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롭고 초현실적인 ‘민중의 역사서’…경주 곳곳 그 무대 속으로

발행일 2019-03-18 17:14:13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1> 역사적 의의

경주는 ‘뚜껑 없는 박물관’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인식될 정도로 역사문화유적이 가득하다.

삼국유사 저자인 보각국사 일연선사의 진영. 군위군 고로면 인각사 국사전에 안치되어 있다.


수많은 역사문화 유적과 함께 재미있는 신화와 전설도 많다. 이러한 화려한 역사문화자원으로 ‘세계유산도시 이사국’이라는 이름을 얻고 있다.

하지만, 정작 세계적인 역사문화 도시라는 이름과는 달리 세계에서 찾아오는 관광객들의 발길은 그렇게 많지 않다.

널린 구슬을 꿰어 보배로 만들 스토리텔링, 즉 문화콘텐츠 사업이 부족하다는 것이 큰 이유 중의 하나다.

‘삼국유사 기행’은 삼국유사에 기록된 전설적인 이야기의 현장을 기행단과 함께 직접 찾아가 역사적 사실들을 추적해본다.

새로운 시각으로 책에 소개된 내용을 살펴보고, 이야기를 재구성 스토리텔링으로 소개한다.

삼국유사 이야기의 현장을 찾아 역사를 더듬어 보는 기행단들이 박혁거세가 태어났다는 나정에서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기행은 카페를 운영하면서 삼국유사 공부팀을 구성해 함께 답사하며 정보를 교류해 새롭게 삼국유사를 써 나가는 방법으로 삼국유사 이야기를 문화산업 자원화할 계획이다.

이러한 작업이 영화, 뮤지컬, 소설, 수필 등의 문화산업을 융성하게 하는 하나의 문화콘텐츠를 개발하는 실마리가 될 것이라 기대하며 삼국유사 기행을 시작한다.

기획연재에 앞서 삼국유사가 어떠한 책인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를 알아보고, 작가 일연선사가 걸었던 길을 먼저 추적해 본다.

◆삼국유사의 편찬 동기

삼국유사는 고려 후기 충렬왕 때에 일연이 기록한 개인 저술이다. 삼국의 정사에 기록되지 아니한 일들을 기록했다는 것에도 의미가 깊다. 몽고침략의 극복과 붕괴된 사회질서의 유지를 위한 의도가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삼국유사는 국민의 분노와 저항의식의 심화로 빚어진 산물이기도 하다. 삼국유사가 기록될 무렵, 몽고 침략으로 30년에 걸친 전쟁으로 백성의 고뇌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한 상황이었다.

삼국유사 전편에 민족사의 자주성과 문화의 우위성을 강조하는 관념이 드러나는 것도 이러한 관점에서 출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단군을 민족공동의 시조로 하여 중국역사의 시작이라는 요임금과 같은 시대로 인식하고, 단군 이후 이어지는 국가들의 계통을 분명히 밝히지는 않았지만, 고조선에서 위만조선, 마한, 부여, 삼국시대로 맥을 잇고 있다.

이는 중국에 대한 역사의 대등성, 자주성을 역설하고 있다. 원의 압제를 뿌리칠 수 없게 되었던 당시 현실에서 저항적 민족의식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삼국유사 저자 일연선사의 유적을 전시하고 있는 경산 삼성현전시관의 삼국유사 복사본.


삼국유사 전편에 짙게 드러나는 불국토 사상도 저항적 민족의식으로 풀이된다.

이 땅이 부처와 인연이 깊은 나라라는 사실을 강조해, 침략해온 몽고족에 비해 문화적으로 우월하다는 것을 확인시키려 한 것이다. 고려의 불교문화가 중국보다 앞선 것이라는 자부심과 긍지를 표현했다.

또 불국토사상을 통해 몽고민족에 대한 저항의식을 드러내 불국토는 침략자로부터 보호돼야 한다는 생각을 유포시켰다. 이러한 생각은 고려 귀족들과 민중들을 하나로 묶는 끈으로 작용하게 했다.

또 한 가지, 불교의 윤회사상을 넘어선 정토신앙이 있다. 정토신앙은 모든 번뇌와 망상만 끊어진다면 현재 살고 있는 현실이 정토이고, 정토는 죽은 뒤에 다시 태어나는 곳이다.

이를 통해 비극적인 현실에도 방관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써 기존체제의 유지에 도움을 주었다.

