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갈 데로 가거라 / 김규동

발행일 2019-02-21 17:59:03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너 갈 데로 가거라 / 김규동

아들아이는 빈 책가방에 도시락만 달랑 넣고 집을 나섰습니다. 그가 어디로 가는 걸까요. 학교에 가도 수업시간에 알아들을 수 있는 건 없고 한 시간이 천년 같다고 했어요. 수학과 영어는 1학년 때부터 공부했어야 하는데 어느새 3학년 기초가 없으니 어느 과목도 다 모를 것뿐입니다. (중략) 막노동하는 아버지는 이런 사정도 모르고 아이의 장래를 생각하며 일만 열심히 했어요. 뒤늦게 이 일을 알게 된 아버지는 분통이 터져 당장 아이를 붙잡아 때려죽이려 했어요.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아이 어깨를 짚더니 조용히 이야기 했어요 참으로 조용히 말했어요. 용식아, 알았다. 그렇구나, 너 갈 데로 가거라 너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거라 이 애비도 그래서 일찍이 집을 뛰쳐나와 이렇게 평생을 살았단다. 용식아 알았느냐 그러면서 참았던 눈물을 쏟으며 아버지는 그만 통곡하고 말았어요

- 계간 『사람의 문학』 2006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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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우리 모두 다 겪은 일이다. 근거 없는 불안과 의심으로 공부는 재미없고 먼 산을 자주 쳐다보았다. 공상을 하면서 세상은 왠지 다른 재미나는 일들로 수두룩하고 눈에 잘 띄지 않은 곳곳에 숨겨져 있을 것만 같았다. 연필을 손에서 놓고 교실 창밖 봄날의 아지랑이에 혼이 빠지고 가을날의 단풍에 넋을 잃었다. 노르스름하게 물들어가던 은행잎이 나를 잡아끌었을 때 칠판은 그야말로 깜깜한 흑판이었으며 아무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선생님을 주목하지 않은 대가로 꿀밤을 맞거나 몽당분필로 머리통을 타격 당하거나 어쩌면 화장실 청소를 두어 번 정도 했을지도 모르겠다.

학습 부진은 일부 선천적인 중추신경계 이상으로 인한 학습 장애 말고는 거의 기초학력 부족으로 인한 흥미 상실 때문이다. 학교에서 먼 산이나 보고 예습복습을 하지 않으니 처질 수밖에 없다. 따라가지 못하는데 나중에 따라잡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집중력과 주의력이 떨어져 딴짓하기 일쑤고, 중2 신학기쯤 되면 회복은 더욱 어려워 밖으로만 나돌려고 한다. 옛날엔 그저 골목을 배회하거나 천장의 사방팔방 무늬만 쳐다보며 공상을 키울 뿐이었지만 요즘 아이들에겐 인터넷 게임 등의 환상적인 출구가 있다. 공부가 생각보다 재미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아이들 자존심을 배려한 맞춤식 학습 환경이 제공돼야 하는데 쉽지 않다.

공부 못하는 아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부족하다. 시에서 “너 갈 데로 가거라” 눈물 쏟으며 진정어린 격려를 해주는 아버지의 태도는 그나마 다행스럽다. 대개는 낙인찍힌 채 내팽개쳐져 방치되는 게 현실이다. 문제는 ‘너 갈 데로 가서’ ‘너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라는 당부가 수용될 만큼 이 사회가 다원화된 교육 인프라나 사회안전망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머리가 늦게 트이는 아이들을 편견 없이 보듬어줄 재기 시스템이 거의 작동되지 않고 있다. 최근 ‘스카이캐슬’이나 ‘수저론’도 근본적인 교육개혁의 요구를 함의하고 있다. 빈부의 세습뿐 아니라 학력의 대물림으로 이 사회가 더 깊게 양극화되고 골이 패인 채 그냥 굴러간다면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공부를 잘 하나 못하나 학교 안이나 밖이나 청소년들은 우리의 미래임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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