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현/ 지성교육문화센터 이사장



오래 못 보던 후배 사업가를 만났다. 베트남 공장에서 막 돌아와서 그런지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다. 세월 탓일까. 매사에 신중하고 치밀하면서도 활달한 사람인데 그날은 지쳐 보였다. 서로 악수를 하며 내가 우리 옆집 매화가 피기 시작했다는 말을 했다. “선배님, 우리 사업하는 사람은 봄이 와도 봄이 아닌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입니다.” 그는 대학 시절 함께 민주화 운동을 했던 동지다. 매사를 합리적으로 판단하며 남의 말에 기꺼이 귀 기울이는 사람이다. 대학 졸업 후 사업을 시작하여 지금은 연간 100억 원 이상을 수출하는 건실한 중소기업을 경영하고 있다. “앞으로가 걱정입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우리 같은 제조업은 점점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나는 이 사업을 아들에게 물려주려고 했는데 접어야 할 것 같습니다. 베트남에 공장을 지었지만 대를 이어 거기서 사업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는 누구보다도 직원들의 복지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모범적인 기업인이다.

“우리 제조업은 외국 노동자들에게만 천국입니다. 그들은 야근을 하면 450만 원 이상 받아갑니다. 우리 젊은이들은 야근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낮에만 일하고 200만 원 남짓 받아갑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세계를 선도할 수 있는 기술이나 지식, 콘텐츠도 별로 없고 헝그리 정신도 없는 것 같습니다. 이 모든 문제는 정치와 교육이 제 기능을 못하는 데서 나온다고 봅니다. 우리는 가난했지만 열심히 공부하며 민주화 운동도 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도전 정신은 말할 것도 없고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는 눈도 없습니다.” 후배는 지금까지 지지하던 정치인과 정당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진보든 보수든 미래를 위한 공부는 안 하는 것 같고 현실을 너무 모른다고 개탄했다.

중학교 자유학기제 학부모 강의를 하며 다음 두 질문 중 하나를 선택해 보라고 했다. “지금 배는 고프지만 희망이 있다.” “지금 배는 고프지 않지만 희망이 없다.” 참석자 모두가 첫 번째를 선택하겠다고 했다. 산업사회의 고도 성장기에 학창 시절을 보냈던 사람들은 운이 좋은 세대였다고 말할 수 있다. 어린 시절 배는 고팠지만 열심히 공부하고 성실하게 일하며 근검절약하면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키우면서 부모님 봉양까지 할 수 있었다. 지금의 학부모들은 두 번째 질문이 현실화되고 있다고 걱정한다.

우리는 경제와 정치 이야기를 하다가 드골 대통령 이야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망명정부를 이끌고 독일에 항전하던 드골 장군은 개선장군으로 파리에 입성하여 나치 협력자와 부역자를 처단하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 1945년 임시정부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위대한 프랑스 건설’을 위해 대통령에게 강력한 권한을 부여하는 헌법을 만들려고 하다가 국민의 반대로 그다음 해 사임했다. 1959년 다시 대통령에 취임하여 알제리 문제를 해결했다. 그는 또다시 ‘위대한 프랑스 건설’을 위해 내일을 위해 오늘 허리띠를 졸라매자며 국민의 희생을 요구했는데 학생과 노동자들의 반대로 1969년 대통령직에서 물러났으며, “매일 치즈를 바꿔 먹는 국민을 통치하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말을 남겼다. 그는 전직 대통령이 아닌 육군 대령의 연금을 받았고 사후에도 유언에 따라 육군 대령의 장례를 치렀다. 부인도 남편의 뜻을 받들어 양로원에서 궁핍한 생활을 하다가 생을 마쳤다.

국민의 거센 반대가 있더라도 미래를 위해 몸을 던지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국민은 정치권의 편 가르기와 막말, 부패와 타락에 지쳤다. 우리 정치인들은 목전의 이익을 위해서는 한 치 앞도 내다보지 않고 사분오열되며, 두 눈 감고 서로를 향해 총질하며 자멸과 자폭의 길을 선택한다. “중국인은 한쪽 눈은 감고, 한쪽 눈은 뜬 채 꿈을 꾼다.” 중국의 작가 린위탕(林語堂)이 ‘생활의 발견’에서 한 말이다. 두 눈을 다 감으면 실현 불가능한 공상이나 망상에 빠질 수 있다. 뜬 눈으로는 현실을 직시하고, 감은 눈으로는 미래를 꿈꾸며 구상하라는 말이다. 우리에겐 젊은이들과 국민들로 하여금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하면서도 꿈을 꾸게 할 수 있는 교육자와 정치인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박준우 기자 pj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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