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희/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봄비가 소리 없이 내려와 대기를 씻어 놓았다. 땅은 흙냄새를 풍기며 촉촉하게 젖어가고 먼지 없는 하늘은 봄의 향기를 날 것으로 전한다. 미세먼지로 전국이 연일 비상사태에 접어 들어있던 터라 다행스럽다. 게다가 이 비 그치고 나면 봄이 성큼 다가와 꽃들이 다투어 피어날 것이리라. 아~ 아름다운 봄이 익어 가리라.

휴일 국제 심포지엄이 있어 앞산 옛길로 접어들어 행사장으로 향한다. 길가에는 해마다 휘늘어져 길손을 반기던 개나리가 피어날 준비를 해가고 있다. 모처럼 비가 내리는 날이라 시간 여유를 갖고 나와 운전대를 천천히 돌리며 산천과 초목에 눈길을 보내어 주위를 살펴본다. 차창으로 들어오는 비바람이 상큼하다. 오늘은 왠지 일이 잘 풀려갈 것만 같다. 모쪼록 어렵게 유치한 국제 심포지엄이 아무런 탈 없이 잘 진행되어가기를 바라본다. 어디선가 은은한 매향이 풍겨온다. 그 근원이 어디일까.

멀리 나무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하늘 사이로 하얗게 피어난 연한 분홍의 매화꽃이 눈에 띈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누구보다 빨리 피어나 사랑의 향기를 전하는 매화, 봄밤을 기다리게 하는 숨은 주인공이 아닐까.

향기를 모르고 정신없이 질주하는 차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저들은 오늘 어떤 목적지를 향해 저토록 절박하게 달려가는 것일까. 너와 나 우리 모두에게 비 오는 날의 푸근한 만큼이나 행복한 하루치의 행복이 찾아오기를 바라며 나도 가속 페달에 힘을 넣는다.

오늘 심포지엄에 올 연자들과 인사하며 그들의 표정을 살핀다. 대구에는 난생처음이라는 그들의 얼굴에는 신비감이 감돈다. 한국에는 몇 차례 와 보았지만 대구까지는 처음이라는 그들, 유니버시아드 대회로 기억하는 대구의 첫인상이 어땠을까. 일본에서 온 두 명의 대학병원 원로 교수와 중국에서 온 두 명의 교수는 저마다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고 대구의 인상을 이야기한다. 중국에서 온 리우 교수는 동계올림픽 개최지를 ‘핑창’이라고 발음하며 그곳에 한번 가 보았으면 하고 희망한다. 자기의 이름이 ‘스시 리우’, 그러니 중국어에 숫자 4를 나타내는 ‘Si-사(四)’에 기쁨을 나타낸다는 ‘Xi-희(喜)’를 이름으로 지어 놓았다. 매일매일 네 가지의 기쁨과 행복이 있도록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 이름에 담겨있다고 해야 할까. 그는 표정부터 모든 것을 초월한 듯 기쁜 일만 가득한 듯 빛이 나는 것 같다. 얼마나 좋은 이름인가. 무릇 이름 속에 바람을 담아서 그렇게 이름 지어둔다면 날마다 아이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자주 부를수록 소망과 희망이 잘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어떻게 기억되든 대구를 기억하고 우리를 기억할 그들에게 아무쪼록 비 내리는 도시의 이미지가 곱고 향기롭게 남기를 바라며 임원진들은 최선을 다해 손님을 안내하며 인연을 잇는다. 하얀 눈이 가득 쌓인 강원도 평창의 동계 올림픽이 열리던 곳을 가보고 싶다는 해외 연자들, 그들에게 언젠가 다시 한국에 올 기회가 되면 미리 연락해 달라고 명함을 건넨다. 잘 준비하여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비경을 보여주리라. 그리하여 국제무대에서 우뚝 선 우리들의 미래를 미리 상상해 보리라. 너무 먼 장래가 아닌 가까운 미래에 다시 만나 회포를 풀자고 하면서.

사람을 만나고 헤어질 때면 언제나 생각나는 구절이 있다. ‘지금 하십시오./오늘 하늘은 맑지만 내일은 구름이 보일지 모릅니다./어제는 이미 당신의 것이 아니니 지금 하십시오./ 친절한 말 한마디 생각나거든 지금 말하십시오. 내일은 당신 것이 안 될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언제나 곁에 있지는 않습니다. // (중략) // 가슴이 설렐 때 지금 당신의 미소를 주십시오./ 불러야 할 노래가 있다면 지금 부르십시오. / 당신의 해가 저물면 노래 부르기엔 너무나 늦습니다. / 당신의 노래를 지금 부르십시오.’

‘스시 리우 (Siixi Liu)’ 선생은 자그마한 키, 당찬 몸매로 다음 주에 서울에서 열리는 국제 학회에 다시 초대받았다며 역시나 행복에 넘치는 표정이다. 그의 힘에 넘치는 알찬 강의를 들으며 우리나라에서도 가까운 광동성 심천에서 활발하게 환자들을 치료하는 그를 떠올려본다. 언젠가 중국을 방문하게 되면 꼭 그의 병원을 찾아보리라 다짐하며 기분 좋게 머릿속으로 그의 강연을 찍어둔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우리네 인생이지만 날마다 한가지씩이라도 행복한 일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소중한 이에게 행복하다고 말해보자, 봄이 익어가는 지금. 은은한 매향으로 그대를 사랑하노라고.







박준우 기자 pj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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