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봉/논설위원













“수도권은 배 터져 죽고, 지방은 배고파 죽는다.” 지역 한 단체장의 말이다.

최근 SK하이닉스가 경기도 용인에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수도권총량제가 걸리자 관련 법규까지 바꿔주겠다고 했다. 구미 유치 결의대회를 여는 등 야단법석을 떨었던 경북도와 구미시는 모양새만 구겼다. 땅도 거저 내주고 직원 주거지는 물론 고급인력 공급까지 약속했지만 외면당하고 말았다. 아무리 그럴듯한 당근도 소용없었다.

유치에 탈락한 지자체들은 “정부가 국가균형발전정책을 포기했다. 현 정부의 국정과제를 정면으로 역행하는 처사”라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이미 버스는 지나갔다.

---지역균형발전에 목맨 지자체 고려해야

SK하이닉스 사례에서 보듯 대기업들은 지방에 공장 지을 생각이 별로 없다. 지역에서 아무리 용을 써봐야 돈 될 만한 기업은 지방에 오지 않는다. 시설 집약화에 따른 경쟁력 강화와 고급인력 공급, 문화시설 등 생활 인프라 부족 때문이라는 기업의 주장을 지방도 이해한다. 하지만 ‘지역균형발전’을 시대적 소명으로 내세우는 문재인 정부를 믿었다. 돌아온 건 실망뿐이었다.

수도권은 지방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다. 돈과 사람을 끌어가면서 비수도권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수도권 비대화에 따른 부작용은 모두가 내 몰라라다. 그동안 지역균형발전 논리는 지방에 큰 힘이 됐다. 그러나 여전히 맹목적인 서울 바라기에 맥을 못 추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정부의 최근 24조 원 규모의 공공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발표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방은 대환영이다. 그러나 서울(경기·인천 포함)이 난리 났다. 이들은 경제성 없는 지역에 대규모 공공사업을 투자하는 것은 자동차 대신 다람쥐만 다닌다는 일본의 ‘다람쥐 도로’를 만들려는 ‘퍼주기’라며 비난했다. 세금 낭비며 토건 적폐의 부활이라고 쏘아붙였다.

지역 SOC 사업의 경우 예비타당성 조사는 넘볼 수 없는 철옹성이다. 지방은 인구가 적은 데다 기반시설까지 낙후해 경제성을 반영하면 예타 통과는 불가능하다. 이렇게 되면 지방은 영원히 인프라 구축과는 담을 쌓아야 한다. 오죽했으면 예타를 ‘통곡의 벽’이라고 하겠는가. 그런데도 ‘다람쥐 도로’타령을 하며 예타 면제를 질책한다면 ‘넘사벽(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이 될 수밖에 없다.

---예타 면제는 ‘넘사벽’ 극복 위한 극약 처방

정부가 김천~거제 간 남부내륙고속철도 사업 등 23개 사업을 예타 면제키로 발표한 것도 이 같은 사정을 고려한 때문이다. 예타 면제는 넘사벽을 극복하기 위한 극약 처방이다. 정부는 아예 예타라는 장애물을 없애 지역경제 활성화를 꾀하려고 한다.

정부는 이를 위해 국가 SOC사업의 기준인 예타 제도를 대폭 손질하기로 했다. ‘통곡의 벽’을 낮추기 위해서다.

정부가 경제성 분석이 예타의 ‘암초’라는 점을 인식, 개선하기로 한 것이다. 예타 면제라는 편법을 합리적으로 개선하겠다는 것. 경제성을 확보하려면 비용 대비 편익이 높아야 하는데 인구가 적고 기존 인프라가 낙후한 지역은 편익이 낮을 수밖에 없다. 지역낙후와 예타 탈락의 악순환이 반복된다.

경북권의 대규모 SOC 사업은 번번이 예타에서 미끄러졌다. 현재의 예타 기준을 적용할 경우 SOC사업 시도는 꿈도 못 꾼다.

정부는 균형발전에 초점을 맞춰 예타 문턱을 낮출 계획이다. 하지만 무분별한 SOC 사업을 걸러내겠다는 제도 취지가 무색해진다는 우려도 나온다.

예타 면제 대상 지정에서마저 낙후지역이 소외되는 지역 간 불균형 문제도 제기된다. 지역별로 가중치를 달리 적용하고 정치가 개입할 수 없도록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예타 면제라는 수단마저 없었다면 문재인 정부가 내세우는 지역균형발전은 헛구호가 됐을 것이다.

기업이 안 오면 정부가 기업 역할을 대신해야 한다. SK하이닉스와 같이 기업 논리만 따르면 지방은 없다. 하지만 반도체클러스터 조성 등 기반시설 투자는 정부가 정책적으로 입지를 결정할 수 있다. 그리고 기업이 오도록 유도해야 했다.

정부는 이런 점을 등한시했다. 기업 논리에 매몰된 탓이다. 국가균형발전은 시대적 사명이다. 정부는 무엇이 중요한지 선후를 분명히 해야 한다.



홍석봉 기자 dghong@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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