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원이 마르지 않는 샘물 ‘옥정영원’ 속 올바른 마음 닦는 선현의 길 비춰 보이네

발행일 2019-03-19 18:43:28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4> 화산산성 그리고 옥정영원

◆쌓다 만 석성



경북 군위군 고로면에 위치한 화산산성(華山山城, 경북기념물 제47호)은 조선시대 미완성의 성곽이다. 팔공지맥의 하나인 화산(828m)에 기대어 축성한 석성인데 군위군과 영천시의 경계지역인 화산을 중심으로 그 계곡에서 정상으로 이어지게 쌓은 것이다.

기암괴석으로 이뤄진 화산은 북쪽이 가파르고 험준하지만, 산정에 오르면 삼위가 평탄한 분지를 이루고 울창한 숲과 자잘하게 번져 난 물길이 장관을 이룬다.



1709년(숙종 35년) 병마절도사 윤숙이 왜군의 내침에 대비해 축성의 기초 공사를 시작했지만, 가뭄과 질병이 만연하고 백성들의 고통이 극심해지자 중단하고 말았다. 까탈스러운 산세와 깊은 계곡 등 지형을 적절하게 활용하여 축조를 시작했던 화산산성은 그래도 족히 1km 길이가 넘게 남아있고 그 쌓아올린 돌조각 하나하나가 매우 선명하다.



찬찬히 들여다보노라면 축성 당시의 절묘한 축조법과 공사의 순차를 알 것도 같고, 힘겹게 노역하던 군병들의 얼굴빛도 어슴어슴 밀려드는 것 같다.



특히 수구문 터에서는 조선 중기 이후에 유행한 2층 수구로 축조하려 했던 모습을 엿볼 수가 있다. 또한 아름답게 축조된 동문, 반월형 홍례문의 돌기둥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보는 미감을 더한다.

그리고 화산의 남쪽 중턱에는 군사 물자를 조달하던 군수사(軍需寺) 터가 있는데, 그 부서진 기왓조각들이 도란도란 옛이야기를 들려주기라도 하는 것만 같다. 여기에 더하여 군대 막사 남쪽 널찍한 마당가의 수원이 마르지 않는 우물, 옥정영원이 눈길을 끈다

◆성찰의 준거로 삼은 샘, 옥정영원

영천시 신녕면 교전에서 태어난 송계〈송계 한덕련(1881-1956), 실천도학자로 칭송받는 선비〉라는 인물이 있었다. 고향에서 가학으로 학문을 익히고 제자를 육성하는 데 힘쓰던 그는, 서른이 넘어서자 전국의 유교 성지를 찾아 여행을 떠나고자 결심한다.

-공부가 어디 서책에만 있을 뿐이랴. 선현들의 흔적과 체취를 호흡하는 것 그리고 살아있는 거유들과 문답을 즐기는 것 또한 크나큰 배움이 아닐런가.-

송계는 진실로 선현들의 흔적을 찾아 묵상하고 현존하는 선비들을 만나 담론을 나누고 싶었던 것이다. 자신의 선택에 분명한 가치를 두고 있던 송계는 안동을 비롯한 북부지역을 돌아 죽령을 넘어갔다.

그리고 괴산 화양서원을 거쳐 전라북도 부안 개화도에서 며칠 묵은 뒤에 경남 거창과 청도, 고령 등 여러 유현 지역의 순례길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교전리에 있던 서당의 문을 닫고 군위군 고로면 옥정동으로 떠났다.

1919년 이른 봄, 송계는 가쁜 숨결을 몰아쉬었다. 군위 고로면, 마을의 울타리 같은 화산산성이 둘러 쳐져 있는 옥정동으로 걸어 오르고 있었다. 길이 꽤 가팔랐다. 간간이 목탄 화물차와 우마차가 다니는 신작로(현재의 28번 도로)를 벗어나 화산 계곡을 따라 산등성을 타고 오르는 길은 여간 험하지 않았다.

산골짜기가 깊은 곳에는 여태 잔설이 남아 있건만, 길섶의 이른 생강나무꽃은 저만큼 피어졌고, 양지 녘에는 붉은 진달래꽃 망울도 금세 터트릴 것만 같다. 경칩을 지낸 산속에서 짝을 찾는 뻐꾸기 울음소리에 봄은 이미 저만큼 다가서 있었다.

1시간은 족히 걸었을까. 송계는 신녕장에서 종이와 먹 등 몇 가지 일용품을 산 장바구니를 산성의 수구문에 내려놓고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송계는 마을을 출입할 때마다 산성을 마주칠 때면 계곡으로 흐르는 물 위를 걸쳐 마치 구름다리처럼 쌓은 아치형 성문이자 수구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돌을 깎아 가로로 세로로 이불을 개어놓은 듯 가지런히 쌓아올린 화강암 석벽이 군사용 성벽이라기보다 아름다운 꽃담 같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날이 갈수록 나라 안은 시끄럽고 혼란스러웠다. 일제가 곳곳에서 눈을 부라리고 있어 도심은 말할 나위 없고 두메산골조차 그 눈길을 피할 수가 없는 암흑천지였다.

