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흙으로 만든 형태서 또 다른 소재로 전환”

<16> 김병문 금속공예가

김병문 작가가 본인은 작품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김병문(38) 작가의 미술 인생은 간절함과 치열함이 공존했다. 조금은 늦은 시작과 남들과는 다른 눈, 6년여의 일본 유학 생활 등 치열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일본 유학 생활을 끝내고 경산에 다시 돌아온 지 어언 2년 그는 한국의 주조 기술을 되살리고 학술적으로 남기고 싶다는 목표를 전했다.

◆간절함으로 시작한 미술

그가 미술을 시작한 건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이었다. 미술을 했던 누나의 영향이 컸다.

하지만 미술을 하고싶다는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김 작가는 “부모님이 미술을 하는 누나도 탐탁지 않게 생각하셔서 차마 하고싶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며 “누나가 다니던 학원을 갔다가 나도 모르게 하고 싶다는 눈빛을 미술학원 선생님에게 보낸 거 같다. 선생님이 아버지에게 권유해주셔서 미술을 시작하게 됐다”고 했다.

남들보다는 조금 늦은 시작이었다. 그렇게 원하던 미술을 시작했지만 또 다른 시련이 그에게 닥쳤다. 바로 색약(색을 분별하는 능력이 정상보다 부족한 증상).

“처음에는 전혀 몰랐다. 입시 미술을 시작하고 탁색계통으로 가면서 남들과는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

그렇게 회화가 아닌 다른 쪽으로 눈을 돌려야 했다. 그게 공예였다. 유독 손으로 작품을 만들기 좋아하던 김 작가는 대구대학교 공예과에 입학했다.

그는 공예과 선택에 대해 “디자인 계열과 공예과를 두고 고민을 많이 했는데 손으로 만지는 게 더 좋았다. 눈에 대한 약점 역시 공예과를 선택하게 된 이유 중 하나”라고 했다.

섬유, 금속, 도자, 목칠 4가지 중 금속을 선택한 이유 역시 도자기가 가지고 있는 단점을 가려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금속공예는 처음 흙으로 형태를 만들고 또 다른 소재로 전환된다는 것에 매력을 느꼈다. 금속 표면 질감이나 착색 후의 광택 등이 도자기에서 표현할 수 없는 빛깔들이었다. ‘이거다’라고 생각했다.”

기억의 흔적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된 일본 유학생활

일본과의 인연은 동 대학원을 입학 하면서 시작됐다. 석사 1년차가 끝날 때쯤 일본 동경예술대학 금속공예과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석사과정 중이었지만 학부생들과 함께 공부해야 했다. 그는 “정말 기초부터 다시 시작했다. 학부생들과 함께 공부를 했다. 한국과는 수업과정 자체가 달랐다”며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지만 그 시간을 보내면서 한 단계 더 성장한 것 같다”고 했다.

자살
그는 그 시간을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다고 했다. 1년의 유학 생활 후 한국에 돌아와 대구대 석사과정을 마쳤다.

그는 일본에서 더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확고한 이유가 있었다.

그는 “주조의 역사는 우리나라가 앞선다. 하지만 지금 현존해있는 학술자료 유물은 일본이 매우 잘 정리가 돼 있다. 우리나라는 정리가 안 돼 있고 학술적 자료도 없었다”며 “일본 주조 방식도 결국은 우리나라에서 온 방식인데 이거라도 배워서 학술적으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일본으로 다시 갔다. 동경예술대학 금속공예과 석사 시험을 준비했다. 이번에는 어학이 큰 걸림돌이었다. 실기시험은 자신이 있었지만 문제는 필기였다. 6개월간 어학 공부에 매진했다. 예상 문제를 달달 외웠다.

합격은 기대하지 않았다. 석사 시험에 응시한 사람 중 김 작가는 유일한 외국인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합격이었다. 비결에 대해 그는 “교수님께서 전공실기 점수가 가장 높았다고 이야기했다. 저의 간절함이 통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일본 유학시절 스스로 금속공예에 완전 미쳐 있었다고 했다. 우리나라에 가서 먼가 해야 되는 데 그게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임했다고.

석사와 박사 총 6년6개월의 시간의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돈이 없어서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해야했다. 향수병에 걸려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는 “주말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12시까지 아르바이트를 했다. 평일에는 오후 6시부터 12시까지 일을 했다”며 “생활비, 재료비 등을 충당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당시 힘든 시간은 그의 작품에 투영됐다. 그는 “예전에 있었던 보금자리, 고향의 냄새, 소리 등 순간에 떠오르는 것들을 작품으로 표현하려고 했다”며 “초기 작품들 대부분 일본 유학시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설명했다.

소리
그의 초기 작품은 대부분 고향에 대한 추억과 향수가 작품에 투영된 순수작품이다. 하지만 최근 작품들은 시민들과 소통하기 위해 쓰임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지금 현재 대구대학교 금속공예과에서 후학양성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일본에서 10여 회의 개인전과 단체전을 진행한 그는 “지금 준비하고 있는 게 있다. 진토 주조기법을 일본에서 배워왔다. 진토에 대해서 실험중에 있다. 우리나라에서 없어졌던 기법을 다시 되살리려고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에서 개인전도 계획하고 있다. 앞으로 다양한 작품으로 시민들과 소통으로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김혜성 기자 hyesung@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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