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안동 태무지 농원

안전하고 건강한 농산물 꾸러미사업으로 억대 강소농 꿈꿔

농산물 꾸러미는 변화된 소비문화인 구독경제

80세 이전에 한 권의 책을 쓰고 싶은 농부

로컬푸드매장 운영으로 이웃과 수익을 나누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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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시장경제 체제의 경제개념은 소유경제였다. 최근 들어 이러한 개념이 급속히 변화되고 있다. ‘소유경제’에서 ‘공유경제’로 넘어가고, 또다시 ‘구독경제’로 바뀌고 있다.

최근에 자리 잡기 시작한 구독경제는 어떤 것을 얼마나 소유하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것을 찾아서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하는가? 하는 것이다.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신청하면, 정기적으로 원하는 상품을 배송해주는 서비스다.

농업도 예외는 아니다. 농산물 꾸러미사업이 대표 구독상품이다. 소비자가 원하는 시기에 정기적으로 꾸러미 상품을 배송해 준다. 꾸러미가 바로 ‘농업의 구독경제’다.

농산물 꾸러미사업으로 억대 농부를 꿈꾸는 강소농이 있다. 안동시 서후면 ‘태무지농원’의 정영자(64) 대표와 남편 김광호(70)씨가 주인공이다.

이들 부부는 서울에서 10년 전 고향으로 귀농해 1만2천 여㎡의 농사를 짓는다. 지난해 7천만 원의 소득을 올렸다. 올해 목표는 ‘억대 농부’의 반열에 오르는 것이다.

◆ 생명의 땅 ‘태무지’

‘태무지농원’이 있는 곳은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다. 이름이 특별하다. ‘태무지’는 태장리의 우리말이다. 예전부터 왕실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면, ‘태’를 정갈한 곳에 묻고 정성스럽게 관리했다.

전국에 태봉과 태실이란 지명이 많이 있는 것은, 우리 조상들이 생명의 신비함과 존중하는 마음을 가졌다는 것을 말해 준다.

‘태무지’는 생명의 신비한 기운을 품고 있는 생명의 땅이다. 그런 의미에서 농장 이름을 ‘태무지 농장’으로 정했다.

◆ 왜 꾸러미 농사인가?

정 대표 부부는 서울에서 30년 동안 광고업을 하다가 고향으로 귀농한 강소농이다.

잘나가는 광고사업으로 한때 ‘서울에서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나, 경쟁이 치열한 서울 생활을 접고, 귀향을 결정했다.

귀농 후 정 대표가 처음 꾸러미사업을 계획할 때, 남편과 함께 주변의 모든 사람이 “일손만 많이 가고, 푼돈만 들어온다”며 말렸다.

그러나 정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농촌의 수익구조는 봄부터 여름까지 농작물을 애써 가꾸고, 가을에 가서야 수확을 해 수입이 생기는 구조였다.

그러다 보니 종자와 비료, 농약 등 각종 농자재를 외상으로 가져다 쓰고, 가을에 갚는 것이 일상이었다.

가을에 목돈이 생기는 것은 좋지만, 외상값을 갚고 나면 농민들의 주머니는 또다시 텅 비어버린다. 연중 부채를 안고 사는 구조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연중 소득이 발생하는 농업을 연구한 끝에 수시로 현금이 들어오는 ‘꾸러미 농업’을 선택했다.

정 대표의 예상은 적중했다. 큰 액수는 아니었지만, 매월 꾸준하게 수입이 발생했다. ‘매달 월급처럼 수입이 생기는 농장’을 만들겠다는 꿈이 실현됐다.

‘꾸러미’는 유정란을 기본으로 계절별로 나오는 제철농산물로 구성한다. 봄에는 봄나물 중심, 여름에는 상추와 다양한 쌈 채소 및 과채류가 주를 이룬다.

가을에는 배추를 비롯한 풍성한 가을철 먹거리들과 겨울에는 저장 먹거리들로 꾸러미를 싼다. 된장과 간장을 보낼 때도 있다.

‘태무지 농장’에서는 50여 명의 정기회원을 비롯한 고객들에게 매월 2백여 개 이상의 꾸러미를 배송한다. 매주 수요일에 배송하는 꾸러미는 계절에 따라 다르지만, 통상 10~12가지의 농산물로 구성한다. 가격은 3만3천 원을 받는다.

◆백화점 농장

태무지농원은 백화점 같은 농장이다. 40㎡ 남짓한 비닐하우스에는 진한 녹색의 청경채와 치커리 같은 채소들이 12가지 종류나 자라고 있다. 소량다품종 재배를 하기 때문이다.

꾸러미의 특성상 제철에 나는 농산물을 보내다 보니 종류도 많고, 수시로 내용물이 바뀐다. 무와 배추는 기본이고, 들깨, 상추, 근대, 청경채, 대파, 오이, 양배추, 쑥갓, 아욱, 고추 등 무려 72가지나 된다.

