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민희 / 재미 수필가

















조카가 결혼을 한다. 30여 년 전, 임신 소식이 없어 초조해하던 올케가 어느 날 조금씩 불러오던 배를 가리키며 신기해하던 때가 눈에 선한데. 그 아기가 어느새 자라서 결혼을 한다. 훤칠한 키에 선한 눈빛의 청년이 우리의 기대치보다 훨씬 더 예쁘고 슬기로운 아가씨에게 오늘 웨딩드레스를 입혔다. 실감이 나지 않는다며 벙글대며 아들의 결혼 소식을 발표하던 동생도 오늘은 시아버지답게 근엄한 얼굴로 식장 앞에 섰다. 은은한 푸른빛 저고리의 신랑 어머니와 분홍빛 저고리의 신부 어머니가 나란히 걸어 들어와 촛대에 불을 밝히고, 이어 주례 목사님이 신랑과 들러리를 이끌고 들어온다. 오르간 소리가 웅장해지자 모두 일어선다. 아버지의 팔짱을 낀 신부가 발그레한 얼굴로 한 발 한 발 새 세상을 향하여 발을 내딛는다. 양팔에 걸려있던 딸의 무게를 이제는 누군가에게 옮겨주어야 하는 아버지. 아장아장 첫걸음을 떼던 아가. 팔랑팔랑 치마를 나부끼며 뛰어와 안기던 아가. 이제 나비처럼 포로롱 내 담장을 넘어 누군가에게로 날아가는구나. 부디 잘 살거라. 행복하거라. 아버지는 딸의 손을 건네받은 사위 어깨를 감싸 안는다. 온몸으로 다독인다. 안경 너머로 얼핏 물기가 보이는 것 같다.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둘이 한 몸이 되었은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주례사가 끝나고 반지 교환이 있고 부부로서의 언약이 끝나자 둘은 팔짱을 낀 채 활짝 웃으며 첫발을 내딛는다. 사랑의 끈으로 꽁꽁 서로를 묶은 두 사람. 이제 온전히 하나로 합쳐져서 비상하는 순간이다.

언젠가 본 그림이 생각난다. 서로 껴안고 높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천사 그림이다. LA 한인 타운에서 10번 프리웨이를 타기 위해 놀만디 길로 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큰 교회 건물이 보인다. 상가처럼 밋밋한 디자인의 8층 높이 건물 전체에 벽화가 그려져 있다. 두 천사가 긴 옷을 펄럭이며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날아가는 그림이다. 자세히 보면 한 천사는 왼쪽에, 한 천사는 오른쪽에 날개가 하나씩만 달렸다. 날개가 없는 쪽 팔은 서로 껴안아 한 몸을 만들고 다른 쪽의 날개를 각각 펼쳐서 날아가는 중이다. ‘우리는 한 쪽 날개만 가진 천사입니다. 서로를 껴안을 때에만 비로소 하늘 높이 비상할 수 있지요. (We are each of us angeles with only one wing, and we can only fly embracing one another.)’ 이탈리아 작가이자 영화감독인 루치아노 드 크레센조 (Luciano De Crescenzo)의 글귀가 그림 위에 한 줄로 쓰여 있다. 무심코 스쳐 지나기만 했던 길이었는데 그 그림을 보게 된 후부터 나는 일부러 빨간 신호등에 걸리고 싶어 한다. 고개를 들어 두 천사를 올려다보면 마음이 따뜻해지기 때문이다.

우리의 몸은 오른쪽 왼쪽의 균형이 너무나 완벽한 대칭의 구조물이다. 두 팔과 다리가 같은 무게로 몸에 붙어있기에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걷고 뛰고 앉을 수 있는 것이다. 팔 하나 혹은 다리 한쪽만 없어도 몸의 무게 중심을 잡기가 쉽지 않을 텐데 몸 크기만 한 날개 한 쪽이 없는 천사가 어찌 자기 몸의 균형을 잡을 수 있을까. 더구나 날아간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그런데 이 그림은 함께 날아간다. 마치 한 몸인 듯 옷을 펄럭이며 가는 모습이 너무나 편안하다. 서로는 서로에게 얼마나 양보가 있을까. 배려가 있을까. 신뢰가 있을까. 그들은 하나, 둘, 한목소리로 구령을 하며 그에 맞추어 날개를 펼 것이고 서로 멀어질세라 힘껏 상대를 껴안을 것이다. 가는 방향도 함께 바라보며 속도도 맞추어 갈 것이다. 그들이 서로 주고받을 마음이 나를 감동시킨다.

새로운 가정이 또 탄생했다. 두 개의 반쪽이 모여서 온전한 하나가 되었다. 두 천사의 비상이 눈부시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축복으로 그들을 축복해주고 싶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성경 말씀으로 조카의 새 가정에 울타리를 친다. 인디언이 결혼식에서 읊어주는 축시도 보낸다. 이제 두 사람은 비를 맞지 않으리라. 서로가 서로에게 지붕이 되어 줄 테니까. 이제 두 사람은 춥지 않으리라. 서로가 서로에게 따뜻함이 될 테니까. 이제 두 사람은 더 이상 외롭지 않으리라. 서로가 서로에게 동행이 될 테니까. 이제 두 사람은 두 개의 몸이지만 두 사람의 앞에는 오직 하나의 인생만이 있으리라. 이제 그대들의 집으로 들어가라. 함께 있는 날들 속으로 들어가라. 이 대지 위에서 그대들은 오랫동안 행복하리라.



박준우 기자 pj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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