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기도/ 이상국

커피점에 온 모녀가/ 커피가 나오자 기도를 한다/ 나는 보던 책을 내려놓았다/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기도는 길어지고/ 딸이 살그머니 눈을 떠 엄마를 살피고는/ 다시 눈을 감는다/ 하느님도 따뜻한 커피를 좋아하실 텐데……

시집 『달은 아직 그 달이다』 (창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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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한 크리스천은 식사 때뿐만 아니라 다과에도 감사기도를 올린다. 그렇다고 보면 커피점에서 커피를 앞에 두고 기도하는 것이 유난스럽지는 않으나 실제로 이런 광경을 목격하기란 흔치 않다. 설령 기도를 하더라도 남의 눈에 띄지 않게 후딱 해치우고 말지 시에서처럼 기도가 길게 늘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시인은 이 광경을 목격하고서 보던 책을 내려놓는가 하면 ‘하느님도 따뜻한 커피를 좋아하실 텐데……’라며 식어가는 커피를 염려한다. 어쩌면 자신도 그 기도가 끝나기 전에 냉큼 커피잔을 집어 들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기도할 게 많더라도 식사기도만큼은 짧은 것이 좋다. 따뜻한 음식이 다 식으면 당연히 맛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더구나 커피는 맛과 온도와의 상관관계가 매우 높은 음료이다. 보통의 경우 60도 이상은 유지되어야 커피 고유의 풍미와 향이 균형을 이룬다고 한다. 생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만족한다는 것이다. 따뜻한 커피를 들고 있는 사람과 차가운 커피를 들고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전자가 후자보다 특정 대상들을 모두 긍정적으로 평가했다고 전한다. 따뜻한 커피 한잔이 우리의 심리를 바꿀 수 있음을 보여준 실험이다.

커피의 주성분인 카페인은 우리 인체에서 다양한 작용을 한다. 국제보건기구에서도 장기 음용에 따른 중독이나 의존성, 남용 등 부정적인 우려보다는 신체에 활기를 불어넣는 자극제로 약간의 이뇨작용, 지방분해 등의 각종 대사 작용을 원활하게 해주는 물질이라고 발표하였다. 이 커피는 하루 5~6잔까지는 신체에 해를 별로 끼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사람에 따라 카페인 분해속도가 다르므로 단시간에 지나치게 많은 커피를 마시면 불안, 초조, 불면 등의 카페니즘 현상이 나타날 수는 있다고 한다.

한때 건강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커피를 피해야할 음료로 여겼지만 지금은 오히려 각종 암의 발병률을 낮추는 등 건강에 이롭다는 임상실험 결과를 속속 듣고 있다. 물론 위산과다가 있거나 위궤양 증상이 있는 사람은 되도록 커피를 피해야 하며, 심장질환자의 경우 심근경색 발생률이 증가하는 등 부정적인 효과도 없지 않다. 그러나 뭐든지 과하면 좋지 않다는 진리를 환기하면 크게 개의치 않아도 될 것 같다. 볼테르는 하루에 50잔이 넘는 커피를 마신 커피마니아로, 84세까지 장수한 사실에 비추어보면 건강과의 상관관계를 짐작할 만하다.

어떤 이가 볼테르에게 “그렇게 많이 마시면 몸에 좋지 않다”고 충고하자, “50년 전에도 그런 말을 들었다”고 맞받았다. 베토벤은 한 잔의 커피로 수많은 굿 아이디어를 제공받았다고 했으며, 나폴레옹은 진한 커피가 정신을 차리게 만드는 특별한 힘이 있다고 했다. 그런 커피를 나는 지금껏 맛도 잘 모른 채 아무 커피나 마셔댔다. 믹스커피도 마다않고 오히려 달달한 그 맛에 길들여졌다. 최근에야 LA에 사는 지인이 보내준 원두커피를 접한 후로 블랙을 즐기고 있다. 커피는 사람을 진지하고 엄숙하고 철학적으로 만든다는 말이 있는데 바로 와 닿았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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