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우의 따따부따] 봄꿩이 스스로 제 명을 재촉하니

발행일 2019-03-21 09:33:31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봄꿩이 스스로 제 명을 재촉하니

비행기가 대구 공항 활주로에 착륙한 모양이다. 까꿍 까까꿍 까까꾸꿍. 여기저기서 참았던 재채기가 한꺼번에 터져 나온다. 너나없이 스마트폰을 열어 확인하고는 또 답장을 보낸다. 비행시간 동안 어떻게 참았는지, 갑갑함에 대해 복수라도 하듯 아주 중계방송을 하기도 한다.

SNS는 시간과 장소를 구별하지 않고 공격해 온다. 조금만 틈을 보였다 하면 파고 들어오는 공격에 내가 몸을 피할 수밖에 도리가 없다. 그래도 한도가 있지. 참으로 집요하다. 내가 궁금해 하지도 않았고 묻지도 않았는데도 말이다. 그런데도 세상의 온갖 지혜와 정보와 지식으로 포장돼 쉴 새 없이 날아든다. 그런 공격자 중에는 자신이 트럼프 대통령급으로 착각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건강에 대한 조언, 유머를 빙자한 음담이나 살아가는 지혜라며 인터넷에 떠도는 이런저런 잡문들도 있다. 죄 없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석방하라는 주장이나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퍼주기 등 남의 이야기를 마구 퍼 나르기도 한다. 그런 이야기를 올려 내 무지를 깨우쳐 주겠다는 사람들의 열정과 동정심에 비하면 내 고마움의 표현은 아무래도 부족함을 인정한다. 그러면서 거기에 댓글로 화답하는 또 다른 부지런함에 내 무성의는 시기심으로 변명한다.

그런가 하면 대화방에 자신의 사생활을 여지없이 까발리는 사람들도 있다. 어제 xx산을 올랐다. 아직 춥더라. 그러면서 사진과 함께 올라오기도 한다. 일찍 핀 들꽃 사진도 올린다. 동네 뒷골목의 식당 풍경도 올라온다. 식당의 식단도 사진으로 찍어서 올라온다. 그러면서 옆자리 누구와 같이 있다는 자랑까지 곁들인다. 입고 있는 새 옷도 자랑하고 레시피까지 설명하기도 한다.

모든 관계들이 네트워크상에서 연결되는 디지털 세대들의 사회관계망 서비스를 이용한 상호 소통은 그들만의 세계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 모든 것을 공유하면서 확인하고 또 인정받으려 한다. 그런 픽미 세대에 소속되지 못하는 아날로그 세대들은 그 소외감을 의식적으로 부정하기 위해서 더 극성적으로 사회관계망 속으로 자신들을 밀어 넣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강남 룸살롱 버닝선 폭행 사건이 그야말로 일파만파 게이트로 커지고 있다. 그들만의 게임이요 놀이였던 일탈행위가 범죄로 드러나고 그 끝을 예측할 수 없게 만든 것은 그들끼리 나눈 대화방 속의 대화들이다. 사이버상 같은 공간에서 정보를 공유하고 같이 즐기며 희롱했던 세상이 부메랑이 되어 자신들을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만의 공간이었고 사생활의 일부였는데, 그것이 공개되고 보니 꼼짝할 수 없는 범죄의 증거가 됐다.

세상 사람들이 알게 됐다. 그런 초호화 술판이 있고 거기엔 연예인이 등장하고 영화 장면 이상의 마약과 난잡한 게임들이 실화로 공연됐다는 것을. 그들의 거래엔 성상납이 있었고 거기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일탈 행위를 봐주는 경찰이 있다는 것도 밝혀졌다. 그들을 관리하는 연예기획사는 권력기관과 유착돼 음주운전 정도는 세상모르게 덮여 방송활동도 아무런 제재 없이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이다. 거기엔 물론 평소 향응과 골프를 통해 관리하는 식이었다. 그들이 특권처럼 누려왔던 자신들만의 놀이는 범죄였고 그 범죄의 뒤에는 또 다른 비리가 있어 가능했다.

자신들만의 공간에서 그들만의 리그를 벌이면서 자랑하고 싶은 욕망은 억제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것이 화를 불러온 것이다. 바바리 맨은 실은 또 다른 관음증의 표현이라고도 한다. 그것이 범죄인 것을 몰랐다면 이번에 그 대가를 치르면서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들이야 방송을 하차하고 연예 활동을 중단하면 그만이지만 세계 각국에 불같이 일고 있는 한류 열풍에 찬물을 끼얹을 까 두렵다. K팝을 따라 부르고 좋아하는 아이돌 스타의 브로마이드를 벽에 붙여놓고 우상처럼 숭배하는 세계 곳곳의 팬들의 실망은 또 어떡하나.

봄 꿩이 춘정을 못이겨 스스로 운다. 실은 발정기의 장끼가 까투리를 부르는 소리지만 엉뚱하게도 사냥꾼을 불러 제 명을 스스로 재촉하는 것이다. 이 봄, 스스로 울어 명을 재촉하는 것이 봄꿩 뿐이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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