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원/ 김구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도 아니오, 경제력도 아니다. 자연과학의 힘은 아무리 많아도 좋으나, 인류 전체로 보면 현재의 자연과학만 가지고도 편안히 살아가기에 넉넉하다. 인류가 현재에 불행한 근본 이유는 仁義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다. 이 마음만 발달이 되면 현재의 물질력으로 20억이 다 편안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인류의 이 정신을 배양하는 것은 오직 문화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서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

- ≪백범일지≫ (도서출판 國士院, 1947)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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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은 “세상에 가장 좋은 것이 완전하게 자주독립한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보다가 죽는 일이다.” “나는 일찍이 우리 독립 정부의 문지기가 되기를 원했거니와, 그것은 우리나라가 독립국만 되면 나는 그 나라에 가장 미천한 자가 되어도 좋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독립한 제 나라의 빈천이 남의 밑에 사는 부귀보다 기쁘고, 영광스럽고, 희망이 많기 때문이다.” 백범의 무욕과 완전 자주독립에 대한 신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白凡이란 호도 당시 가장 천대받은 계층인 ‘백정’과 보통사람을 뜻하는 ‘범부’에서 따왔다.

선생은 정연한 논리로 마르크스 이론을 비판하면서 “산에 한 가지 나무만 나지 아니하고, 들에 한 가지 꽃만 피지 아니한다. 여러 가지 나무가 어울려서 위대한 삼림의 아름다움을 이루고 백 가지 꽃이 섞여 피어서 봄들의 풍성한 경치를 이루는 것이다.” 그의 민족주의는 사상의 단계를 넘어 신앙의 경지에 이른 신념이었다. 건국의 기본노선에서도 민족정기를 바로잡는 문제를 가장 시급히 생각했다. 이와 달리 이승만은 국내 친일파를 감싸고 비호했을 뿐만 아니라 해방 조국의 민족정기를 혼탁케 한 결정적인 구실을 하였다.

이승만이 친일파를 감싸준 결과가 이 땅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가는 70년이 지난 지금의 현실에서 새삼 거론할 필요조차 없다. 물론 더 근본적인 원인은 미군정에 있다. 그들은 당장의 효과적인 행정력과 치안능력만을 필요했을 뿐 일제 잔재 숙청이라든가 민족정기를 바로잡는 문제는 관심 밖이었기 때문이다. 해방 후 한때 위축되었던 친일파들이 잽싸게 재진출을 모색했고 미군정에 접근했다. 이에 돈과 여자가 동원되었음은 물론이다. 말이 좀 통하고 서양 문물에 밝은 사람을 고르다 보니 대부분 친일파였다. 선생의 <나의 소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원인 가운데 한 대목이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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