-임금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나라마저 빼앗아간 일제를 어찌 용서할 수 있으랴. 다만 내가 힘이 없어 한탄할 뿐이다. 서세동점 하는 세상의 흐름을 읽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끝낼 줄 모르는 당쟁의 소용돌이는 자신의 사리사욕에 눈이 먼 지도자들의 어리석디어리석은 처사가 아니었던가.

송계는 수구문으로 흘러내리는 물가의 마른 바위에 허리를 기대고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성현은 비례물동(非禮勿動)이라 하지 않았던가. 나는 세상 밖으로 나서지 않으리라. 후학으로 나라를 구하리라. 실천적인 공부로 자신을 밝히고 이웃을 밝혀 나가리라.

쉬었다가 마을 어귀로 돌아가는 길모퉁이에서 송계는 다시 긴 숨을 몰아쉬었다. 초봄의 입김이 담배 연기처럼 길게 내뿜어졌다. 드디어 산정이 드러나고 마을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손바닥만 한 밭을 일구고 사는 마을 사람들, 밭고랑에 엎디어 춘경을 시작하는 손길이 분주해 보였다.

마을 앞으로 근원이 마르지 않는 실개천이 흘러내리는 옥정동은 북으로 화산을 등진 채 남으로 넓은 분지를 일구고 사는 20호의 산골 마을이다.

마을 남쪽으로 넓게 펼쳐진 분지는 갈대와 싸리나무, 갯버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데 신비롭게도 넓은 분지 한가운데 큰 바위 돌 사이로 맑은 샘이 끊임없이 솟아 흘러내린다. 그리고 그 물길은 태곳적 삼림 같은 숲 속을 가로질러 산성의 수구문으로 이어진다.

바람이 일렁일 때 마다 하얀 싸리꽃이 설화처럼 흩날리고 갯버들은 하얀 솜털 같은 꽃을 피우고 있지만, 계곡의 물은 여전히 얼음처럼 차다. 군데군데 언 채로 녹지 않은 얇은 얼음이 바위틈에 이끼처럼 붙어있다.

송계는 옥정동으로 찾아드는 원근 지방의 제자들과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는 일상이 퍽 만족했다. 가까이 아끼던 제자의 외가가 있는 곳이라 생활하는 데도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서책을 보다 깜빡 잠이 들었다. 순간 꿈속인가? 마을 앞의 넓은 숲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사다리 같은 누각이 세워져 있고, 마을 사람들이 몰려와 자신더러 그 누각에 올라가 하강하는 도인을 받들어 모시라고 했다.

-덕이 많은 훈장 어른께서 도인을 영접하소서.

사람들에게 떠밀리다 못 한 송계는 마침내 옷깃을 여미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신령한 사람을 조심스럽게 받아 안았다. 안고 자세히 보니 그 위인은 단순한 도인이 아니라, 자신이 늘 닮고자 흠모하고 있던 공자(孔子)의 모습과 흡사하지 않던가.

송계는 너무나 감동하여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누를 길이 없었다. 엎드려 절을 하고 다시 일어나서는 하얀 사발 그릇에 물을 한잔 올리며 “마을 앞 옥정의 물입니다”라고 하니, 그 도인은 “어허, 옥정영원이로다” 하면서 물을 받아 마셨다. 그 순간 송계는 꿈에서 깨어났다. 비록 꿈속이지만 너무나 생생한 그 모습이 뇌리에 선명했다.



송계는 벅차오르는 감동을 주체하지 못한 채 종이를 꺼내고 먹을 갈기 시작했다. 그리고 경건한 마음으로 샘가의 바위에 ‘옥정영원’이라는 이름을 정성스럽게 새겼다.

-마을 사람들과 제자들이 함께 음용하는 이 우물을 보다 신령스럽게 여김은 물론, 학동들에게 성찰의 준거가 될 수 있게 해야지.

송계는 해서체로 반듯하게 ‘玉井靈源’이라 새겨 넣었다. 샘의 다른 한쪽에 세심탁족(洗心濯足)이라는 댓귀를 더 새겨 넣었다.

-옥같이 맑은 물, 그 근원이 신령스러운 이 물가에서 몸과 맘을 닦아 선현에 이르게 하리라….



그리고 많은 세월이 흘러갔다. 현대사회로 접어들면서 옥정동은 그야말로 상전벽해가 되고 말았다.

1960년대 후반에 마을이 철수 되고, 그 자리에 군부대의 유격훈련장이 들어앉은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산성과 군수사 터, 그리고 옥정영원 샘은 고된 군사 훈련 중의 장병들에게 피로를 들어주는 쉼과 볼거리, 음용수가 되어주고 있다.

샘가의 ‘옥정영원’을 새긴 바위 언저리에 파르스름한 석화가 구절초처럼 곱게 피어나 있다. 분지에서 불어오는 봄기운 가득한 갈대 바람을 안고 화산 정상에 오르면 북쪽으로 멀리 인각사가 한 폭의 그림처럼 들어선다.

천 년 전 일연선사가 들어앉아 삼국유사를 저작했던 유서 깊은 절이 아니던가. 절집 앞으로 위천의 상류가 흘러내리고 있다. 그 옛날 윤숙 장군도 또한 송계 선생도 산정에 올라 오늘날 화산을 찾는 나그네들처럼 이 풍경을 찬미하며 살았으리라….

김정식/대마문화콘텐츠연구소장

김정식 대마문화콘텐츠연구소장


문정화 기자 moonjh@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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