◆삼국유사 내용

삼국유사를 크게 단락별로 나누어 읽어보면 책을 펴낸 동기를 짐작하기 쉽다. 삼국유사는 전체 5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5권은 다시 9편으로 나누어져 사건과 사실들을 유형별로 기술하고 있다.

일연선사가 삼국유사를 쓴 곳이라고 전해지는 청도 운문사의 신라시대 삼층석탑.


1편은 ‘왕력편’으로 신라 건국시기부터 고구려, 백제, 가락, 후고구려, 후백제, 다시 고려의 통일까지 왕대와 연표를 도표식으로 표시하고 있다. 위쪽에는 중국의 역대 왕조와 연호를 제시해 시대적인 기준을 비교할 수 있게 했다.

2편은 ‘기이 59조’로 구성됐다. 고조선에서 고려 건국 이전까지 존재했던 국가의 건국설화를 서술하고 있다. 또 무속 및 불교설화를 통해 우리민족의 고대 정신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민족의 현실적인 삶의 기반인 국가의 흥망을 불교적 시각에서 이해하려 했다. 이런 점에서 ‘기이편’은 삼국유사 전체의 서론적 성격과 총론으로 해석된다.

3편 ‘흥법’부터는 각론이면서 본론이라 할 수 있다. 흥법은 6개 조로 구성돼 삼국유사의 중심이자 본론격인 불교사 관계의 시작인 불교의 전래와 수용, 진흥에 대한 사실들을 기록하고 있다.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선사가 가장 오랜 기간 머물렀던 달성군 비슬산의 보덕암으로 알려지는 대견사 삼층석탑.


4편 ‘탑상’은 31개 조로 구성돼 절과 탑, 불상이 건립된 유래와 영험 등에 대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불교가 흥함에 따라 불상이 조성되고, 탑이 건립된 유래 등을 읽을 수 있다. 삼국유사가 지향하는 불국토 구현에 대한 내용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5편 ‘의해’는 14개 조로 원광법사, 양지스님, 혜숙과 혜공, 자장, 원효, 의상, 사복, 진표, 법해스님 등 고승들의 행적을 통해 불법을 이해하도록 설명하고 있다.

6편 ‘신주’는 3개 조에서 밀본이 귀신들을 쫓아내고 혜통이 용을 항복시키는 등의 신을 감동시키고 신을 통해 목적을 달성하려는 주문이다. 불교의 사회화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7편 ‘감통’은 10개 조에서 불교 신앙의 기적들을 소개한다. 스님이 아닌 보통사람들의 신비체험이나 종교적 실천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선도산 성모, 광덕과 엄장, 월명사의 도솔가, 김현과 호랑이의 사랑이야기, 융천사의 혜성가 등의 내용이 전설로 소개된다.

8편 ‘피은’도 10개 조로 숨어 사는 사람에게 내재되어 있는 능력과 가치를 주제로 하고 있다. 스님들이 숨어 사는 것은 도를 구한다는 의미를 지닌 것으로 피은을 통해 신기로운 사건이 발생하고 중생의 감화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소개한다.

9편 ‘효선’은 5개 조로 세속적 윤리인 효와 종교적인 신앙인 선과의 관계를 정립하고, 불교적 윤리실천을 이루기 위한 편으로 해석된다. 윤리적인 효와 불교의 선은 갈등과 충돌이 일어나는데, 이를 해결하고 조화시켜 주는 내용으로 서술되어 있다.

◆삼국사기와 비교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는 140년의 차이를 두고 제작된 우리나라 고대사를 증명하는 최고의 역사서로 손꼽힌다. 그러나 기술방법이나 사관 등에서 엄연히 차이가 나는 부분이 많다.

삼국유사의 저자 보각국사 일연 선사의 진영을 모신 군위 인각사의 국사전.


‘삼국사기’는 김부식 외에 10여 명의 편찬위원이 왕명을 받아 저술한 정사로 분류된다. ‘삼국유사’는 일연이 개인적으로 체험과 연구를 통해 기술한 사찬서라는 점이 다르다.

삼국유사에 기록된 향가를 소개하는 경산 삼성현전시관의 헌화가 영상.


편찬 목적에서도 비교된다. 삼국사기는 ‘묘청의 난’으로 분열된 민심을 수습해 국왕 중심의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하고, 대륙의 강자 금과의 관계에서 유연한 평화적 외교술로 안정을 찾으려고 편찬했다.

