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엽 편집부국장 겸 사회1부장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말이 있다. 봄이 와도 봄이 온 것 같지 않다는 말이다. 현재 대구와 경북이 처한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대구·경북통합신공항과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 원자력해체연구소(원해연) 등 현안들이 줄줄이 표류하고 있다. 그런데도 대구시와 경북도는 물론 지역 여·야 정치권은 뚜렷한 해법도 없이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더욱 안타깝다.

대구·경북통합신공항은 지난해 2월 군위군 우보면 일대(단독지역)와 의성군 비안면·군위군 소보면 일대(공동지역) 등 두 곳을 이전 예비 후보지로 정했지만 1년이 되도록 국방부와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부산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의 ‘가덕도 신공항’ 재검토 시사 발언으로 지역 여론이 들끓고 있다. 문 대통령의 발언이 구체화되면 해묵은 신공항 논쟁의 정치 쟁점화는 물론 대구공항 통합 이전 사업에도 영향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2016년 6월 발표된 동남권 신공항 입지 선정 용역 결과를 뒤집고 ‘가덕도 신공항’을 추진한다고 해도 경제성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 당시 발표된 동남권 신공항 입지 선정 용역에서 김해신공항 건설안은 1천점 만점에 818점을 받았다. 반면 가덕도 신공항 건설안은 활주로를 1개 만들 때나(635점) 2개를 만들 때(581점) 모두 김해신공항보다 점수가 낮았다. 가장 좋은 평가를 받은 김해신공항 건설안도 입지 선정 이후 예비 타당성 조사에서 B/C(비용 대비 효용)가 0.94에 그쳤다. 가덕도 신공항은 0.7로 이보다 ‘경제성’이 더 낮았다. 가덕도 신공항은 경제성 없는 사업으로 이미 판정이 난 것이다.

신공항 입지 선정은 당시 파리공항공단 엔지니어링(ADPi)에서 맡았다. 최대한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외국 기관에 국내 공항 입지 선정의 ‘심판’을 맡긴 셈이다. ADPi 관계자는 최종 보고서에서 “가덕도에 공항을 지으려면 돈이 많이 들어가고 위험성도 크다”며 “다른 마땅한 입지가 없을 때나 선택할 지역”이라고 했다.

120조 원의 투자가 예고된 SK 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 부지도 경북도와 구미시가 국가 균형 발전을 앞세워 유치에 사활을 걸었지만 지난달 경기도 용인으로 내정됐다. 수도권 공장 총량제를 풀기 위한 정부 심의 등이 남아 있지만 투자 주체인 SK가 용인을 선택한 만큼 구미 유치는 좌절됐다. 알짜배기 대형 국책사업 때마다 정부가 수도권 규제를 풀어주고 지방의 목소리를 저버렸던 뼈아픈 행태가 이번에도 되풀이된 것이다.

미래 먹거리 산업인 원자력해체연구소(이하 원해연) 입지를 놓고도 경주와 부산, 울산의 신경전이 고조되고 있다. 이달 말 원해연 입지 선정이 최종 발표될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미 부산과 울산 접경지로 입지가 정해졌다는 소문이 지난달 나돌았기 때문이다. 2천400억 원이 들어가는 원해연을 부산시 기장군 장안읍과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에 걸쳐 짓기로 가닥을 잡았다는 한 중앙지의 보도가 발단됐다. 최적의 입지를 갖춘 경주시와 지역 정치권은 산업통상자원부를 찾아 항의하는 등 강하게 반발했다. 아직 결정된 바 없다는 산자부의 진화에 따라 잠시 수면 아래 가라앉았지만 곧 표면화될 사안이다.

여기에다 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가 면제된 남부내륙철도 건설을 두고도 경북 소외론이 불거지고 있다. 4조7천억 원이 투입되는 남부내륙철도의 역사는 모두 6곳. 경북지역 역사는 기점인 김천역이 유일하고 나머지 5개는 합천과 진주, 고성, 통영 등 모두 경남지역에 들어선다. 경북도가 학수고대한 동해안 고속도로 건설 사업은 아예 포함되지도 않았다. 사정이 이런데도 자유한국당 지역 의원들은 국회에서 달랑 성명서 한장을 냈을 뿐이다. 이후 진행 상황에 따라 사안별로 정부를 압박한다는 입장이지만 구체적인 대응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부산·울산·경남의 가덕도 신공항 문제에 대해서는 시·도지사와 지역 정치권의 대응에 온도 차가 있고, 원해연 유치에서는 여당 지역 의원들과 논의와 협력도 부족했다. 대구·경북지역 핵심 현안이 줄줄이 표류하고 있지만 시·도와 지역 정치권의 주도면밀한 전략도, 확고한 공조체제도 없어 보여 안타까울 뿐이다. “진정 지역민들을 위한다면 단체장들이 삭발이라도 하고 나서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래야 절실함이 전해지지 않을까요.” 지난 설 연휴 대구를 찾은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식사자리에서 한 말이 귓전에 맴돈다.



김종엽 기자 kimjy@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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