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안마 방/정병근



지하계단을 내려가 문을 열고 들어서면 어둠이 깊은 우물처럼 출렁이고 거기 한 늙은 여자가 앉아 있습니다 (중략) 어둠 속에서 그녀는 이 세상에 살아 죄 많은 한 몸을 주무릅니다 오랜 세월 기다렸던 한 몸이 한 몸을 만난 거지요 어쩌면 나는 오래 전에 그녀를 떠났고 숱한 세월을 돌아 이제야 돌아온 것입니다 때늦은 약속을 지키러 말입니다 천년만의 해후! 아, 이런 걸 사랑이라 말하면 어떻겠습니까 그녀가 영비천 하나를 따서 쓱 내밉니다 천연두 앓은 곰보처럼 얼굴을 숙입니다 나도 그녀의 얼굴을 외면합니다 종소리 나는 문을 열고 우물 속을 나옵니다 다시 환한 세상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하략)



- 시집 『번개를 치다』 (문학과지성사,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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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마가 우리 시대에 불온한 성적 코드로 자리매김 된 지 오래다. 현행법으로 안마는 안마사 자격증을 가진 시각장애인에게만 주어진다. 이는 맹인의 독점적인 직업으로 보호하기 위해 일제강점기 때부터 마련된 법적 근거이다. ‘안마방’으로 일컫는 ‘안마시술소’는 원래 안마를 해주는 곳이지만, 지금은 변칙 영업이 주를 이루어 진짜 맹인안마사에 의해 순수한 안마만 받는 곳은 안마시술소라 그러지 않고 안마원이라고 한다. 사실 1980년 이후 성매매 산업이 확장되고 신종 장르들이 속속 생겨난 것은 전두환 정부 때 3S 정책의 일환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진짜 맹인안마사의 출장도 왕왕 있었으나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 고인이 되신 구상 시인께서 1970년대 대구에 오면 가끔 맹인안마사를 불러 안마를 받곤 했는데, 1980년대 이후 그런 호사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라고 했다. 출장안마가 성매매 수단으로 악용되다가 2004년 성매매특별법 발효 이후 우후죽순 생겨난 안마방은 남성들의 성 구매 주요 경로로 자리 잡았다. 1990년대부터 장안동에 대거 들어선 안마방은 일본인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코스가 될 만큼 윤락 관광의 구심점 노릇을 톡톡히 했다.

가령 중국이나 동남아 여행에서 대개 경험하는 간단한 발마사지조차도 뭔가 은근한 기대를 갖는다든지 야릇한 기분을 자아내게 한다. 오래 전 어머니와 이모님이 중국여행에서 난생처음 발마사지를 받고 당시 67세인 이모는 뭐가 켕겼는지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언니, 황 서방(이모부)한테는 발마사지 받았다는 얘기 하지 마” “어쩌다 말이 툭 튀어나왔어도 남자가 해줬다는 소린 마” 그랬다는 것이다. 그만큼 안마는 부위가 어디든 무언가 색다른 서비스를 받는다는 느낌을 준다. 남성들이 안마방을 찾는 이유가 그것이다.

기분 좋게 안마를 받다 보면 아닌 게 아니라 ‘오랜 세월 기다렸던 한 몸이 한 몸을 만나’ ‘나는 오래 전에 그녀를 떠났고 숱한 세월을 돌아 이제야 돌아온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어쩌면 그 숙련된 ‘전문가’에게 자칫 사랑을 느낄지도 모른다. ‘마치 전생의 약속만 같아’ 오래 그녀를 기억하듯이 ‘아, 이런 걸 사랑이라 말하면 어떻겠습니까’ 나도 딱 한 번 우연히 안마방을 간 적이 있다. 그리고 한 번도 가지 않을 수는 있어도 한 번만 가기는 힘들었을 그곳을 다시 찾지는 않았다. 으슥한 곳에 주차만 해도 삐딱하게 보는 세상이다. 공인이든 아니든 야릇한 분위기가 풍기는 장소엔 접근하지 않는 게 상책이다. 까닥하다간 오해를 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박준우 기자 pj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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