이와 함께 스피아민트와, 로즈메리, 초콜릿 민트, 라벤더 같은 허브와 향신료도 키운다. 이렇다 보니 만물백화점이란 소리를 듣는다.

◆억척 농사꾼으로 변신

남편 김광호(70)씨는 농촌 출신이지만, 10년 전 정 대표의 권유로 귀농을 할 때까지만 해도 농사는 전혀 모르는 ‘농맹’이었다.

당초 ‘귀농’에 대해 논의할 때 김 씨는 강하게 반대했다. 이유는 두 가지다. 농사일의 어려움을 모르는 아내에 대한 못 미더운 마음과 서울에서 살다가 ‘금의환향’이 아니라, 실패자의 모습으로 귀향했다는 고향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 대표의 끈질긴 설득에 남편 김 씨도 결국 수긍했다. 김씨가 먼저 내려와 귀농준비를 하고, 1년 후에 정 대표가 합류했다.

이제 귀농 10년 차가 되면서 부부는 억척 농사꾼으로 변했다. 1만2천 여㎡의 농지에 72종의 농작물을 조그마한 관리기 한 대로 해결한다.

◆친환경 농업 원칙

태무지농원의 모든 농산물은 친환경 재배를 철저한 원칙으로 한다. 10년 전 처음 시작할 때 스스로 정한 원칙이다. 아직 한 번도 어긴 적이 없다.

주변에서는 “생각은 좋지만, 어렵다”고 손사래를 쳤다. 물론 농약에 대한 유혹도 많이 받았다. 연한 새싹에 진딧물이 빽빽하게 붙어 있는 것을 보고, 이웃에서는 “농약 한 번만 치면 깨끗해진다”고 권한다. 하지만 친환경 농사에 대한 부부의 생각은 확고하다. 효과는 떨어지지만, 직접 제조한 친환경 제재를 사용한다.

처음 농사를 시작할 때 부부가 의견대립을 했다. 정 대표는 ‘친환경 농사’, 남편은 ‘관행농법’을 주장했다. 오랫동안 이 문제를 놓고 갑론을박하다가 결국 타협점을 찾았다. 정 대표는 “생산량이 적고, 수익이 줄어들더라도 딱 5년만 친환경 재배를 해보고, 정 안 되면 관행농법으로 전환하자”고 했다.

팽팽한 의견대립의 결과는 정 대표의 승리였지만, 이제는 남편이 더 열렬한 ‘친환경 재배 주의자’로 변했다.

농장에 사용할 퇴비나 영양제 친환경 약제는 모두 남편이 직접 만든다. 농장에서 나오는 작물의 부산물은 모두 땅으로 돌려주고, 퇴비는 완전히 발효시켜 땅에 뿌린다.

친환경 약제는 주로 자연에서 채취한 식물을 활용해 만든다. 천연의 독성물질을 이용한 은행잎과 열매, 할미꽃, 자리공 등으로 친환경 약제를 만들고 마늘과 생강을 발효시켜 영양제로 활용한다.

농장 주변에 코스모스와 메리골드, 제충국 같은 꽃을 심는 것도 친환경농법 중의 하나다. 특유의 냄새를 활용한 일종의 기피제다. 농장의 경관도 조성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도 있다.

◆무농약 인증

안전하고 건강한 먹거리의 농산물을 생산·판매한다는 것에 대한 정 대표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29가지 농산물에 대한 무농약 인증을 받았다. 나머지도 인증을 받지는 않았지만, 모두가 무농약이다.

꾸러미를 이용하는 주 고객은 30~40대의 직장맘과 어린 자녀를 키우는 젊은 주부들이 대부분이다. 직장과 육아로 장보기를 할 시간이 부족하기도 하지만, 안전하고 건강한 먹거리를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먹이고 싶은 주부의 마음에서다.

그래서 항상 고객들에게 “안동 양반 정신과 농부의 정직함을 믿어 보라”고 한다.

◆한 권의 책을 쓰고 싶은 꿈

정 대표는 꿈이 있다. 70세까지 공부를 하고, 80세까지 한 권의 책을 쓰는 것이다. 바쁜 중에도 짬을 내 방송통신대학 농학과에 재학 중이다. 농학과를 졸업하면 심리 상담학을 공부할 계획이다.

그 이후에는 80세가 되기 전에 한 권의 책을 쓰고 싶다고 한다. 자신과 가족의 삶과 농사 이야기를 담은 자서전이다. 결코 쉬워 보이는 일은 아니지만, 반드시 이루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

또한 지역사회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농장 앞마당에 설치된 로컬푸드 매장에서 안동의 농업인들과 마을 주민들의 농산물을 함께 판매해 이익을 주민들과 나눌 계획이다.

그래서 매장 부지도 무상으로 제공했다. 그것이 자신과 가족들을 감싸 안아준 이웃에 대한 보답이라는 생각에서다. 올해 안동시 강소농연구회 회장을 맡아서 활동 중이다.



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

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 민간전문위원

팜라이터 ilsok@korea.kr



이홍섭 기자 hslee@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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