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현/ 지성교육문화센터 이사장



손님이 찾아왔다. 미세먼지 때문에 마스크를 쓰고 산책하다가 들렀다고 했다. 손에 책 한 권을 들고 있었다. 기원전 50년 무렵에 쓰여서 르네상스의 새벽을 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루크레티우스의 장시(長詩)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였다. “좋은 책 읽으시네요.” “봄이라서 이 책을 잡아봤습니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도 이 책 베누스(비너스) 여신에 대한 찬사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해요.”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는 헬레니즘 시대의 주요 철학 사조였던 에피쿠로스학파의 물리학, 우주론, 원자론, 윤리학을 전해주는 소중한 자료다. 이 책은 스티븐 그린블랫 교수의 말처럼 다양한 주제가 한데 얽혀 있다. 강렬한 서정적 아름다움의 순간, 종교에 관한 철학적 명상, 쾌락, 죽음, 물질계, 인간 사회의 발전, 성의 위험과 즐거움, 질병의 본질 등에 관한 복잡한 이론들을 하나로 아우르고 있다.

포조 브라촐리니가 1417년 독일 한 수도원의 먼지 덮인 서가에서 이 책 필사본을 발견했다. 그는 탁월한 인문주의자이면서 교황의 비서, 고대 유물 수집가, 라틴어 번역가 등으로 활동했고 역사상 가장 유명한 책 사냥꾼이었다. 그는 이 책을 필사하여 세상에 유포했다. 마키아벨리도 이 책을 필사했다. 토머스 모어, 몽테뉴, 갈릴레오, 프로이트, 다윈, 토머스 제퍼슨 같은 사람들에게서도 이 책의 자취가 발견된다. 하버드대학의 스티븐 그린블랫 교수는 역작 ‘1417년 근대의 탄생, 르네상스와 한 책 사냥꾼 이야기’에서 이 책의 발견으로 교회와 봉건적 지배에 의해 자유를 빼앗기고 착취당했던 ‘암흑’의 중세가 마감되고 ‘재생’의 르네상스가 태동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는 사실을 잘 설명하고 있다. 그린블랫 교수의 설명과 해설을 참고하며 이 책을 읽어보면 오늘의 관점에서 보아도 그 내용은 정말 참신하고 새롭고 놀랍다. 주요 대목을 몇 군데를 인용해 본다. “사물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입자로 만들어진다. 사물은 이런 씨앗들로부터 형성되고 해체의 과정을 거쳐 다시 씨앗 상태로 돌아간다. 이런 씨앗들은 불변하며 분해할 수 없고, 눈에 보이지 않으며, 그 수가 무한하다. 이들은 끊임없이 운동하면서 서로 충돌하고 서로 결합하여, 새로운 모양을 이루며 다시 갈라지고 결합하기를 반복한다. 사물은 일탈의 결과로 나타난다. 일탈은 자유의지의 원천이다. 모든 체계화된 종교는 미신적인 망상이다. 이 망상의 근원은 깊게 뿌리박힌 인간의 염원과 공포, 그리고 무지에 있다. 인간은 소유하고 싶은 권력과 아름다움, 완벽한 안전에 대한 이미지를 투영하여 그에 따라 신들의 이미지를 만들고 그렇게 함으로써, 인간은 스스로의 꿈에 노예가 되고 만다. 종교는 일관되게 잔인하다. 종교는 항상 희망과 사랑을 약속하지만 그 깊은 내부에 근본적으로 깔려 있는 핵심은 잔인성이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응징의 환상을 불러일으키며 어김없이 추종자들에게 불안감을 조성한다. 천사니, 악마니, 귀신이니 하는 것들은 없다. 이런 종류의 비물질적인 영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생의 최고 목표는 쾌락의 증진과 고통의 경감이다. 인생은 행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자신과 벗의 행복이라는 이 목적을 이루려는 것 이상으로 더 고귀한 윤리적 목적은 없다. 국가에의 충성, 신 또는 지배자의 영광, 자기희생을 통한 고된 덕의 수행 같은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여타의 주장은 모두 부차적인 것을 가장 중요하다고 착각한 것이거나 기만인 것이다.”

루크레티우스는 사람들에게 죽음에 대한 공포, 신들에 대한 공포를 없애고, 내세에 벌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해소해 주려고 노력했다. 주요 내용이 기독교의 중심 가치를 부정하는 에피쿠로스주의를 대변했기 때문에 교황은 이 책을 금서로 지정했다. 나는 봄이 왔다고 고전을 읽는다는 사람의 눈빛을 떠올리며 ‘사물의 본성에 대하여’와 ‘1417년 근대의 탄생’을 다시 읽었다. 종교적인 신념과는 관계없이 현자들의 탐구욕과 학구열을 느끼고 싶었다. 어수선한 혼돈의 시대에 근본 대책도 없이 개념 없는 발언을 일삼으며 저잣거리를 헤매고 다닐 수는 없다. 근본과 근원, 원리를 탐구하는 사람이 많아야 그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 축적되고, 희망이 봄날의 새싹처럼 돋아날 것이다.



박준우 기자 pj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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