등 수차례 신체접촉을 했다”거나 “교사가 치마 길이를 조사하면서 다리를 툭 쳤다”, “교복 치마 입고 다리 벌리면 눈 돌아간다”며 수업 중에 바로 앉으라고 한 경우가 다수 있었다. 또 “여자가 살이 많이 찌면 매력이 없다”고 한 내용도 있다. 성희롱과 차별적 발언을 고발한 글이 주류를 이뤘다.

파문은 일파만파로 번졌다. 당시 이 게시판에는 약 170여 건의 고발 내용이 게재됐다. 물론 개중에는 성희롱이나 차별과는 관련이 없는 글도 상당수였다. 성 소수자라고 밝힌 한 학생은 동성애를 비난하는 교사를 고발하기도 했다.

학생들은 해당 교사에게 사과를 요구하고 성희롱과 성폭력으로 고발된 선생은 사퇴하라고 주장했다.

-----------미투고발 글 발단, 교사 등 80명 조사

여기에 시민단체 등이 가세, 대구 시내 일원과 시교육청 앞에서 스쿨미투를 고발하는 연쇄시위를 벌이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일부 학부모까지 동조했다. 금세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 학교는 당시 스쿨미투의 발원지가 됐다.

학교는 2학기 내내 홍역을 앓았다. 학생 70여 명과 교사 10여 명이 경찰과 교육청의 조사를 받았다. 교사 절반가량이 자술서를 썼다. 3명의 교사는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이 중 과도한 신체 접촉을 한 교사는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시교육청은 학생과의 스킨십이 문제 된 여교사 한 명도 추가 고발했다. 여교사의 가벼운 스킨십도 학생이 수치심을 느꼈다면 성폭력에 해당한다는 전문가 의견에 따른 것이다.

무혐의 처분을 받은 교사는 타 학교 전보로 마무리됐다. 남은 교사와 학생들은 지금도 당시의 악몽 같은 상황을 생각하면 몸서리쳐진다.

미투 후유증은 해를 넘겨서도 계속됐다. 학교는 유혈이 낭자하다. 지난 1월 말 이 학교는 교사 55명 중 12명이 사퇴했다. 이 중 8명이 명퇴를 신청해 학교를 떠났다. 교장과 교감은 중징계를 받은 후 다른 학교로 발령 났다. 교사 상당수도 학교를 옮겼다.

얼마 전 1학년 신입생 배정을 받았다. 하지만 당시 상황을 아는 학부모들이 학교 배정에 반발, 집단 거부하는 소동도 일었다.

곧 새 학기를 맞는다. 학생과 교사 사이에 허물기 쉽지 않은 큰 벽이 처졌다. 사제 간 신뢰를 회복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일부에서는 큰일도 아니었는데 언론 등에서 부풀려 사건이 침소봉대됐다는 의견도 있다. 교권은 땅에 떨어진 지 오래다. 학생이 교사를 믿지 못하고 교사가 학생을 믿지 못하는 교단의 불신 사태는 모두를 피해자로 만들었다. 교육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 우려되는 부분이다.

--------------성장통 여기기엔 상처 커, 제자리 찾길

미투를 우리 사회의 성장통, 일과성 바람으로 치부하기엔 그 생채기가 너무 크다. 당장 학교에서는 교사와 학생이 서로 거리를 두고 대한다. 이제 학생과 교사는 지식을 사고파는 개체로서만 존재할 뿐이다.

스쿨미투를 학생의 인권과 여성의 권리를 찾아가는 한 과정이라고 위안 삼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이참에 교직 사회에 인성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교단에 설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올 2월 말로 명퇴를 신청한 교사가 예년의 배가 넘는다고 한다. 사명감을 갖고 교직에 임했다가 실망과 회의만 갖고 떠나는 일이 더 이상 없도록 해야겠다. 설익은 학생들의 논리와 잣대로 교사를 도매금으로 매도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

미투로 멍든 지역 교육계는 새 학기부터 모두 털어버리고 하루빨리 제자리를 찾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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