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노래를 부르지 못하는 사람/ 노래방에서 당신 혼자만 노래를 부르지 않고/ 삼십분 넘게 앉아 본 적이 있는가/ 당신의 친구들은 당신에게 노래를 부를 것을/ 권한다 강요한다 애소하고 명령한다// (중략)/ 당신은 남북통일에 반대하는 사람/ DMZ를 만드는 사람/ 수원지에 독극물을 붓는 사람/ 성수대교를 무너뜨리는 사람/ 백범 김구를 암살한 바로 그,그, 그 장본인이 된다// 길은 이것뿐이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을 남겨두고 노래방 문을 닫고/ 나가버린다/(당신은 아웃싸이더가 된다)/ (중략)/ 눈물을 문지르며 그대는 깨닫는다/ 노래방은 만유에 편재하고/ 노래방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다/ 노래방체제가 한국의 유일한 체제이며/ 그 바깥에는 다른 어떤 체제도 없다는 것을
시집 『흰 나무 아래의 즉흥』 (나남,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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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방 안 간 지가 한참 된다. 노래방 가는 것을 그리 내켜하진 않지만 혐오의 수준은 아니니 어울려서 술 마실 기회가 없거나 둘레의 사람들도 노래방에서 흥을 내는 일이 시들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 노래방에 가서도 ‘순서’가 오면 길게 빼지는 않았으므로 ‘혼자만 노래를 부르지 않고 삼십분 넘게 앉아 본 적’은 별로 없다. 어쩌다 영 기분이 별로일 때도 ‘안 나오면 쳐들어간다. 꿍 자작 꿍 짝! 엽전 열 닷냥~’ 이렇게 조여 오면 피할 재간이 없다. 덕분에 k-pop의 저변이 되었다는 평가도 있으나 노래방이 우리나라만큼 창궐한 나라도 없다.
다만 정신을 황폐화시키는 군중심리에 저항하지 못했을 뿐이다. 자칫 이러한 동조와 휩쓸림이 ‘남북통일에 반대하는’ ‘DMZ를 만드는’ ‘백범 김구를 암살한 바로 그,그, 그 장본인이’ 될 수도 있음을 망각한다. 오래전 국내항공사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다. 83년인가로 기억되는데 공채신입사원 한명이 내가 근무하는 부서로 배치되었다. 말이 없고 웃음기도 없는 친구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서 내에 그가 안두희의 차남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 후 직원들의 태도는 더욱 어색했고 그와의 대화도 기피했다.
결국 입사 6개월 만에 그는 돌연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흥미로운 것은 그의 이름이다. 그는 안국보(安國保)였고 그의 형은 안국호(安國護}인가로 기억한다. 의도적인 작명인지 그의 유별난 신념인지는 모르겠으나 안두희도 표면상으로는 애국을 말하고 국가의 수호를 부르짖었다. 마치 태극기부대가 애국시민을 자처하는 것처럼. 그들은 누가 뭐라 해도 자랑스러운 한 패거리다. ‘한국의 유일한 체제이며’ ‘그 바깥에는 다른 어떤 체제도 없다’ 잘못된 신념은 광기를 부르며 사람까지 해치지만 자칫 ‘만유에 편재’할 수도 있기에 더욱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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