삼국유사는 기존체제의 안정을 통한 혼란 수습과 원나라(몽고)의 침략에 대한 정신적 극복을 위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 때문에 유교의 합리주의보다는 신비적이고 초현실적인 내용으로 편성됐다.

서술형태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삼국사기는 중국 정사의 표준체인 기전체로 미려한 문장으로 기술됐다.

삼국유사는 자유로운 형식으로 전체적인 구성은 기전체와 비슷하지만, 흥법 등은 열전 형태로 쓰였으며 소박하다.

삼국유사가 쓰여진 곳으로 전해지는 청도 운문사 입구의 소나무 숲길.


내용면에서도 차이가 있다. 삼국사기는 정사로서 왕실, 통치자 중심의 사료가 주요 편집 대상이다. 정치, 제도, 인물 중심의 역사를 기술했다.

삼국유사는 귀족이나 민중 제약 없이 광범위하게 사료를 수집해 기록했다. 특히 삼국사기는 고구려, 백제, 신라 3국의 역사만 기록했지만, 삼국유사는 고조선, 부족국가, 삼국시대 등을 기록해 우리의 상고사를 소개하고 있다.

◆삼국유사에 대한 평가

삼국유사는 오랫동안 정사가 아닌 야사로 분류돼 상대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다가 20세기에 들어와 한국의 고대문화를 총체적으로 담은 사서로 평가받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오래전부터 불교와 인연이 깊은 땅이라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몽골보다 문화적으로 우월함을 확인하고, 혼란한 민심에 강렬한 신앙심을 고취하려는 문화의식을 고취한 기록이다.

일연선사가 가장 오래 머물렀던 달성 비슬산 유가사의 일연선사 시비.


삼국유사는 새로운 고대사를 체계화해 민족의식을 특별히 고양하려 했다. 중국과 대등한 뿌리가 깊은 민족이라는 자긍심과 자부심을 강조하고 있는 민족적 문학서 이기도 하다.

특히 한국사의 통사를 서술하는 실마리를 마련해 우리나라 최초의 통사서라 할 수 있는 조선왕조 동국통감을 편찬하는 데 큰 도움이 된 사료라 평가된다.

조계종 정윤 스님은 “중국의 ‘사기’는 역대 중국 정사의 모범이 된 기전체의 효시로써 2천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중국사에서 역작으로 꼽는다.

이런 저력을 발휘한 인물은 그 나라의 보배”라며 “우리나라는 바로 일연스님이 이에 해당한다”고 평했다. 이어 “일연이 저술한 삼국유사는 민중의 역사서로 한국의 위대한 문화유산”이라 강조했다.

일연선사가 직접 주관했다는 팔만대장경.


일연이 활동하기 이전은 무신정변이, 활동하는 무렵에는 몽골의 침입을 받아 30여 년간 삼별초항쟁 등이 있었고, 민란으로 이어지는 혼란의 시대였다. 게다가 고려 특권층 중에는 원나라에 사대주의 세력을 가진 이들이 있었다. 이 때문에 고려는 점차 원나라 지배하에 독립국으로서의 자주성을 잃어가고 있었다.

이런 시대에 일연은 ‘삼국유사’를 저술해 고려인들에게 정신적 지주를 제시해 주었다.

민족의 원류가 ‘단군’일 뿐만 아니라, 삼국의 뿌리가 모두 하늘과 연결된 태생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민족성을 찾고, 문화전통을 재인식하려는 자존이라고 본다.

◆참고문헌

삼국유사 기행을 연재하면서 삼국유사 해설은 다음 작가들의 서적, 논문과 경북대학교 주보돈 명예교수와 경주남산연구소 김구석 소장 등의 해석을 참고한다.

삼국유사 기행에 참고서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삼국유사 해설서들.
-삼국유사의 종합적 해석 상, 하(이범교, 민족사)

-삼국유사(고운기, 홍익출판사)

-삼국유사 1, 2, 3(최광식, 박대재, 고려대학교출판부)

-청소년을 위한 삼국유사(김원중, 민음인)

-불국토를 꿈꾼 그들(정민, 문학의 학문)

-만화 삼국유사(유영승, 녹색지팡이)

-경북대학교 주보돈 명예교수의 해석

-경주남산연구소 김구석 소장의 해석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저작권자ⓒ 대구·경북 대표지역언론 대구일보 .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댓글 (0)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댓글 환경에 동참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