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봄날

정명희



꽃들이 바람에 날린다. 길 양옆에는 붉게 꽃물이 짙어간다. 활짝 핀 꽃들의 자태를 관찰할 새도 없이 3월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눈이 내렸다는 4월이지만, 노란 산수유가 구름처럼 피어올라 또 상춘객을 행복하게 해 주리라. 제아무리 미세먼지가 날려대도, 때아닌 눈보라가 닥쳐와도, 봄은 물러서지 않고 우리 곁에 머물러 있을 터이니 즐거운 축제로 생각할 일이다.

다소 쌀쌀한 날씨에도 전국은 봄꽃 축제 소식으로 떠들썩하다. 인천에 사는 지인은 봄맞이 나들이를 고향으로 왔다. 사랑의 묘약을 구하려고 내려왔다고 하여 함께 오페라를 관람하였다. 학창시절 때 함께 쏘다니던 동성로를 나가 거닐면서 세월이 유수 같다는 이야기를 하는 그의 옆모습에서 40여 년 전의 얼굴이 떠오른다. 꿈 많았던 그 시절이 어른거린다. 몸은 나이 들어 늙어가도 마음은 늘 열일곱 그때도 남아있으니 그 괴리가 어쩌면 즐거움일수도 또 때로는 약간의 슬픔 어린 그리움일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어린아이처럼 손을 꼭 잡으며 환하게 웃는 그를 보며 옛 시절을 떠올린다. 한때 어렸고 한때 꿈으로 가슴이 두 방망이질 쳤던 그때를. 빨간 동백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추억 속으로 빠져들어 보기도 하였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놀이동산에서 소리를 높이 질러대며 놀이기구를 타고 만발한 튤립을 배경으로 천진한 표정으로 기념사진을 찍는다. 문자판이 부르르 떤다. 동기의 부인상 소식이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이 시간이 문득 순간임을 실감한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면 나는 현관 거울을 보며 주먹을 불끈 쥐고 힘을 준다. 두 눈을 활짝 뜨고 입술 꼬리를 한껏 위로 밀어 올려 웃음까지 연습한다. 오늘 하루도 긍정의 말을 하며 잘 보낼 수 있게 해달라는 바람으로 하는 스스로의 다짐이다. “하하하.” 내가 화를 내더라도 아침 해는 떠오를 것이고, 내가 웃더라도 저녁 해는 저물어 갈 터이니.



미국인들에게 존경받는 대통령 트루먼은 백악관 집무실 책상 위에 늘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라고 적힌 명패를 올려두었다. 웃음과 긍정으로 하루를 생활하고 마무리하려면 늘 스스로 책임지는 자세로 순간순간 마음을 다잡으며 임해야 하지 않겠는가.



가끔 산에 올라 소리를 질러본다. “야호~” 소리를 질러대면 그 소리는 그대로 반사되어 내 귀를 울렸다. 음향 반사 현상인 메아리다. 우리가 산에 가서 “나는 너를 미워한다.”라고 하면 산이 “나는 너를 미워한다.”라고 말할 것이다. 반대로 “나는 너를 사랑한다.”라고 말하면 산도 “나는 너를 사랑한다.”라고 들려줄 것이다. 스스로 다짐하는 마음의 약속이다.

우리가 남을 칭찬하면 내게 칭찬이 돌아올 것이고 남의 흉을 보면 그것이 언젠가는 내 흉이 되어 나에게 돌아올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우리는 사랑의 말을 서로 주고받아야지 아무리 빈말이라도 필요 없는 말은 삼가야 할 것이다. 우리가 살면서 입에 붙여 달고 다니며 자주 써보아야 하는 말은 비난도, 책망도 아닌 바로 긍정의 말이지 않은가.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마쓰시다 고노스케는 전설적인 일본인 기업가다. 그는 수많은 성공신화를 이루었다. 그의 대단한 성공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하나는 몹시 가난해서 어릴 적부터 구두닦이, 신문팔이 같은 고생을 하며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었던 ‘덕분에’였고, 다른 하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몸이 몹시 약해서 항상 운동에 힘써 왔던 ‘덕분에’였으며 그리고 또 하나는 초등학교도 못 다녔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사람을 다 스승으로 여기고 열심히 배우는 일에 게을리하지 않았던 ‘덕분에’였다.



우리네 인생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다. 백 년도 채 못 살고 사라져야 한다. 단 1회만 상영되는 연극 무대에서 어느 날 문득, 예고도 없이 내려오라는 명령을 받을 것이다. 그동안에 인간은 희로애락 오욕칠정을 겪으며 살아간다. 우리의 인생 무대가 아름다워지려면 불평과 비난의 말을 멀리하여야 하리라. 부정의 언어를 떨쳐내고 감사의 마음과 사랑의 말로만 채워야 하리라. 하루라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 행복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내 인생이 진정 즐겁고 행복하려면, 언제 어디서나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을 다잡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야 하지 않을까.



해마다 봄이면 떠오르는 시가 있다.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사지 말 것, 현실이 미래를 잡아먹지 말 것, 미래를 말하며 과거를 묻어 버리거나 미래를 내세워 오늘 할 일을 흐리지 말 것’이라고 읊은 박노해 시인의 ‘경계’도 있지 않던가. 인생의 봄날에도 가끔은 경계해야 더 즐겁게 살아갈 수 있지 않겠는가.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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