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노래방 / 김승희

발행일 2019-03-21 15:28:09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한국은 노래방/ 김승희

당신은 노래를 부르지 못하는 사람/ 노래방에서 당신 혼자만 노래를 부르지 않고/ 삼십분 넘게 앉아 본 적이 있는가/ 당신의 친구들은 당신에게 노래를 부를 것을/ 권한다 강요한다 애소하고 명령한다// (중략)/ 당신은 남북통일에 반대하는 사람/ DMZ를 만드는 사람/ 수원지에 독극물을 붓는 사람/ 성수대교를 무너뜨리는 사람/ 백범 김구를 암살한 바로 그,그, 그 장본인이 된다// 길은 이것뿐이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을 남겨두고 노래방 문을 닫고/ 나가버린다/(당신은 아웃싸이더가 된다)/ (중략)/ 눈물을 문지르며 그대는 깨닫는다/ 노래방은 만유에 편재하고/ 노래방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다/ 노래방체제가 한국의 유일한 체제이며/ 그 바깥에는 다른 어떤 체제도 없다는 것을

시집 『흰 나무 아래의 즉흥』 (나남,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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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방 안 간 지가 한참 된다. 노래방 가는 것을 그리 내켜하진 않지만 혐오의 수준은 아니니 어울려서 술 마실 기회가 없거나 둘레의 사람들도 노래방에서 흥을 내는 일이 시들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 노래방에 가서도 ‘순서’가 오면 길게 빼지는 않았으므로 ‘혼자만 노래를 부르지 않고 삼십분 넘게 앉아 본 적’은 별로 없다. 어쩌다 영 기분이 별로일 때도 ‘안 나오면 쳐들어간다. 꿍 자작 꿍 짝! 엽전 열 닷냥~’ 이렇게 조여 오면 피할 재간이 없다. 덕분에 k-pop의 저변이 되었다는 평가도 있으나 노래방이 우리나라만큼 창궐한 나라도 없다.

풍류 가무를 즐기는 민족성을 말하는 이도 있다. 좋은 의미이기는 하지만 자본의 상업성과 유흥이 끼어들면 곧장 퇴폐문화가 되기 십상이다. ‘버닝선’의 사례에서 보듯이 퇴폐향락문화는 필연적으로 권력과의 결탁, 인권 유린, 성의 상품화, 마약 등 온갖 불법이 끼어들기 마련이다. 혼자 노래를 않거나 분위기 아랑곳없이 ‘선구자’를 부를 배짱이 없다면 자신도 모르게 향락소비문화에 빠져들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이는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이기는 하다. 남들이 다 가는 길을 안 따라가고 혼자 버티기는 몹시 힘든 일이다.

다만 정신을 황폐화시키는 군중심리에 저항하지 못했을 뿐이다. 자칫 이러한 동조와 휩쓸림이 ‘남북통일에 반대하는’ ‘DMZ를 만드는’ ‘백범 김구를 암살한 바로 그,그, 그 장본인이’ 될 수도 있음을 망각한다. 오래전 국내항공사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다. 83년인가로 기억되는데 공채신입사원 한명이 내가 근무하는 부서로 배치되었다. 말이 없고 웃음기도 없는 친구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서 내에 그가 안두희의 차남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 후 직원들의 태도는 더욱 어색했고 그와의 대화도 기피했다.

결국 입사 6개월 만에 그는 돌연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흥미로운 것은 그의 이름이다. 그는 안국보(安國保)였고 그의 형은 안국호(安國護}인가로 기억한다. 의도적인 작명인지 그의 유별난 신념인지는 모르겠으나 안두희도 표면상으로는 애국을 말하고 국가의 수호를 부르짖었다. 마치 태극기부대가 애국시민을 자처하는 것처럼. 그들은 누가 뭐라 해도 자랑스러운 한 패거리다. ‘한국의 유일한 체제이며’ ‘그 바깥에는 다른 어떤 체제도 없다’ 잘못된 신념은 광기를 부르며 사람까지 해치지만 자칫 ‘만유에 편재’할 수도 있기에 더욱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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