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우/





17살 유관순은 감옥에서도 당당했다. 100년 전인 1919년 3월 1일. 이화학당에서 3·1 독립 만세운동을 주도한 유관순은 휴교령이 내려지자 고향 천안으로 내려와서도 만세 운동을 벌였다.

아우내 장터에서 벌어진 만세운동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한꺼번에 일본 순사의 총칼에 잃고 오빠와 함께 붙잡혀 재판을 받으면서도 나라의 독립과 자신의 의지를 흩트리지 않았다.

1년여 감옥에 갇혀서도 만세운동을 벌이다 모진 고문 끝에 옥사하니 겨우 18세. 참으로 장한 유관순 열사다.

59년 전 1960년 2월 28일. 대구에서 고교생들이 독재 정권에 맞서 분연히 일어섰다. “백만 학도여 피가 있거든 우리의 신성한 권리를 위해 서슴지 말고 일어서라”는 결의문은 해방되고 막 전쟁을 겪은 뒤의 어수선한 나라에서 청년 학생들의 위치를 정확하게 지정해 줬다.

세상이 살기 좋아졌다. 더 이상 독립운동 하던 일제강점기도 아니고 민주주의를 외치던 군부독재도 아니다. 말로는 헬조선이니 탈한국이니 하면서도 아주 한국이 자랑스럽고 좋아 죽겠다는 젊은이들로 넘쳐난다.

여성가족부가 TV 출연 아이돌의 외모까지 가이드라인을 내놓았다가 집중 포격을 맞았다. 출연자들이 모두 같은 외모에 음악성까지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며 음악방송 출연 가수들은 모두 쌍둥이냐고 지적한 것이다. 아이돌의 몰개성적인 외모나 음악성에 대한 비평은 외모 검열이라는 또 다른 비난을 사기도 했다.

오죽했으면 그런 가이드라인이 나왔을까. 그런데 외모 지상주의는 방송 출연자들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들을 따라 하는 젊은이들은 또 어떤가. 하긴 우리나라 사람들의 외모에 대한 지나친 유행은 그것이 일견 경제적이기도 할 것 같다. 그러나 개인적 차이를 넘어서는 모방은 피해망상에서 습득한, 튀면 죽는다는, 생존법칙 때문인지도 모른다. 다중에 섞여서 그 익명성에 몸을 던지고서야 안심하는.

청년기의 예뻐 보이고 싶은 욕망이야 나르시스의 신화에도 등장한다. 그 욕망은 길을 가면서도 거울로 자신의 외모를 확인해야 안심이 되고 또 혼자 보고 웃고 만족하는 현실에서 초등학생들의 빨간 입술 화장에까지 연장되고 있기도 하다.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중고생들 사이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롱 패딩이 이젠 젊은 세대를 넘어 기성세대까지, 몰개성의 극치를 보여준다. 색까지 까맣다. 한동안 아웃도어의 열풍으로 동네 마트 나들이에서 야외 피크닉이나 트레킹은 물론 해외여행까지 아웃도어 일색이라 공항패션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러더니 롱 패딩이다.

너무 심한 말이라고? 젊었을 때는 그러하다고? 아니 그런 세상이 바뀌었다. 오늘과 같은 경쟁의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자신들의 삶을 격려해 주지 않는 기성세대가 오히려 못마땅할지 모른다.

어쨌든 세상살이에 치열함이 없다. 너무 살기 좋은 세상이 됐다. 더 이상 요구하고 싶은 것이 없을 만큼. 자기 얼굴에 투자하고 남들과 함께 롱 패딩을 입어서 그 동일감을 확인하고 존재감을 인식하는 오늘의 젊은이들에게 2·28 당시의 고등학생은 어떻게 보일까. 어리석었을까. 바보였을까. 당시의 고등학생이라면 선택받은 존재였을 것이다. 그런 기득권을 팽개치고 거리로 뛰쳐 나와 독재 타도를 외쳤다. 불이익을 감수하고, 자신의 미래보다 자신이 살고 있는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 희생했던 것이다.

대구 학생들의 장거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정의감과 용감성이 후세대 사람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지금도 그 시절 주역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국가와 지역사회의 향도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으니 그것이 일회용 행사 테마로 소비되기에는 너무나 거대한 발자취다.

3월, 신학기다. 새봄이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다. 이젠 시꺼먼 롱 패딩은 벗어 던지고 산뜻한 봄옷으로 바꿔 입자. 그리고 옆을 돌아보자. 나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앞장설 수 있는 젊음. 그것이 2·28과 3·1운동의 주역들이 우리에게 남긴 교훈이다.





박준우 기자 pj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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